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 10
편집부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1996년 11월
평점 :
절판


클램프 만화에 대해서 솔직히 나는 지나칠정도로 열광한다
진한 눈매의 주인공들에 대한 동경이나 운명의 수레바퀴에 짓이겨죽는 희생양들에 대한 동정으로  그것을 보는 것은 아니다. 단지 그들의 아름다움이 나를 매료시키고 마는 것이다.

클램프의 만화는 어느정도 이어지는 그룹들이 있다. 카드캡터 사쿠라-위시로 이어지는 밝고 상큼한 이야기와  레이어스 - 동경 바빌론 - X - 성전 - 클로버로 이어지는  선도 악도 없는 묘한 경계.그리고 비극적인 것들.. 어느 한쪽의 그들만의 진실들이 숨쉬는 이야기가 그것이다.  첫 부류가 한없이 밝은 분홍빛이라면 두번째 부류는  묘한 어두움을 뿜는 짙은 흑적색이다.

"성전 또다른 색"
지금 이야기 하고자하는 "성전"은 두번째 부류안에서 약간은 다른 색을 시도한 흔적이 보이는 묘한 이야기이다. 흑적색을 떠나 좀더 선명한 아름다움을 이야기하고 싶어한다  그리고 약간의 절대 절망에서 벗어나 보고자한다.. 클램프의 자의든 타의든 간에....그러나..성공일까... 그러나 그 아름다움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X를 제외하면..  가장 아름답다고 하고 말하고 싶다.

"성전"에서의 인물들은 불교경전에 있는 이름들을 도용했다.
"아수라, 공작, 야차, 나찰, 가루다...."
이 이름들의 인물들도 경전에 나오는 이름들의 원주인들을 닮았다. 악기를 다루는 건달파왕....구원과 파괴의 양면성을 가진 아수라... 새의 형상이 따라다니는 가루라왕 등등... 관계도 비슷하게 연결시킨다. 야차왕의 동생을 나찰이라 부른다던지.. 그러나 역시 여느 클램프 흑적색작품들에서와 같이. 선악의 개념을 인물들에 부여하지는 않는다. 아니 경전에는 '선'의 편에 분류하는 이들을 '악'처럼 묘사해놓는다. 성전에서 천계를 어질러버린 "제석천"이나 주인공인 아수라 일행을 끊임없이 괴롭히는 "광국천"등이 그렇다. 그렇지만 마지막에서의 반전은 역시 클램프의 허무적인 운명론적인 가치관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그들만의 진실"
레이어스에서도 드러나는 "절대악은 없다"라는 입장은 어쩌면 일본내의 주류흐름이라는 느낌도 든다. 그들만의 진실과 그들만의 사정에 의해 세상의 주류흐름에서 '악'으로 평가되는 슬픔이 클램프의 이야기를 비극으로 만드는 것이다. 권선징악의 희망적 요소는 그들의 이야기에는 없다.
단지.."그들만의 진실"이 빗어내는 비극이 그들이 만들어내는 묘한 흑적색의 흐름을 빛나게 할 뿐이다.

'아수라'에게는 자신을 낳은 존재로부터의 부정으로 시작되는  파괴적인 아픔이 있고.(끝내 어머니를 죽이고 만다.) '제석천'에게는 예언의 시행을 막기로한 '아수라왕'과의 약속이 있다. 제 민족을 죽음으로 몰아갔지만 '아수라'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야차왕'의 진실이 있고 아버지와 어머니의 죽음으로부터 강한자를 선택할수밖에 없었던 '건달파왕'의 진실도 있다.

거기에는 악도 선도 없다 그저 운명의 수레바퀴만이 돌아갈 뿐이다. 그들은 운명이라는 거대한 바퀴에 저항하기도하고 순응하기도하며 그들의 진실에 충실할 뿐이다.

"낯선 그러나 아름다운"
클램프에는 상당히 많이 우리나라에서 말하여 지는 '변태적인' 사랑의 모습 많이 나온다. 동성애,근친상간은 부지기수이고 건달파왕의 모친이 어린 야차왕을 보고 평생눈물로 지냈다던지...제석천이 아수라왕의 시체를먹고 그와 영원히 살려한다던지...하는 모습들은 언뜻 딱 떼어보면 변태적이다...그러나 성전안에서는 아름다움이고 사랑의 모습으로 인정받는다.

제석천은 아수라왕과의 약속을 위해 자신을 포기하고 아수라와 야차왕은 서로에 대한 애정으로 운명의 궤도를 바꾼다. 수많은 죽음들이 제단에 바쳐지지만 성전에는 절대 절망을 이야기 하지 않는다. 사랑으로 멸망의 궤도까지도 바꿀수 있다 이야기한다. 파괴신 아수라가 아닌 구원신 아수라의 부활이 그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말한다.. 엄청난 대의 명분도 커다란 희생도.. 그 무엇도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신실한 그리고 충실한 사랑이라고 .. 그리고 어떠한 희생이 있다해도 자신의 마음에 충실하라고...그것이 최선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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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이데올로기 1
칼 마르크스.프리드리히 엥겔스 지음, 박재희 옮김 / 청년사 / 2007년 3월
평점 :
품절


처음 이책을 읽었던건 스무살이 갓넘어가던 시절이었다.

별로 친하지도 않았던 선배가 자기 군대가기전에 애들좀 키워보겠답시고  새내기 둘을 잡고 한겨울 12월 종강을 훌쩍넘긴 시기에 신림동에 있는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석양무렵에 나래를 편다"라는 다소 긴제목의 카페에서 이 책을 가지고 세미나를 해줬었더랬다.

지금 생각해봐도 그 선배가 무슨생각으로 이책을 새내기에게 그것도 학회한번 제대로안해본 새내기에게 권했는지 알길은 없다. 사실 그러기에는 좀 어렵고 급진적이기도 할뿐더러 사전자료나 이해가 없으면 당초에 이걸 어쩌자는 것인지 잘 모르는 면이 있다. 상당히 이상적으로 느껴진다.

그러나 고전은 고전이다. 읽은 후 새록새록 생각날때마다 힘이되고 이해가 되고 의미가 된다.  이책만은 한번이라도 꼭 읽어봐야 되는 것이다라고 정리되는 책이다. 고등학교때까지 어렴풋이 알고 있는 "사회주의" "공산주의"라는 것의 정체를 아주 조금씩 깊게 알아가는 길이 된다.

굳이 내가 사회주의자가 아니더라도 내가 무엇을 하든 어디에 있든 내가 바라보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지침서가 되기도 한다. 스무살이 넘은 누군가라면.. 꼭 한번 이책을 읽고 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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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블로그 : 바람이 지나가듯
<논평> '참정'할 수 없는 대의민주제의 현실을 직시하자 - 인권운동사랑방


시정잡배들의 추악한 정치 싸움판이 되어 반민주, 반인권 법률을 양산해 온 국회가 드디어 일을 내고 말았다. 부정부패와 당리당략에 매달려 이전투구에 골몰하던 야당이 수적 우위를 앞세워 대통령의 직무를 정지시킨 것이다.

검찰의 불법 대선자금 수사로 궁지에 내몰린 야당들이 도덕성이나 정당성도 갖추지 못했다는 것과 대통령 탄핵이라는 국가의 중대사안도 정치적 기득권을 회복하려는 술수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재삼 확인할 필요도 없다. 5공 신군부, 냉전수구의식과 지역주의에 뿌리내리고 있는 그들은 그러기에 들끓는 반대 여론도 외면한 채 탄핵을 결행하는 폭거를 저질렀다.

그렇다고 노무현 대통령이나 열린우리당이 작금의 사태를 분노할 자격이라도 있는가! 그들은 이라크 파병, 한-칠레 FTA, 집시법 개악, 인터넷 실명제 등과 같이 기본권을 침해하는 각종 법안과 결의안을 수구보수정당과 한편이 되어 통과시키지 않았던가. 신자유주의 경제강령을 무슨 경전처럼 떠받들고 민중의 생존권을 압살하는 정책 강행을 개혁이라고 호도하던 그들이 지금에 와서 민주투사인 양 치장하는 것도 역겹기만 하다.

이번 사태를 통해 우리가 진정 분노해야 하는 것은 이 나라 주권자들이 정치로부터 배제되어 들러리가 되고 있는 정치현실이다. 대의민주주의에서 국회의원들에게 국회를 이전투구의 전투장으로 삼을 권능을 부여한 것은 참담하게도 주권자들이다. 주권자들은 4년마다 한번 투표로 대표를 뽑을 수 있을 뿐, 그 대표를 소환할 수도, 주권자들이 자신들에게 필요한 법안을 직접 발의할 수도 없다. 더욱이 정당을 만들어 국회에 진출하기도 어렵다. 이런 예들은 이미 다른 정치 선진국들에서는 일반적인 정치제도가 되었음에도 말이다.

그렇지만, 언제까지 가짜 대표들에게 대표성을 위임한 채 국회를 바라보며 분노와 허탈의 종주먹질만 해댈 것인가. 오늘 6월 항쟁을 계승하여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양 판치고 있는 가짜 민주주의 정치판을 뒤엎는 것이 진정 6월 항쟁의 계승일 것이다. 그 길은 주권자가 직접 참정할 수 있는 정치제도를 수립해야만 이룰 수 있다. 그것이 가짜 대표들이 저지른 이번 탄핵 사태를 통해 우리가 깨달아야 하는 인권적인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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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우주 2004-03-16 1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말도 상당히 공감을 합니다.

가을희망 2004-03-16 16: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안 정당이 없다면 국민들이 직접 참정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참정권은 민주주의의 기본권인데 그것이 보장되지 못하는 지금 상황이 부조리하다고 생각합니다.
 
 전출처 : 파도너머 > 보수와 진보, 그리고 진짜 적.

1.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

예전 어디선가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누군지 굉장히 객관적이고 공정한 사람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사실 세상을 살아나가면서 가장 치사하고 비겁한 종류의 것은 이런식의 양비론 혹은 양시론이다.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객관이라는 환상에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사로잡혀 있다.  그러나, 그런 객관이라는 환상을 지켰을때(지킨다고 본인들이 생각할때), 우리는 거의 대부분 현상유지라는 권력의 입맛에 협조하는 것이 되고 만다.  그런 의미에서 오히려 부패하여 썩은 냄새가 나고 파리가 꼬이는 극보수 반동보다 더 무서운 건 저런 멋진 레토릭을 만들고 구사하는 자들이다.(가끔씩 조선일보보다 중앙일보가 더 무서워 보이는 이유다..)

2.

보수가 썩어 문드러져 부패한 건 누구나 다 안다.  아무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사과상자를 넘어서 트럭채로 돈을 띠어갔다.  우리 나라에서 이런 자들, 이런 계층들이 보수라고 떠드는 자체가 코미디다.  역사적으로 보수는, 기존의 도덕과 제도를 고수하는 자고자 하는 자들은 그들의 존재 근거 자체가 아주 아주 강력하고 철저한 도덕성이었다.  도덕성이 무너진다는 것은 보수층의 존재의 기반 자체가 무너지는 것이고, 당연히 부패한다는 것은 스스로를 부정하고 망하는 길이다.  그러므로 지금 보수대연합을 소리치고 있는 자들은 보수라고 말할 수 없다.  그저 과거의 기득권을 잃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는 반동 수구세력일 뿐이다.  '보수는 부패로 망한다는 것'은 동어반복이다.  개념적으로 부패한 보수라는 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3.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고 한다.  같은 현상을 다양하게 말하는 법이 있다.  나이에 걸맞지 않는 행동을 하는 사람을 우리는 childlike 즉 어린아이 같이 순수하다고 말할 수도 있고, 반면에 childish하다고, 즉 유치하고 철이 안들었다고 말할 수 있다.  '분열'도 마찬가지이다.  다양성이 살아있다라고 말할 수 있지만, 한쪽에서는 분열이다, 치고박고 싸운다라고 말한다.  그럼 과연 진보는 분열로 망하는가?  진보를 더 나은 상태를 위해 현실을 어떤 모양새로든 바꾸려고 하는 것(과거 이성과 계몽에 입각한 역사의 '진보'와는 다른 쓰임새이다)라고 한다면 진보는 다양할 수밖에 없다.  보수하기 위해서는 한맘이 되어 지키면 되는 것이지만, 현실을 바꾸는데에는 당연히 거기에 참여하는 사람만큼이나 다양한 변화의 방향, 유토피아의 모습이 존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자연히 진보는 변화를 원한다는 것 외에는 다른 공통점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할 수밖에 없다.  중점(환경,정치개혁,사회,성(性),경제,노동,인권 등)에 따라, 방법 및 속도(급진,온건,혁명,개혁,제도권 당중심,자율주의 등)에 따라, 그외 다양한 기준에 따라 이들은 그야말로 '분열된 상태'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과연 그게 분열된 것일까? 

다양체를 분열이라고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통합, 통일을 통해 이득을 보는 자들의 레토릭일 뿐이다.  독재자들의 시대를 지나오면서, 혹은 그 이후, 지금까지도 새로운 의견, 저항을 말하는 자들에게는 화합을 깨뜨리는 분열자라는 낙인이 서슴없이 그들에게 찍혀왔다는 것을 기억해보자.  기존의 건축물을 부수거나 고치기 위해서는 균열을 내고 새로운 조합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할 때, '화합', '하나가 된다는 것'에 대한 또 하나의 강력한 환상, 허상은 결국 기존의 틀을 고수하고자 하는 자들의 레토릭일 뿐인 셈이다. 

진보는 다양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것은 완전 틀린 말일뿐 아니라, '흰색'은 '흰색'이라 망한다는 식의 이율배반적 논리일 뿐이다.  오히려 진보는 그 분열때문에 진보이며, 존재한다.  들뢰즈/가타리가 모든것을 집어먹는 자본주의에 대한 대항마로 '분열증'을 내세운 것도 이런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른다.  물론 들뢰즈/가타리도 이말을 써서 엄청난 오해와 비난을 받았다고 한다...

대신 진보에는 '단결'대신 '연대'라는 개념이 있다.  다양성의 장 자체를 지키거나, 되찾거나, 만들어내기 위한 공동의 노력으로서의 '연대'는 그 안에서 나 자신이 사라지고 그저 국민의 한 사람이 되어버고 말뿐인 '대동단결'과는 다른, 다양성의 존립을 위한 전략적하고 합리적인 행동이다.   진보는 분열해있지만, 한편으로 연대를 한다.  그리고 최근 넌센스적인 탄핵정국은 많은 다양체들을 '민주주의 수호'라는 구태의연하지만, 아직도 필요할 수밖에 없는 구호아래 연대하게 만들었다.  반동분자들은 야합따위는 알지만, 이런 '연대'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그들은 '노사모가 불법집회를 통해 국민들을 현혹하고 혼란을 조장한다'따위의 말을 하고 있다.

4.

이 세상의 모든 흑백논리, 양자논리는 배척하여야 한다.  보수와 진보라는 양자구도 역시 지극히 상대적인 개념을 하나의 절대적 잣대, 장 속에 몰아넣는 짓이며, 대부분 그것은 권력의 불순한 의도에서 기인한다.  보수와 진보는 틀리며, 보수와 다양체의 연대가 맞을 것이다.  다시 한민당은 아예 공개적으로 '친노와 반노의 세력구도 싸움이다'라는 말을 내세웠다.  그게 사실인가?  과연 이 세상은, 이 대한민국은 친노 아니면 반노일 뿐인가?  광화문의 연대는 그저 친노들의 뭉침에 불과한 것이었나?  너무 노골적이고 유치하다.  대부분 반동세력은 이렇게 세련되지 못하고 쉽게 알아볼 수 있다.  수십년 동안 투쟁해서 상당히 얻은 민주화의 결과는 적어도 형식상 이제 완숙한 승리 앞에 와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오락게임을 하면 늘 진짜 나쁜놈 대왕이 나오기까지 크고 작은 중간 왕들을 격파해야 하듯이 나는 이 멍청한 반동세력들은 중간왕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싶다.  진짜 왕은 아직 그 실체를 드러내지 않고 있다.  혹은 이미 우리 주변에, 우리 안에 자리를 펴고 있는지 모른다.  바로 자본이다. 

 

적은 어디에 있는가.
야만인은 어디에 있는가.
신체 구석구석에, 내장 속까지 각인된
자본의 힘, 권력의 힘.

* "검은비"님 그림인데, 글을 쓰다가 제 생각과 너무 잘 맞는것 같아 붙였습니다.  취지에 맞지 않거나, 좋지 않다고 생각되시거나, 맘에 드시지 않으시면 즉시 지우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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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전에 들었던 이 노래. 정권이 3번이나 바뀌었지만 정녕 바뀐 것은 무엇인가? 대통령은 바뀌어도 국회의원은 살아 남는다. 그리고 노래는 여전히 의미가 있다. 통탄한다...

 

아, 대한민국이여...

 

 

             아, 대한 민국

 

                                              정태춘

 

우린 여기 함께 살고 있지 않나
사랑과 순결이 넘쳐흐르는 이 땅
새악시 하나 얻지 못해 농약을 마시는
참담한 농촌의 총각들은 말고
특급 호텔 로비에 득시글거리는
매춘 관광의 호사한 창녀들과 함께
우린 모두 행복하게 살고 있지 않나
우린 모두 행복하게 살고 있지 않나
아~ 우리의 땅 아~ 우리의 나라

우린 여기 함께 살고 있지 않나
기름진 음식과 술이 넘치는 이 땅
최저임금도 받지 못해 싸우다가 쫓겨난
힘없는 공순이들은 말고
하룻밤 향략의 화대로 일천만원씩이나 뿌려대는
저 재벌의 아들과 함께
우린 모두 풍요롭게 살고 있지 않나
우린 모두 만족하게 살고 있지 않나
아~ 대한민국 아~ 우리의 공화국

우린 여기 함께 살고 있지 않나
저들의 염려와 살뜰한 보살핌 아래
벌건 대낮에도 강도들에게
잔인하게 유린 당하는 여자들은 말고
닭장차에 방패와 쇠몽둥이를 싣고 신출귀몰하는
우리의 백골단과 함께
우린 모두 안전하게 살고 있지 않나
우린 모두 평화롭게 살고 있지 않나
아~ 우리의 땅 아~ 우리의 나라

우린 여기 함께 살고있지 않나
양심과 정의가 넘쳐 흐르는 이 땅
식민 독재와 맞서 싸우다
감옥에 갔거나 어디론가 사라져간 사람들은 말고
하루 아침에 위대한 배신의 칼은 휘두르는
저 민주인사와 함께
우린 너무 착하게 살고 있지 않나
우린 바보같이 살고 있지 않나
아~ 대한민국 아~ 우리의 공화국

우린 여기 함께 살고 있지 않나
거짓 민주, 자유의 구호가 넘쳐흐르는 이 땅
고단한 민중의 역사
허리잘려 찢겨진 상처로 아직도 우는데
군림하는 자들의 배 부른 노래와 피의 채찍 아래
마른 무릎을 꺾고
우린 너무도 질기게 참고 살아왔지
우린 너무 오래 참고 살아왔어
아~ 대한민국 아~ 저들의 공화국
아~ 대한민국 아~ 대한민국

 

 

출처블로그 : 열받은 가장 거대한 아스피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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