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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인을 기다리며
존 쿳시 지음, 왕은철 옮김 / 들녘 / 2003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오래전에 본 영화 [늑대와 함께 춤을]이 생각났다.
정확히 십팔년 전이다.
첫 장면이 정면을 향해(바로 내 얼굴을 향해) 무서운 소리롤 내며 말이 달려오면서 시작되었던 것을 기억한다.
우리는 이미 미국인들의 시각으로 교육받고 그들의 시각이로 세계를 바라보는 데에 익숙해져있었다.
익숙해져 있었지만 그것이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영화를 보면서 비로소 알게 되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사회교과서에 '콜룸부스 서인도 제도 발견'이라는 단원이 있었다.
나는 그 당시 서인도라는 곳이 잠잠한 바다 한 가운데서 불쏙 솟아오른 것을 콜룸부스라는 사람이 발견했거나
아니면 안개가 뿌옇게 싸이고 우거진 나무들과 동물들만 있는 곳에 비로소 인간으로서 콜룸부스가 첫 발을 내 딛었다는 것으로 생각했다.
공부하면서 그 곳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나는 왜 그럼 그게 '발견'인가 하는 것이 참 이상했다.
선생님께 묻지는 못했다.
당시는 내 의문이 정확하게 무엇을 뜻하는 지 알 수 없어서 선생님께 뭐라고 질문을 해야하는 지도 잘 몰랐으니까.
그러나 나는 내내 뭔가 이상했다.
[야만인을 기다리며]는 문명인이 말하는 야만인에 대해 생각을 해보게 한다.
'제국'을 수호하는 책무를 하는 치안판사 '나'는 제국주의자들이 '야만인'들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혐의를 조작하고 고문하고 학대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그들을 변호하고 진실을 밝히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안전선 안에서 소극적인 노력일 뿐이고 혼자서 괴로워하는 자책일 뿐, 방관자이자 공모자였다.
-정의를 지향하는 지성인이자 욕망을 가진 한 남자로서의 고백, 자책하면서 결국 스스로를 멸망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과정에서 쏟아져나오는 솔직한 인간으로서의 절규.-
제국은 적으로 부터 안전을 지키기 위해 존재하지만 역으로 제국은 존재를 위해 없는 적을 만들고 그 적들에 대한 공포와 환상을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