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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의 여자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5
아베 코보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1년 11월
평점 :
1962년에 일본에서 초판이 출간되어 세계 각국에서 번역 출간된 [모래의 여자].
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 시리즈로 나온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나는 아베 코보를 몰랐다.
[모래의 여자]는 두껍지 않은 분량의 책이지만 결코 만만한 책이 아니다.
이 작품에서 중요한 단어 몇을 뽑으라면, '뫼비우스띠', '곤충', '실종'을 들겠다.
한 남자가 8월 어느날 실종된다. 그는 학교 교사이며 곤충을 채집하는 취미를 가지고 있다. 그는 모래땅에 사는 곤충을 채집하기 위해 집을 나선 후 돌아오지 않았다. 그의 실종은 예기치 않은 것이어서 납치나 사고, 혹은 사랑의 도피행각등 여러가지의 가능성을 제기했지만 어떤 것도 맞지 않았다. 분명한 것은 그가 사라져버렸다는 것이다.
남자는 새로운 종의 곤충을 채집하여 긴 라틴어 학명과 함께 자기 이름을 곤충도감에 올리고 싶었다. 그는 모래땅에 서식하는 좀길앞잡이의 변종을 찾기로 한다. 그리고 모래땅을 찾아 사구로 들어선다.
유동하는 모래의 이미지는 그에게 뭐라 말할 수 없는 충격과 흥분을 불러 일으켰다. 모래의 불모성은 흔히 말하듯 건조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끊임없는 흐름으로 인해 어떤 생물도 일체 받아들이지 못하는 점에 있는 것 같았다. -중략-
정착은 과연 생존에 절대적으로 불가결한 것인가. 정착을 부득불 고집하기 때문에 저 끔찍스런 경쟁이 시작되는 것은 아닐까? 만약 정착을 포기하고 모래의 유동에 몸을 맡긴다면 경쟁도 성립하지 않을 것이다. -20쪽.
남자는 모래구멍들이 있고 성벽처럼 사구가 둘러싸인 곳에서 좀길앞잡이를 찾다가 한 노인의 제의로 민박을 하게 된다. 놀랍게도 그곳 집들은 모래 속 깊은 곳에 있었다. 끊임없이 쌓이는 모래를 집 주변에서 퍼올리다보니 자연히 집을 점점 모래 벌판 깊숙이 구멍속에 있는 형국이었다. 그는 민박에 대한 사례를 하겠다며 묵을 집으로 사다리를 타고 내려간다. 그 곳에는 한 여자가 살고 있었다.
남자는 하룻밤을 묵을 계획이었다. 날이 밝으면 나가서 좀길앞잡이를 찾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 모래구멍에서 나오지 못하고 만다. 모래 속에 사는 곤충을 찾으려 했지만 그는 모래속에 사는 곤충과 다름없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여자를 인질로 삼아 탈출을 기도하기도 하고 몇날 며칠 치밀하게 준비하여 몰래 탈출을 기도하기도 하지만 그는 실패한다. 그는 자신의 의지로 사라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경찰이 알고 구원해주기를 바라지만 그것도 기대할 수 없는 입장이다. 그는 유치한 장난기가 발동하여 동료교사, 뫼비우스띠라고 지칭하는 동료교사에게 비밀스런 뉘앙스를 풍기며 휴가를 떠난다는 편지를 써두고 온 것이다. 그 편지는 자신이 도망자라는 고백이나 다름 없을 거라는 짐작을 하면 낙담한다.
뫼비우스띠는 안과 밖이 없는공간이다. 뫼비우스띠라고 불리는 동료교사는 이런 말을 한다.
......나는 인생에 기댈 언덕이 있다고 하는 교육 방법이, 도무지 미덥지가 않은데.....-중략- 그러니까 없는 것을 말입니다, 있는 것처럼 착각하게 하는 환상 교육이죠.....-중략- 결국 세계는 모래 같은 것이 아닐까 하는......모래는 정지되어 있는 상태에는 그 본질을 파악할 수가 없으니까.....모래가 유동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실은 유동 자체가 모래라는.....-중략- 나 자신이 모래가 되는....모래의 눈으로 사물을 보는 ...... 한번 죽으면, 더 이상은 죽음을 두려워하면서 우왕좌왕할 필요도 없어지니까.....96쪽
끊임없이 흘러내리는 모래. 밥을 먹을 때도 잠을 잘때도 모래는 내려와 쌓인다. 뜨거운 낮을 피해 밤이면 매일 모래를 퍼올려야 모래속에 파묻히지 않는다. 사다리를 통해 배급으로 내려주는 물과 음식으로 연명하며 오직 모래를 퍼올리는 것만이 생활의 전부다. 퍼올리는 모래를 위에서 받아주는 조합원들과 만나는 것을 제외하고는 외부와 어떤 연락도 닿지 않는 단절된 생활이다. 그 곳에서 사는 여자의 꿈은 라디오를 갖는 것이다. 그녀는 모래속에 사는 삶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그 곳을 벗어나는 것을 생각지 않는다. 그는 유수장치를 개발한다. 물이 귀한 사막에서 유수장치는 획지적인 것이 될 것이다. 여자와 함께하는 그 곳에서의 삶을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척하면서 탈출의 꿈을 접지 않는다. 어느날 여자는 자궁외임신을 하게 되고 구조를 요청한다. 그가 그곳에 갇힌 때로부터 반년만에 새끼줄 사다리가 내려온다. 마침내 그에게 탈출의 기회가 온 것이다. 그는 사다리를 타고 올라온다.
딱히 서둘러 도망칠 필요는 없다. 지금, 그의 손에 쥐어져 있는 왕복표는 목적지도 돌아갈 곳도, 본인이 마음대로 써넣을 수 있는 공백이다. 그리고 그의 마음은 유수 장치에 대해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은 욕망으로 터질 듯하다. 털어놓는다면 , 이 부락 사람들만큼 좋은 청중은 없다. 오늘이 아니면, 아마 내일, 남자는 누군가를 붙들고 털어놓고 있을 것이다.
도주 수단은, 그 다음날 생각해도 무방하다.-227쪽.
이렇게 남자의 이야기는 끝이 난다. 그리고 책 말미에는 7년동안 생사가 확인되지 않은 남자에 대한 법원의 실종 판결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