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문화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양장제본서 전기>



'고달픈 삶을 사는 사람'이 죽음 대신 선택하는 방법으로 자신의 기억을 양장제본해서 책으로 남는다는 다소 허황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다.



-이 서비스는 개인의 기억을 추출해내 양장제본서로 남겨 주는 방식을 채택했습니다. 추출된 기억은 표지 속의 칩에 이식되고, 동시에 책으로 기록되어 허가한 대상에 한해 열람이 가능하게 되죠. 몸은 사라지지만 정신은 제본된 기억속에 머물게 되는 거지요.-



이 작품을 읽기 전에 전제된 것이 있다.

그것은 인간을 신체와 정신을 분리해서 보고 기억이 전부라는 유물사관.

사람의 기억만을 추출하면 육신을 사라진다고 해도 그것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고 보는 것이다.

비참한 현실속에서 출생까지 모호한 화자는 자신의 존재성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나는 아빠에게도 엄마에게도 존재를 거부당한다.

엄마는 나를 기억하지 못하고 나는 엄마로부터 잊혀진다.

나는 점점 엄마를 알아보지 못하여 벽이나 바닥으로부터 엄마의 입체감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엄마에게 나도, 내게 엄마도 서로의 존재가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이다.



나는 좋았던 기억만을 제본으로 남아 이 세상을 살아내는 육신을 버리기로 한다.

기발한 착상이다.

쓰레기통에서 데려다 키웠다는 자신의 출생 이야기,

임신했다는 거짓말로 남자와 결혼하고 그것이 알려지면서 가족이 해체되는 설정,

남편이 떠나자 휘청대는 엄마.

아빠의 부재가 곧장 내 불행으로 연결되는 설정.

이런 설정은 좀구태의연하고 통속적이다.



사람은 누구나 현실을 벗어나고 싶은 욕구가 있다.

이 작품에서는 기억을 버리고 좋은 기억만을 추출해서 남는 것으로 나타난다.

기억의 망실에 대한 욕구는 뒤집어 말하면 삶에 대한 욕구다.



재미있게 읽었다.

주제는 선명하게 다가오지 않았다.



작가는 당선 소감에서

"나는 지나가는 시간과 마음을 기억하기 위해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

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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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의 질투
타나 뒤커스 외 지음, 이용숙 옮김 / 열대림 / 2004년 7월
평점 :
절판




  그 남자의 질투 | 원제 Ma"nner Kennen Keinen Schmerz (2003) 
마틴 브링크만, 안드레아스 슈타인회펠, 알렉스 카푸스, 우도 바흐트바이틀, 존 폰 뒤펠,
 초란 드르벵카, 카르스텐 프롭스트, 토르스텐 크레머, 프리돌린 쉴라이 (지은이), 조현천 (옮긴이) | 열대림
 
마치 한 쌍처럼,
그 여자의 질투,
그 남자의 질투.
 
독일 작가들의 질투에 대한 단편들을 모아놓은 것.
그 여자의 질투는 말 그대로 화자가 여성.
그 남자의 질투는 화자가 남성.
 
 
지루하고 빤한 얘기도 있었지만 재미있는 작품들이 더 많았다.
그 여자의 질투에 있는
알리사 발저의
<손가락이 열 개라서 11월은 못 센다구?>와
마이케 베첼의
<개 같은 젊은날>은 여러번 읽었다.
 
별 셋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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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인을 기다리며
존 쿳시 지음, 왕은철 옮김 / 들녘 / 2003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오래전에 본 영화 [늑대와 함께 춤을]이 생각났다.

정확히 십팔년 전이다.

첫 장면이 정면을 향해(바로 내 얼굴을 향해) 무서운 소리롤 내며 말이 달려오면서 시작되었던 것을 기억한다.



우리는 이미 미국인들의 시각으로 교육받고 그들의 시각이로 세계를 바라보는 데에 익숙해져있었다.

익숙해져 있었지만 그것이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영화를 보면서 비로소 알게 되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사회교과서에 '콜룸부스 서인도 제도 발견'이라는 단원이 있었다.

나는 그 당시 서인도라는 곳이 잠잠한 바다 한 가운데서 불쏙 솟아오른 것을 콜룸부스라는 사람이 발견했거나

아니면 안개가 뿌옇게 싸이고 우거진 나무들과 동물들만 있는 곳에 비로소 인간으로서 콜룸부스가 첫 발을 내 딛었다는 것으로 생각했다.

공부하면서 그 곳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나는 왜 그럼 그게 '발견'인가 하는 것이 참 이상했다.

선생님께 묻지는 못했다.

당시는 내 의문이 정확하게 무엇을 뜻하는 지 알 수 없어서 선생님께 뭐라고 질문을 해야하는 지도 잘 몰랐으니까.

그러나 나는 내내 뭔가 이상했다.



[야만인을 기다리며]는 문명인이 말하는 야만인에 대해 생각을 해보게 한다.

'제국'을 수호하는 책무를 하는 치안판사 '나'는 제국주의자들이 '야만인'들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혐의를 조작하고 고문하고 학대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그들을 변호하고 진실을 밝히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안전선 안에서 소극적인 노력일 뿐이고 혼자서 괴로워하는 자책일 뿐, 방관자이자 공모자였다.

-정의를 지향하는 지성인이자 욕망을 가진 한 남자로서의 고백, 자책하면서 결국 스스로를 멸망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과정에서 쏟아져나오는 솔직한 인간으로서의 절규.-

제국은 적으로 부터 안전을 지키기 위해 존재하지만 역으로 제국은 존재를 위해 없는 적을 만들고 그 적들에 대한 공포와 환상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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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믿다 - 2008년 제32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권여선 외 지음 / 문학사상사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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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이상문학상을 권여선의 <사랑을 믿다>가 받았다.

 

그녀의 작품들은 우리가 고정관념으로 갖고 있는 생각들을 뒤집어서 보여준다.

뒤집는다는 표현은 그 속을 다 벌려 잘 보여준다는 의미와는 좀 다르다.

어떤 상황에서 우리가 익숙하게 믿어버리는 것들의 정 반대 해석을 간단한 몇 문장으로 해치운다.

우리의 생각들도 관성을 갖는 거여서 섣불리 감동하며 치닫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작가보다 먼저 달려가며 지레 짐작한다.

이럴때 권여선은 뒤돌아서며 전혀 다른 곳에 서서 아무렇지 않게 서 있다.

엥? 이곳이 아니고 그 곳이었어?

그렇게 뒤통수를 맞을 때 나는 살짝 기쁘다.

나는 거기서 권여선의 매력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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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
알레산드로 바리코 지음, 김현철 옮김 / 새물결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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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숨에 읽었다.

문장에는 운율과 리듬이 있다.

짧고 단순한 문장들로 이루어진 이 작품을 다 읽고 난 후 긴 통증을 느꼈다.

작가는 아주 멀찍이서 아무런 표정도 없이 몇 마디씩 건조하게 일러준다.

이야기는 살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에 빠진 자의 눈빛, 평안하게 보이는 사랑을 등진 자의 고통이 명료하게 가슴에 남는다.

 

바다 출판사에서 출간된 알레산드로 바리코의 다른 작품 [시티]를 구입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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