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비 딕
허먼 멜빌 지음, 김석희 옮김 / 작가정신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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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생명은 괴롭다. 위로는 우주가 아래로는 바다가 허공을 집어삼킨 오묘한 검은 빛으로 존재의 안쪽을 길게 잡아당기고 있다. 한 때, 우주는 기하학적인 상상력과 신학적 믿음으로 이해하는 것으로 소화할 수 있는 어둠이었다. 불가해한 동시에 물리적으로 가닿을 수 없는 광막함이니 무릎 꿇고 섬기면 되었다. 하지만 바다는 육지를 향해 악다구니를 놓지 못하고 사이렌의 노래 소리처럼 모험심과 정복욕을 부채질하는 용광로였다. 이전의 배움과 코 아래 깔아놓고 봤던 미래의 환영을 까무러트리고 휘저어 잡탕으로 섞어버리는 존재의 시험장이었다. 누군가는 그곳에서 신을 만나고 누군가는 악마에게 사로잡혔다. 현실적인 사람들은 장사 수완을 발휘해 돈을 벌어 부자가 됐다. 거룩한 잡탕! 경건의 먼지와 세속의 주춧돌이 거리낌 없이 몸을 버무려 이성을 압도하는 새로운 야만을 창조해냈다. 흰 고래는 그런 바다의 맹아였다.

 

 작가 멜빌은 의도적으로 흰 고래와의 대결을 마지막에 위치시킨 뒤,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줄창 늘어놓는다. 화자 이슈마엘은 고고학자가 돼 예부터 내려오던 고래에 관한 단편과 일화들을 수집하다가 메스와 확대경을 들고 고래 해부학자가 되더니 이내 신학자가 되어 신과 자연, 인간에 관한 장황한 토론에 끼어들기도 한다. 영탄조의 서사시적 어조와 황홀하게 난립하는 무수한 은유와 언어의 실험들. 호손의 소설에서 접하기 쉬운, 약간 정신 나간 듯한 청교도 정신의 예언자적 어투들 하며, 총 135장으로 구성된 이 책의 어디든 펴서 얼굴을 파묻고 읽다보면 정신이 혼미해진다.

 

 이런 작품을 읽으면서 거기에 ‘소설’이라는, 정말 소심하게 조어된 이, 차라리 바늘로 찌르고 쥐어짜고 입으로 물어뜯고 싶은 허접한 말풍선을 붙여한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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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라 AKIRA 박스세트 - 전6권 세미콜론 그래픽노블
오토모 가츠히로 지음, 김완 옮김 / 세미콜론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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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신령(神靈)하기까지 하다. 아키라의 폭주로 도시가 붕괴되는 2권의 마지막 씬에서는 소리가 들렸고 수동적으로 따라가듯, 천천히 칸과 칸을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국역판 편집의 아쉬운 점을 모두 덮고도 남는 Great 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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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라 AKIRA 박스세트 - 전6권 세미콜론 그래픽노블
오토모 가츠히로 지음, 김완 옮김 / 세미콜론 / 2013년 7월
평점 :
절판


다만 이 작품 이후에 오토모 가츠히로의 작품 행보가 옴니버스와 블랙코메디 등으로 흐른 게 아쉽다. <아키라> 이후의 작품들만으로도 가츠히로를 좋아하지만 <아키라>를 읽은 지금에야 그의 이후가 미야자키 하야오의 <나우시카> 이후와 같은 발산을 보여줄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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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0일 2 명 신청합니다. 7년 전 모 신문에 연재하시던 `동무론`을 만났던 작고 보잘것없지만 반짝반짝 빛나던 그날의 사건 이후 이제껏 숙독하며 생각 벼리를 키우는 데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당신의 육성과 사진으로 전해지던 `이상한 칠판(들)`. 단 하루라도 제 오감으로 공동의 장소에서 체감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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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앤드루 포터 지음, 김이선 옮김 / 21세기북스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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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비평은 다면적인 fact를 쓰는게 아니다. 
  비평은 순간의 정확한 확신을 쓰는 것이다."


1. 
 어떤 것이 속도를 취하게 되면 그것을 감각으로 붙잡기 힘들어지게 되고, 그 정체가 모호해지는 것이 물질계의 법칙이라면 때론, 멈추어도 알쏭달쏭한 것들이 있다. 멈추어야 비로소 보이는 것이 아니다. 예술이 전시가치에만 쓸려들어간다면 그것은 예술이 아닌 게 돼버린다. 최후의 속도 뒤에 본연의 모습을 잘라 먹어버리는 꼴이 되는 것이다. 권태가 멈춤의 정서이고 허무나 고통과 슬픔 끝의 메마른 기분도 멈춤의 감정 현상이라 치면 그것들 사이에 가름막을 세우는 일은 쉬운가? 가름막을 멈추어 둘 수가 있나? 한 가정의 여주인이 된 '나'는 "텔레비전을, 드라마와 게임 쇼를 많이 보았고, 나보코프의 소설을 죄다 읽는다거나 이어 발자크의 소설을 죄다 읽는다거나 하는 식의 나만의 프로젝트를 마련"(125면)하며 쭉 뻗은 낮잠같은 중년의 시간을 산다.


 2.
 「오스카 와일드에 관해 이런 이야기가 전해진다. 한번은 그가 한 무리의 사람들과 함께 있었는데, 화제는 권태(지루함)에 관해서였다. 저마다 한마디씩을 했다. 와일드는 끝까지 침묵을 지켰다. 기대에 찬 시선으로 사람들은 그를 쳐다보았다. 드디어 그가 말했다. "나는 지루하면 좋은 소설을 한 권 집어서 벽난로 가에 앉아 그것을 읽겠소."
 실제로 그 두 가지, 즉 불타오르는 벽난로와 펼쳐진 소설은 서로 잘 어울린다.」
(발터 벤야민 지음, 최성만 옮김, 길 펴냄, 『서사. 기억. 비평의 자리: 발터 벤야민 선집 9』,463면)


 3. 
 권태는 무의미의 노동이다. 노동이 의미있는 것이라면 권태도 의미 있는 무의미다.


 4.
 앤드루 포터의 이 소설집 속 단편 소설은 모두 1인칭인데, 자고로 소설은 독백과 어울린다. (벤야민에 따르면) 소설은 인쇄된 글자로 가능한 예술이기 때문에 고립돼 있다. 자연법칙이다. 소설은 고독한 개인이 쓰고 읽는다. 소설이 연거푸 골똘히 말하는 것은 죽음인데, 고독에게 죽음만큼 가까운 것도 없을 것이다. 포터의 소설(나는 수록작 중 앞의 네 편만 읽었다) 속 1인칭 나의 기억 속 주인공들은 죽거나 죽을 뻔하거나 죽어간다. 혼자 말하는 입과 마음, 머리가 늘어놓는 글자의 짜임이 독자를 장례식자에 들어선 자로 만든다. 고독이 참기 힘든 건 부분들이 불협하기 때문이 아닐까? 고독이 멈춤이고 존재의 중심이 된 근대인에게 빠깥 세상의 급하고 빠른 질서는 영원히 낯설다. 어쩌면 소설만이 근대인에게 있어 하나뿐인 쉼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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