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렁각시는 알까?
이동하 지음 / 현대문학 / 2007년 6월
평점 :
품절


그의 창작집 [우렁각시는 알까?]는 읽다보면 작가의 일상이 보이는 듯한 작품들이 많다. 명퇴후 오전에는 산책하며 지내는 <남루한 꿈>의 화자 일상은 어쩌면 작가의 일상이 그렇지 않을까 싶다.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부양하며 젊었을때 죽은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사모곡>의 화자 모습에서도 작가의 모습이 보인다. <누가 그를 기억하랴>에서는 오랜 기간동안 목포에 재직하면서 서울에 있는 가족을 만나러 오가던 작가의 모습도 연상이 된다.  봉변을 당하고 혼자서 고작 '이런 개같은 경우가 있나!'하는 혼잣말을 뇌까리면서 속만 끓일뿐인 <앙앙불락>의 화자의 모습도 작가의 모습과 겹쳐서 보인다.

 

그의 초기작들, 말하자면 [우울한 귀향]이나 [장난감 도시] 같은 작품들은 지독했던 가난속에서 무력한 이들의 곤고한 삶이 아프게 펼쳐진다. 이제 [우렁각시는 알까?]에 이르러 그런 절대 가난은 없으나 여전히 삶은 팍팍하고 호락호락하지 않다. '제 아무리 조심하고 근신하며 산다고 해도 소용없는 노릇이다. 예측불가능한 함정들이 도처에 널려 있고, 만부득이 상대할 수밖에 없는 인간들마다 그 구린내 나는 입 속에는 한결같이 날카로운 송곳니들을 감추고 있'는 세상이다.  그러한 세상은 <누가 그를 기억하랴>에서 엘리베이터가 고장나버린 아파트의 20층에 있는 자신의 보금자리를 찾아가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계단을 오르는 화자의 삶에서도 보인다. 작품속의 화자들은 가엽고 무력하며 고통스럽다.

 

호락호락하지 않은 삶의 비의 뿐만이 아니라 이 창작집에는 늙어간다는 것에 대한 비애도 있다. <헐거운 인생>은 설화를 곁들인 노인 이야기다. <누가 그를 기억하랴>도 한평생을 가족을 위해 헌신하여 이제는 자식들도 자라고 자신의 집도 장만한 한 사내의 이야기다. 그는 '오직 가족을 위해 절약을 넘어 몰강스러우리만치 내핍 일변도로 살아왔'으나 마침내 아파트('가없는 하늘 아래, 네 벽을 두르고 지붕을 덛고 그리고 불을 밝힌 그 작은 공간 안에, 둥지를 튼 오지 하나뿐인 가정. 자신에게도 그런 가정이 있어 그곳으로 향하고 있다고 생각하노라면 매양 가슴 밑바닥이 따뜻하게 젖어들곤 하'던 바로 그 자신의 집)가 무너져내려 어이없이 죽음을 맞이한 사내의 이야기다.

 

나는 이 창작집에서 어떤 작품보다도 <너무 심심하고 허무한>을 재미있고 인상 깊게 읽었다. 마치 옛날 이야기처럼 편안하고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증이 일어서 읽기 시작하고는 눈을 뗄 수 없는 작품이었다. 단정하면서 분명하고 거기에 아름답기까지 한 문장은 한 줄 한 줄이 감탄스러워서 나는 노트를 꺼내어 필사하고 싶은 욕구에 시달렸다. 나란한 쌍둥이 굴에서 지내던 중과 거지. 거지는 누운 등신불이 된다. 진지하면서도 관조적인 거리를 둔 작품으로 연륜이 느껴진다. 이제까지 작가의 작품들과 가장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창작집을 읽으면서 만나는 낯선 단어들에 대한 공부도 즐거움의 하나였다. 어릴적에 어른들이 쓰던 말중에 묻혀있던 단어를 만나는 반가움은 컸다. 표준어를 쓰지 않고 사투리를 쓰면 마치 부끄러운 실력이  들통나는 것처럼 여겼던 때가 있었다. 이젠 그런 경계에 별 신경을 쓰지 않고 싶다. 이 창작집에 실린 고유한 우리말, 입말에 익숙했던 우리말들이 문장속에서 정확하게 쓰이기도 했기 때문이지만 나는 그 말들이 정답고 아름다와서 일일이 사전을 찾아가며 즐거움을 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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