스피노자는 왜 라이프니츠를 몰래 만났나 - 철학의 진로를 바꾼 17세기 두 천재의 위험한 만남
매튜 스튜어트 지음, 석기용 옮김 / 교양인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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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두 철학자의 대결에 대해 역사적으로 흥미진진하고 철학적으로 성실한 결과물입니다. 사유로 대립하고 말과 글로 싸운다 하여 얌전한 건 아니죠. 사사키 아타루는 도서관이 화약고나 마찬가지라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스피노자와 라이프니츠는 핵잠수함이나 항공모함쯤 될 것 같습니다. 격동의 시대를 살며 참 다르게 처신했으며 철학 한 두 학자를 교차편집으로 부지런히 오가며 촘촘히 써 내려간 연구에 들인 노고가 존경스럽습니다.

 

 스피노자는 알면 알수록 경탄을 자아내고 라이프니츠는 연민을 불러 일으킵니다. 초연하게 죽음을 맞이한 스피노자와 죽기까지 스피노자의 유령에 시달리며 모순적으로 살아온 라이프니츠는 저를 비롯한 흔한 인간상의 비루함과 쓸쓸함을 반추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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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 - 정성일.정우열의 영화편애
정성일.정우열 지음 / 바다출판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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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초에 비평가에 대한 제 시선은 좀 삐딱했습니다. 정론 없는 저의 일방적인 태도일 뿐입니다. 그나마 이제는 그 앙심과 투정이 많이 풀리긴 했는데, 부정적인 태도도 비평가의 ‘글’ 때문이었고, 적잖이 쌓인 신뢰도 역시 ‘글’ 때문입니다. 정성일 씨는 후자입니다. 여기 저기 개제했던 글들을 모으고 추려 엮은 이 선집에 새 글은 없고 각각의 분량도 그다지 두텁지 않지만 내장한 공력은 만만치 않습니다.
 

 정성일 씨는 서문에서 “영화로 연결되는 우정”을 말하지만 그 개인으로 볼 땐 사랑을 앞에 둬야 할 것 같습니다. 영화의 자리를 과장하지도 않으며 영화의 역할을 과신하지도 않지만 영화를 제대로 사랑하고 삶의 중심에 둘 줄 아는 이의 비평은 지식과 사유의 체에 걸러 나왔다 해도 한 편의 명화처럼 아름답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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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 전집 2 - 산문 김수영 전집 2
김수영 지음, 이영준 엮음 / 민음사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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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의 글을 읽는 일이 즐겁긴 했는데 비극적 즐거움이었습니다. 그가 살던 50년 전이나 지금이나 이 나라가 크게 나아지지 않은 걸 확인하는 일이 헛헛했습니다. 그가 그토록 힘주어 말한 자유는 있는 둥 마는 둥 갑갑하고 언론이나 문학, 지식인도 여전히 제 역할 하나 제대로 해내지 못한 채 문학의 종언이니, 인문학의 죽음이니 하며 비장하기만 합니다.

 

 그의 본업이 시다 보니 시에 대한 언급이 많습니다. 시로써 살고 시로써 존재하려는 고투가 이 두꺼운 책을 끌고 가는 견인력입니다. 많이 팔리지는 않아도 새 시인과 새 작품들은 참 많은데, 그가 이제껏 살아 있어서 후배 작품들을 보면 뭐라 평할지 궁금합니다. 한 번도 동시대를 산 적 없지만 그의 글을 읽을 때마다 그가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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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카를라 3부작 1
존 르카레 지음, 이종인 옮김 / 열린책들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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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전적 품격을 갖춘 작품입니다. 그저 그런 미사여구 같지만 고전이 될 만한 통찰이 있고 그에 필적한 문체와 서술의 품격을 갖추고 있는 보기 드문 첩보 소설이 맞습니다. 화려한 액션 빵빵, 폼 나는 영웅 짜잔, 내세우는 첩보 영화에 익숙한 시대에 정말 좋은 게 뭔지 하나의 표본이 될 만한 작품입니다. 액션을 대신해 노년의 회한과 사색이 넘실대고 애국심에 고취된 분노를 가리는 나지막한 연민과 애석함이 옅은 안개처럼 흐릅니다.


 

 역자의 말에 따르면 젊은 시절 탐독한 독일 교양소설의 영향으로 르카레의 소설은 사실에 근거한 첩보물인 동시에 성장물이라는데, 그 분석에 동의합니다. 나이가 들어 은퇴할 시기를 눈 앞에 둔 늙은이에게도 성장은 중요한 과제인 법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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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테라스
파스칼 키냐르 지음, 송의경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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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존해 있는 소설가 중 제가 유일하게 전작을 구해 읽는 작가는 파스칼 키냐르가 유일합니다. 그의 글-세계를 관통하는 단어는 ‘심연’입니다. 내가 절대 알 수 없는, 내가 존재가 시작됐던 ‘최초의 시간’을 향해 거슬러 올라가는 심연의 글쓰기가 그의 모든 작품을 지탱하는 유일한 토대입니다.

 

『로마의 테라스』는 그의 국내 번역서 중 유일하게 대중적입니다. 이야기의 진행이 선명하고 행간을 흐르는 사유의 깊이도 부담스럽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문장이 아름답습니다. 한두 단어만으로 전경을 보게 합니다. 문장과 이야기 자체에 매혹되는 즐거움은 카뮈의 『최초의 인간』 이후 처음인 것 같네요. 키냐르를 애독해도 다른 이에게 추천하는 건 부담이었는데 자신 있게 권할 만한 책이 한 권 생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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