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하는 강아지똥 (음반 + 악보집)
백창우 지음 / 길벗어린이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내가 그이 노래를 처음 들은 게 언제더라. 그래, 2003년일 거야. 동시나 동요라는 거, 어린이문학, 어린이책이라는 거 그런 거 아무것도 모를 때지.
처음 들은 노래가 <개구쟁이 산복이>야. 오디오에 씨디를 넣고 음악이 흘러나올 때 내 귀가 점점점 커지다 확 열리는 기분이 들었어. 노랫말 한마디 한마디가 흘러나올 때 그게 어쩜 그리도 쏙쏙 귀로 들어오는지, 정신이 없었지. 야 재밌다, 좋다는 느낌뿐이었어.
그 씨디는 백창우 아저씨가 꾸린 [이문구 동시에 붙인 노래들](보림)이라는 음반이야. 소설가 이문구 선생님이 남긴 동시들에다 백창우 아저씨가 곡을 붙인 노래들을 모은 거지. 시면 시, 곡이면 곡, 아이들 목소리와 연주,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고 참 좋았어. 이런 세계가 있구나, 이 세계는 어떤 세계일까 하는 마음으로 듣고 또 들었어.

그렇게 백창우 아저씨 음반에 팬이 되어갔어. [이원수 시에 붙인 노래들](보림)하고 [백창우 동시에 붙인 노래들](보림)이라는 음반까지 듣고 또 들었어. 백창우 아저씨와 굴렁쇠 아이들 동요 노래마당(공연)에도 갔더랬지. 정말이지 이건 좀 별로다고 생각되는 노래가 하나도 없으니 신기했어. 그동안 내 귀를 물들였던 수많은 가요와 팝송 들이 저 멀리 밀려나더라. 

[이원수 동시에 붙인 노래들] 2집(보림)하고 [새로 다듬고 엮은 전래동요] 2집(보림)이 새로 나오자 또 곧바로 손에 넣고 들었어. 보리출판사에서 나온 ‘보리 어린이 노래마을’ 씨리즈도 물론이고 말이야. 이 씨리즈는 널리 알려진 동시, 신선한 어린이시, 마주이야기 들이 노래로 한껏 담긴 종합선물세트랄까. 명곡이라 할 만한 노래가 많이 담겼지. <예쁘지 않은 꽃은 없다>는 아이가 쓴 시에 붙인 노래인데, 아주 훌륭한 철학이 짧고 명쾌하게 담겼다는 생각이 들어. 


그러저러하게 백창우 아저씨의 동요 음반 작업에 관심을 갖고 팬이 되었는데, 얼마 전에 선물 같은 음반이 또 나왔더라. 바로 이 [노래하는 강아지똥]이야.

‘노래하는 강아지똥’이라. “세상 모든 강아지똥들아, 노래를 부르자. 우리 다 같이 노래하는 강아지똥 아니니?”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아. 그래, 강아지똥 아닌 존재가 없을 거야. 강아지똥처럼 자기 쓸모나 가치를 아직 모르는 사람, 그런 어린이가 많을 거야. 권정생 선생님 동화 [강아지똥]이 그런 아이들과 사람들에게 위안이고 희망일 텐데, 그 강아지똥들한테 같이 노래를 부르자고 하는 거잖아. 벌써 노래를 부르고 있다는 뜻도 될 테고. 세상 모든 강아지똥들, 노래를 부르는 강아지똥들. 묘한 연대감이 생기고, 힘이 나.

음반 안에 든 책을 보니 백창우 아저씨가 왜 동화 [강아지똥]을 좋아했고 이렇게 노래를 짓게 되었는지, 음반으로 담게 되었는지 나와. 백창우 아저씨도 강아지똥이었나 봐. 자기도 강아지똥이라는 걸 알고서는 글을 쓰고 노래를 만들고 부르고, 그렇게 살아왔나 봐. 아저씨 홈페이지(100dog.co.kr) 이름이 ‘개밥그릇’이고 아저씨가 낸 어린이 음반사 이름이 ‘삽살개’인 걸 보니 더 그래.
그래서 그런지 동화 [강아지똥]을 여러 노래로 잘 변신시켰어. 별이 되고 싶어한 강아지똥, 강아지똥과 이야기를 나누는 흙덩이, 그러다 밭으로 돌아간 흙덩이, 그리고 강아지똥과 운명으로 만난 민들레까지, 그이들 이야기가 곡 하나하나에 오롯이 담겼어. 때론 곱게 때론 슬프게 때론 신나게 때론 조용하게, 저마다 듣기 좋고 부르기 좋게 말이야.

강아지똥이 고운 목소리로 꿈을 읊조리는 첫 노래 <별이 되고 싶어>를 듣고 나면, 백창우 아저씨 목소리가 들려. 자근자근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고 나면 노래들이 이어져. <속상해>라는 노래에서는 번뜩 현실의 아이들이 생각나. 노랫말처럼 “난 왜 요 모양 요 꼴로 태어난 걸까” “누가 이런 나를 좋아해 줄까” “누가 이런 나를 안아 줄까” … “누가 이런 나랑 놀아 줄까” 하고 속으로 앓고 또 앓는 아이들이 세상에 얼마나 많을까. 세상 모든 강아지똥인 아이들이 그런 생각을 한번쯤은 다 품어보지 않을까? 아이들 시로 백창우 아저씨가 만든 음반 [딱지 따먹기](보리)에 실린 <걱정이다>에서 “내 속에선 죽는 생각만 난다”고 한 아이가 떠올라. 자신없고 답답하고 자기가 못났다는 생각에 절망하고 누구 하나 같이 놀 동무가 없는 아이들, 관심에서 밀려나 외로운 아이들 마음을 그대로 담은 노래인 셈이라, 들으면서 이걸 들을 아이들 생각에 가슴이 저렸어. ‘내 얘기’ ‘내 노래’라고 들을 아이들, 아니 강아지똥들의 마음이 떠오르니까 말이야. 이 음반은 어쩌면 [강아지똥] 얘기로 그런 아이들에게 새롭게 한발 다가서려는 손짓일지 모르겠어.

흙덩이가 강아지똥한테 들려주는 이야기 <언젠가는 너도 귀하게 쓰일 날이 있을 거야>는 이 음반의 주제곡과 같아. 흙덩이가 <안녕> 하며 밭으로 돌아가고 나서는 다시 외로워진 강아지똥. 결국 민들레를 만나 <민들레는 별처럼 꽃을 피우지>에서 수줍게 자기는 ‘똥’이라 고백해. 하지만 자기도 꽃을 피울 수 있음을 알고, 동화에서 강아지똥은 비를 맞으며 민들레를 힘차게 껴안지. ‘상처입은 가랑잎이 부르는 노래’인 <그래, 그런지도 몰라>에는 1960년대에 발표된 동화 [강아지똥]이 내보인, 시대를 넘고 이을 숭고한 철학이 담겼어.
이 음반의 대표곡이라 할 14번 노래 <강아지똥>은 듣고 또 듣고 또 들어도 질리지 않아. 이 노래는 좋은 우리 동시로 만든 노래 음반인 [꽃밭](보리)에도 실렸는데, 새로 녹음을 했어. 연주도 목소리도 달라졌는데, 오랜만에 새롭게 만난 친구 같아서 반갑고 기분 좋아.

시, 그것도 동시에 관심을 이렇게 크게 갖고, 그걸 아이들이 부를 노래로 만드는 일은 참 귀한 일이야. 노래를 잃어버린 아이들한테 좋은 노래를, 그것도 아이들이 직접 쓴 시나 좋은 동시들, 잊힌 전래동요들을 모아 만든 노래를 선사한다는 건 참 보람 있는 일일 거야. 그런데 이렇게 좋은 동화 한 편으로도 음반 하나가 나왔어. 동화가 시로, 노랫말로, 노래로 나아가는 모습이 멋있어. 그러고 보면 우리 아이들은 노래를 잃은 불행한 시대에 살지만, 백창우 아저씨가 있어서 복 받은 거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동화 [강아지똥]을 몰라도, 또 잘 알아도 이 음반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쉽고 편하게 듣고 따라 부를 음반이라 생각해. 백창우 아저씨의 지난 음반들과 견주면 소리가 더 좋아진 것 같고 장정도 예뻐. 고이 간직하며 잘 듣고, 또 남들한테 선물하고 싶고, 그래서 같이 따라 부를 수 있으면 좋겠는 음반이야. 언젠가 잠깐 쉬더라도 또 이 음반을 집어 들어 듣게 될 테지. 그때 내 마음밭이 어떠하느냐에 따라 달리 들리고 달리 느끼고 감동하겠지. 내 마음밭을 잘 보듬고 갈아주겠지. 선물,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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