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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밤의 마법 아이세움 그림책 저학년 13
패트리샤 폴라코 글 그림, 서애경 옮김 / 미래엔아이세움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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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줄거리는 간단하다. 가족 모임을 하는 자리에 모인 많은 아이들과 어른들이 즐거운 한때를 보낸다. 아직은 아이인 주인공에게 아이와 아이, 어른과 아이 사이에서 피어나는 활기와 웃음, 사랑이 큰 즐거움과 추억으로 남고, 그 즐거움과 추억은 주인공이 어른이 되어도 사라지지 않은 채 다음 세대 아이들에게 전해진다. 가족이기에 맛볼 수 있는 행복과 그 이어짐을 지은이가 겪은 것을 바탕으로 그려낸 것이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이 책은 감정이입이 잘 되지 않는다. 그것은 아마도 ‘넘치는 감정’ 때문이 아닐까 한다. 이야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활기와 웃음, 애정, 행복한 마음으로 넘쳐흐른다. 그런데 그 정도가 좀 지나치다 보니 장면장면이 내 것이 되지 못하고 ‘그렇게 사는 사람들이 있나 보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진짜 있을까?’ 하는 생각이 만들어낸 거리감만 쌓인다.

말썽피우는 아이, 성질 더러운 어른, 차분한 성격의 인물은 하나도 없이 모두 활기와 웃음으로만 가득하다니,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중산층 이상의 경제적 배경’ 더하기 ‘훌륭한 교육(훌륭한 사회)’ 더하기 ‘한없는 가족의 사랑’ 더하기 ‘활기찬 천성’ 더하기 ‘그 천성의 완벽한 유전’ 더하기……, 너무 많은 조건들이 채워져야 가능한 모습 아닐까? 이야기 자체도 그리 재미있지는 않다. 중간에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도 나는 재미가 없는데, 이야기에 나오는 아이들은 참 재미있어 한다.

아쉬움을 주는 요소는 또 있다. 내용을 보면, 음식을 마련해오고 차리는 사람들, 그러니까 앞치마를 두른 사람은 대부분 여자다. 아이들에게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주는 어른들도 대부분 여자다. 야구 경기를 하는 사람들은 한 팀이 아예 다 남자다. 음식을 만들고 차리기 좋아하는 남자 어른이나 야구를 좋아하는 여자 어른은 원래 없는 건가? 남녀의 성 역할이 어느 정도는 구분돼 있어야 가족의 행복이 제대로 꽃피는 것일까?

지은이가 소중한 자기 경험을 보편화하지 못하고 자기 추억 속에서 추억이기에 가능한 즐거움만 뽑아 이야기로 펼쳐보인 것 같다. 나도 당연히 이야기 속에 나오는 가족의 사랑을 바라지만, 그것이 그렇게 즐거움만으로 채워지는 건 왠지 낯간지럽다. 실제로는 재미도 별로 없을 것 같고. 아, 그림도 그리 정감 있게 구체적으로 표현되지는 못한 것 같고, 번역 또한 아주 좋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문체에서 간혹 지루함이 베어나고, 생생한 장면이 잘 그려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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훨훨 간다 옛날옛적에 1
김용철 그림, 권정생 글 / 국민서관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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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훨훨 간다’? 제목만 봐서는 도대체 뭔지 모르겠다. 심드렁한 얼굴로 문을 나서는 할아버지에게 눈동자도 보이지 않는 웃음으로 인사를 하는 할머니. 표지 그림, 그것도 참 모를 일이다. 웬 둥그런 우물 안에서 누가 날뛰는 것 같은 모양. 뒤표지 그림, 그것도 참 모를 일이다.(사실 우물이 아니었다.) 그렇게 이 책은 궁금함이 책을 열게 한다. 아, 또 하나, 진짜 ‘제대로’ 표현된 표지의 할아버지 할머니 표정 또한 책을 훌훌 넘겨보게 만든다.

이 책은 사이좋게 지내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집에 누군가 찾아오는 이야기다. 그런데 그 찾아온 이가 ‘훨훨 (날아서) 간다’. 새도 아니고 연도 아닌데 ‘훨훨’ 소리가 나는 듯 그 모양새 그대로 나갈 수밖에 없게 되어 있다.

우선 이 책을 사볼 사람들에게 이 책은 “재미있어요!” 하고 외치고 싶다. 그리고 또 하나 “이 책 그림이 아주 제대로예요!” 하고 외치고 싶다. 정말 그 느낌 그대로 ‘킥킥킥’ 웃으며 ‘으응~’ 하며 글을 읽고 그림을 본다. 할아버지 할머니의 정겨운 표정과 둘 사이에 흐르는, 뚝뚝 떨어질 듯한 애정이 사람 사이가 어땠으면 좋겠는지를 보여주기도 한다.

그래서 책 자체가 정겹고, 뽀얀 종이에 정성을 다해 그렸을 정감 어린 색감의 그림이 화가에 대한 애정을 느끼게 해준다. 그림 그리느라 수고 많으셨다고, 참말 잘 그리셨다고 말씀드리고 싶다.(물론 이 책을 이렇게 만들어낸 편집자들도 수고가 참 많았을 거다. ^^) 그러고 보니 이 책, 애정으로 똘똘 뭉친 책이다. 하긴, ‘훨훨’ 날아서 집을 나간 그 사람에게도 우리는 정을 느낄 판이니까. 아휴, 지금 다시 펼쳐 보니까 그 사람의 얼굴 표정 또한 압권일세.

글이 별로일 가능성이 많은 그림책에서, 글이 재미있고, 그림이 그 글을 이렇게 잘 살려줄 때, 그때 그림책의 진가가 들어나는 것 같다. 아이들과 함께 글을 읽고 등장인물의 표정을 읽는 것이 진정 즐거운 일이 될 거다.(아이들이 이 책의 이야기 속에 나오는 또 다른 이야기에 얼마나 감정이입될지는 미지수지만.) 기분이 ‘훨훨’ 날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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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만 번 산 고양이 비룡소의 그림동화 83
사노 요코 글 그림, 김난주 옮김 / 비룡소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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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누구도 사랑하지 않던 고양이. 그리고 죽어도 온전히 죽지 않고 백만 번이나 되살아나, 백만 년의 세월을 살아온 고양이. 이 고양이는 자기 목숨 그대로, 그것 그대로 충만하게 살다 죽지 못하고 자기 주인들 삶의 방식 때문에 죽는다. 매번 그랬다. 주인들은 고양이가 죽으면 슬프게 울었다. 하지만 고양이는 결국 그 주인들 때문에 죽은 거다. 주인들이 자기 방식대로만 고양이를 사랑하다, 그 방식대로 죽이고 말았다. 내 삶의 방식이 누군가를 죽일 수 있다는 것, 고양이 주인들은 그게 슬퍼서 울었을까? 단지 고양이의 죽음, 그 단절 때문에 울었겠지?(고양이에게는 단절이 아니었지만)

누구도 사랑하지 않고 자기만을 좋아했던 고양이에게도 사랑이 찾아왔다. 아름다운 고양이가 자기 사랑을 받아줬고, 그들은 그 목숨 그대로를 충만하게 온전히 살아냈다. 존재 그대로 살아낸 것이다. 그것이 가장 정직하면서도, 자기 목숨이 부르는 삶일 테다. 그렇기 때문에 백만 번 되살아난 고양이도 소리 없이 목숨을 다했다. 다신 되살아나지 않았고, 충만했던 삶을 그만 마쳤다.

결국 사랑을 할 수 있고서야 윤회를 끊고 온전히 죽을 수 있다는 걸 말해준다 하여 사람들이 이 책을 좋아하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처음 읽었을 때엔 그런 생각보다는, 주인의 삶의 방식 때문에 죽을 수밖에 없는 고양이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은 바로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는 거다. 우리는, 나는 내 삶의 방식대로, 바로 그것대로만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지 않은지, 그래서 그 대상을 결국은 죽이고 있는 게 아닌지…. 물론 이런 생각도 한다. 나는 또 누군가에 의해 그이의 삶의 방식대로만 사랑받고 있어서 그거 때문에 죽음을 당하고 있지는 않은지.

사랑한다는 것은 어떤 거여야 할까. 계속되는 고양이의 죽음이 소개되는 앞부분을 보며 나는 그런 고민을 했다. 나는 누군가를 내 식대로 사랑하며 죽이고 싶지 않고, 또 남의 식대로 사랑받기 때문에 죽음을 당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그것이 제대로 되나. 우리는 남의 자리에 서는 연습을, 내가 내 자리에만 서 있지 않은지 반성하는 연습을, 해보지 못했으니 말이다. 내 식대로 사랑하는 것이 내가 상대를 제대로 사랑하는 것인 줄 알며 살고 있다. 자기 삶의 방식을 찾고, 그것을 누군가와 나누고 다듬으며, 그 목숨 그대로 함께 살아내 삶을 일궈가는 것. 그러고픈 마음이 세게 든다.

생각할 거리를 많이 주는 책이다. 그림도 매우 좋고, 두고두고 보면 좋을 책 같다. 강한 눈빛의 고양이만 들여다보고 있어도 뭔가 생각하게 된다.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많은 것 같다. 읽는 이의 삶이 어떤 감상을 끌어낼지 결정할 거다. 어! 그렇다면 우리는 자기 삶의 방식대로만 이 책을 사랑하게 되는 건가? 그렇지 않겠지. 이런 서평들 보면서, 또 아이나 친구들, 그리고 사랑하는 이와 함께 보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눠야 하고, 이젠 그럴 수 있을 테니까. 아이들도 자기 삶이 있으니, 그것 그대로 읽고 뭔가 생각할 거 같다. 그림만으로도 좋아할 거 같고. 그러면 두고두고 또 볼 테고. 히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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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마는 맛있어 어린이 들살림 1
도토리기획 엮음, 양상용 그림 / 보리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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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들살림’이라는 시리즈 이름이 붙어 있는 책이다. 일단은 이 시리즈로 다른 책들이 뭐가 있는지 궁금하다. 이 책은 들살이를 어떻게 하는지, 들에서 사는 고구마가 어떻게 자라 우리에게 오는지, 그런 것들을 아이들에게 보여주려는 책이다. 한 해 동안 진이네 가족이 고구마 싹을 틔워 순을 고르고 밭에 심고 다시 거두기까지, 그 과정을 죽 보여준다.

이 책은 말이 정겹고 그림이 정겹다. ‘고구마’라는 말 자체가 되씹어 볼수록 정이 가는 말이라서 더욱 그렇다. 고구마나 감자를 먹기 싫어하는 아이들이 많을 거다. 그래서 제목을 그렇게 붙였을까? 제목이 내용과는 좀 어울리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 실제로 물고구마는 그리 맛도 없는걸? ^^;

이 책의 내놓을 점은 그림 같다. 순박한 이들이 일하고 먹고 사는 모습이 잔잔하게 담겼다. 그림만 보면 나도 그런 곳에서 날 것 그대로 흙과 함께 살고 싶다. 지지리 궁상일 테고 그림에 잠겨 보이지 않는 촌티나 힘겨움이 빡빡하겠지만, 그대로 어떤가. 그렇게라도 제 생명력 그거 하나로만 정직하게 사는 동식물들과 어울려 사는 것이 참 좋지 않은가. 그림책 하나 보고선 어떻게 그런 감상적인 생각을 할 수 있냐구? 그렇게 묻지 말지, 나는 절박해서 말하는 건데….

암튼 그림에서 보여주는 삶 자체만 두고 볼 때 나는 ‘고구마가 맛있어’라는 제목보다는 ‘나 이렇게 살고 싶어’가 더 좋겠다. 내가 ‘고구마는 맛있어’를 읽은 느낌에 달 제목인가?

아이들이 이 책을 읽고 진이 생활이 자기 생활이랑 다르다는 점만 확인하지 않고 ‘어 재밌겠다, 맛있겠다’고 생각하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그런데 아이들이 그럴지는 잘 모르겠네…. “엄마, 고구마 먹고 싶어!” 이렇게만 말해다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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