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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슬이 데구루루 ㅣ 네버랜드 우리 걸작 그림책 20
허은순 지음, 김유대 그림 / 시공주니어 / 2009년 5월
평점 :
이 책을 보고 출간 의의를 찾기 어려워 슬펐는데, 20개나 달린 리뷰를 보고 깜짝 놀랐다. 한데 더욱 놀라운 건, 모든 리뷰가 싹 별을 다섯 개 주었다는 점이다. 아무리 좋은 책이라도 20개나 되는 리뷰가 모두 별을 다섯 개 준 경우는 한 번도 못 봤는데, 그저 놀랍다.
그러니 내가 이 책에서 출간 의의를 찾을 수 없다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책을 잘못 보았나? 책을 다시 펴 보았다. 하지만 생각이 달라지지 않는다. 나로서는 도저히 이 책의 의의를 발견하기 어렵다.
물론 이 책이 그림책으로서 지닌, 그림의 장점은 있다. 인물과 상황을 나름대로 적절히 과장하고 익살스럽게 펼쳐서 '보는 맛'을 더했다. 화가 김유대 씨의 장기가 나름 잘 발휘됐다. 사실 그림책이라면 이 정도면 절반의 성공이라 하겠다. 아니, 어쩌면 그림책에선 그림의 비중이 절대적이고 내러티브의 상당 부분이 거기에 기댄다는 장르 특성으로 볼 때 절반 이상의 성공일 수도 있다. 대부분의 리뷰에서 그림의 익살스러움에 점수를 준 것만 봐도 그렇다.
하지만 이 책의 그림이 글과 유기적으로 만나 나름의 구실을 감당해냈는냐를 따지면, 그건 또 회의적이다. 글만 봐도 뻔히 알 수 있는 상황을 익살스럽게 과장해 그렸을 뿐, 그 이상으로까지 나아간 장면이나 구성은 그다지 눈에 안 띈다.
그런데 이는, 글의 문제라 본다.
이 책의 글을 보자. 글만 한번 따로 봐보자. 뭐랄까, 알맹이라고는 없는 이야기?
요즘도 아이들이 구슬을 가지고 놀고, 또 더 큰 청소년이나 어른, 부모 세대 모두 구슬을 가지고 논 경험이 있을 것이다(요즘 세대로 올수록 줄겠지). 그리고 그 구슬이 장롱 밑으로든 어딘가로든 굴러 들어가는 바람에 그걸 꺼내려고 온갖 노력을 다 한 경험은 한두 번씩 있을 것이다. 구슬이 됐든 동전이 됐든 연필이 됐든 지우개가 됐든... 뭐가 됐든.
그런데 구슬이 굴러가서 무언가를 맞추는 게 그리도 의미 있고 대단한 현상이며, 그럴 만한 경험인가?(구슬 치기는 일제시대 때 일본 놈들이 조선의 아이들이 산으로 들로 다니면서 힘차게 뛰어노는 걸 못 봐줘서 가지고 놀라고 준 것이다. 동네 구석이나 방구석에서 쭈그려 앉아 놀라고. 에너지를 억압한 유폐의 도구인 셈이다.) 아빠가 장롱 밑에 들어간 구슬을 꺼내주려고 농을 다 들어냈다는 게, 그게 그렇게도 마음을 흔들 극적인 일인가? 서사의 정점에 설 만한 사건인가? 그 장롱 밑에서 이것저것 여러 사물들을 찾았다는 게 그리도 색다른 일인가? 여느 책에서나 나올 만한(실제로 나온 적이 많은) 뻔한 상황이고 진부한 감상 아닌가?
그런 일들이 개개인의 추억으로서는 소중할 수 있다. 그러니 그걸 바탕으로 했다면, 이 책의 글은 그 추억을 기반으로 하되 그 이상의 무엇으로 피어났어야 한다. 그래서 독자들과 공유할 '이야기'로 한 단계 올라섰어야 한다. 그래서 작가만의 무엇을 보여주었어야 한다.
남들이 다 갖고 있는 추억을 아무런 개성이나 창의력 없이 적은 것을 작품으로서 '이야기'라 하기는 민망하다. 그림이 없었으면 이 책의 글은 무어란 말인가. 물론 그림책의 글은 그림과 만나야 온전히 제 구실을 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이 책의 글은 그림 없이도 홀로 전개되고 이해된다. 그러니 그림과 만나기 전에 자기 장점과 개성을 충분히 확보했어야 한다.
글이 그렇다 보니 글과 그림의 만남 전체를 보아도 회의적이다. 내러티브를 그림이 담당하든 글이 담당하든 '글+그림'이 담당하든, 어쨌든 책이라면 그 나름의 내러티브를 고유하게 지녀야 할 터인데, 그저 앙상하다. 나아가 삶에 대한 통찰도, 색다르지만 절박한 시각도, 아이들의 가려운 구석을 긁어줄 위안도, 그저 한바탕 신나게 놀고 웃게 할 환희도, 기교도, 아예 작정하고 내뱉은 교훈도, 한낱 딱딱 떨어지는 고유의 말맛도, 그 무엇도 제대로 이룬 게 없다. 이 책이 교구 구실을 하는 유아용 보드북이 아니고서야(이런 책도 사실 그러할진대), 그런 것이 없다는 건 이 책을 볼 4-6세 아이들을 무시한 처사라고 할밖에.
그러니 이 책은 뻔한 추억과 과장된 그림에 큰 빚을 진 셈이다. 그렇게 빚을 지고서야 제 구실을 할까 말까 한 글이라면, 그런 글에서 시작된 책이라면, 그건 별로다. 그림책 글이나 그림책이 의당 그러한 것이라 믿는 건 심각한 오해인데, 글작가가 혹시 그런 오해를 한 건 아닌지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