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네 살 때 나는 누구에게나 무슨 일은 일어난다는 것을 알았지. 그리고 차츰 나이를 먹어가면서 내게로 걸어들어오는 타인의 불신이나 불행을 튕겨내기 위한 또 다른 방패를 하나 마련해야 한다는 것도 알았지. 그건 당신도 마찬가지 아니었을까. 당신 눈 속에 내가 거울처럼 비춰졌을 때 살아 있어 누리는 즐거움을 그때 처음 느꼈다면, 그래 그건 좀 지나친 표현일 거야.
사람의 몸에서 가장 정신적인 곳이 어디냐고 누군가 물은 적이 있지. 그때 나는 어깨라고 대답했어. 쓸쓸한 사람은 어깨만 보면 알 수 있잖아. 긴장하면 딱딱하게 굳고 두려우면 움츠러들고 당당할 때면 활짝 넓어지는게 어깨지.
우리의 삶을 습격하는 것들이란 어쩌면 대부분 그러할 것이다. 예측할 수 없었기에 놀라고 의아해하는 것일 뿐, 그 때문에 삶이 심각해지는 경우는 그다지 많지 않다. 가벼운 웃음을 터뜨리게 하거나 행복을 안겨주는 기습은 또 얼마나 많은가. 그래서 삶은 긴장과 기대 사이의 어떤 지점에서 제법 평온하게 유지될 수 있는 것이다.
내 스스로 느끼는 것보다 타인에게 강요받은 무기력이 훨씬 더 위압적이라는 것을 그즈음 나는 절실하게 느끼고 있었다. 내가 선택한 자유가, 그 의미가 폄하되는 것은 씁쓸한 일이었다.
금을 얻기 위해서는 마음속에 가득찬 은을 버려야 하고, 다이아몬드를 얻기 위해서는 또 어렵게 얻은 그 금마저 버려야 한다고... 버리면 얻는다. 그러나 버리면 얻는다는 것을 안다 해도 버리는 일은 그것이 무엇이든 쉬운 일이 아니다. 버리고 나서 오는 것이 아무것도 없을까봐, 그 미지의 공허가 무서워서 우리는 하찮은 오늘에 집착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