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문병란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온 밤에
꼭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

무수한 어깨들 사이에서
무수한 눈길의 번뜩함 사이에서
더욱 더 가슴 저미는 고독을 안고
시간의 변두리로 밀려나면
비로소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

수많은 사람 사이를 지나고
수많은 사람을 사랑해 버린 다음
비로소 만나야 할 사람
비로소 사랑해야 할 사람

이 긴 기다림은 무엇인가.
바람 같은 목마름을 안고
모든 사람과 헤어진 다음
모든 사랑이 끝난 다음
비로소 사랑하고 싶은 사랑이여
이 어쩔 수 없는 그리움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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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설임없이 떠날 수 있는 건 

주머니가 가벼서워서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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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여울                                                     

                                                                김소월

당신은 무슨 일로 그리합니까? 홀로이 개여울에 주저앉아서  
  

파릇한 풀포기가 돋아 나오고 잔물이 봄바람에 해적일 때에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시던 그런 약속이 있었겠지요

날마다 개여울에 나와 앉아서 하염없이 무엇을 생각합니다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심은 굳이 잊지 말라는 부탁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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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상상과는 너무 다르다.

십대 후반, 혹은 이십대 초반쯤에는 서른살 정도면 인생의 모든 것이 안정적인 궤도에 올라있을 거라고 믿었다. 표면적으로는 나 혼자 사는 원룸과 재산목록 일호로 꼽는 잘 빠진 자동차, 열정을 다해 일하고 싶은 직업과 일에 집중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약간 버거운 연봉, 뭐 이런 것을 소유하고 있을 줄 알았다. 그뿐 아니라 거창한 삶의 목표를 향해 질주하며 나를 이해하고 존중해주는 인생의 동반자와 사랑에 빠져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21세기에는 자동차가 하늘을 날아다닐 거라는 상상보다 훨씬 현실적이지 않은가.

 그래서 서른살 이후의 인생이란 날개를 활짝 펴고 그 궤도를 따라서 멋지게 비행만 하면 될 거라고 기대했다. 정해진 궤도를 따라 살아야 한다는 것 때문에 살짝 지루해질 수도 있지만, 갈팡질팡하고 불투명한 스무살 무렵에는 오히려 그런 것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젊음의 절정으로 빛날 삼십대를 생각하면 황홀해졌다. 그래서 그때는 서른살이 넘으면 인생을 견뎌내기 훨씬 수월할 것 같았다.

 그런데 서른셋씩이나 되고 보니 달라진 것이 별로 없다. 삼십대는 빛나지도 않고 젊음의 절정도 아니며 여전히 바람과 파도가 아슬아슬하게 키를 넘기는 태풍 속일 뿐이다. 안정적인 궤도라는 것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겠고 이루어놓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삶이 안정되어야 한다는 강박관념만 가슴을 짓누른다. 인생은 점점 더 살아가기가 팍팍하고 피 속에는 세상의 찌꺼기까지 잔뜩 끼어 혼탁해진 것 같다. 배신이라도 당한 기분이다. 물론 나 자신에게 말이다. 이런 지경이니 사십대는 기대와 상상이 되기는커녕 낭떠러지 같은 기분마저 든다. 사십대를 기대하기에는 인생에 대해 너무 많이 알아버렸다.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나아지는 것은 없다. 독하게 마음먹고 인생이라는 밭을 다 갈아엎기 전에는 말이다. 뭔가 대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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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은 가령 이런 식으로 <발생>한다. 너와 나 사이에 팽팽하게 지속되고 있던 긴장의 끈이 한순간에 끊어지고 그리하여 아득한 거리로 서로 밀려나면서 그 사이에 황량한 모래벌판이 가로놓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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