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파도너머 > 보수와 진보, 그리고 진짜 적.

1.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

예전 어디선가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누군지 굉장히 객관적이고 공정한 사람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사실 세상을 살아나가면서 가장 치사하고 비겁한 종류의 것은 이런식의 양비론 혹은 양시론이다.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객관이라는 환상에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사로잡혀 있다.  그러나, 그런 객관이라는 환상을 지켰을때(지킨다고 본인들이 생각할때), 우리는 거의 대부분 현상유지라는 권력의 입맛에 협조하는 것이 되고 만다.  그런 의미에서 오히려 부패하여 썩은 냄새가 나고 파리가 꼬이는 극보수 반동보다 더 무서운 건 저런 멋진 레토릭을 만들고 구사하는 자들이다.(가끔씩 조선일보보다 중앙일보가 더 무서워 보이는 이유다..)

2.

보수가 썩어 문드러져 부패한 건 누구나 다 안다.  아무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사과상자를 넘어서 트럭채로 돈을 띠어갔다.  우리 나라에서 이런 자들, 이런 계층들이 보수라고 떠드는 자체가 코미디다.  역사적으로 보수는, 기존의 도덕과 제도를 고수하는 자고자 하는 자들은 그들의 존재 근거 자체가 아주 아주 강력하고 철저한 도덕성이었다.  도덕성이 무너진다는 것은 보수층의 존재의 기반 자체가 무너지는 것이고, 당연히 부패한다는 것은 스스로를 부정하고 망하는 길이다.  그러므로 지금 보수대연합을 소리치고 있는 자들은 보수라고 말할 수 없다.  그저 과거의 기득권을 잃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는 반동 수구세력일 뿐이다.  '보수는 부패로 망한다는 것'은 동어반복이다.  개념적으로 부패한 보수라는 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3.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고 한다.  같은 현상을 다양하게 말하는 법이 있다.  나이에 걸맞지 않는 행동을 하는 사람을 우리는 childlike 즉 어린아이 같이 순수하다고 말할 수도 있고, 반면에 childish하다고, 즉 유치하고 철이 안들었다고 말할 수 있다.  '분열'도 마찬가지이다.  다양성이 살아있다라고 말할 수 있지만, 한쪽에서는 분열이다, 치고박고 싸운다라고 말한다.  그럼 과연 진보는 분열로 망하는가?  진보를 더 나은 상태를 위해 현실을 어떤 모양새로든 바꾸려고 하는 것(과거 이성과 계몽에 입각한 역사의 '진보'와는 다른 쓰임새이다)라고 한다면 진보는 다양할 수밖에 없다.  보수하기 위해서는 한맘이 되어 지키면 되는 것이지만, 현실을 바꾸는데에는 당연히 거기에 참여하는 사람만큼이나 다양한 변화의 방향, 유토피아의 모습이 존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자연히 진보는 변화를 원한다는 것 외에는 다른 공통점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할 수밖에 없다.  중점(환경,정치개혁,사회,성(性),경제,노동,인권 등)에 따라, 방법 및 속도(급진,온건,혁명,개혁,제도권 당중심,자율주의 등)에 따라, 그외 다양한 기준에 따라 이들은 그야말로 '분열된 상태'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과연 그게 분열된 것일까? 

다양체를 분열이라고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통합, 통일을 통해 이득을 보는 자들의 레토릭일 뿐이다.  독재자들의 시대를 지나오면서, 혹은 그 이후, 지금까지도 새로운 의견, 저항을 말하는 자들에게는 화합을 깨뜨리는 분열자라는 낙인이 서슴없이 그들에게 찍혀왔다는 것을 기억해보자.  기존의 건축물을 부수거나 고치기 위해서는 균열을 내고 새로운 조합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할 때, '화합', '하나가 된다는 것'에 대한 또 하나의 강력한 환상, 허상은 결국 기존의 틀을 고수하고자 하는 자들의 레토릭일 뿐인 셈이다. 

진보는 다양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것은 완전 틀린 말일뿐 아니라, '흰색'은 '흰색'이라 망한다는 식의 이율배반적 논리일 뿐이다.  오히려 진보는 그 분열때문에 진보이며, 존재한다.  들뢰즈/가타리가 모든것을 집어먹는 자본주의에 대한 대항마로 '분열증'을 내세운 것도 이런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른다.  물론 들뢰즈/가타리도 이말을 써서 엄청난 오해와 비난을 받았다고 한다...

대신 진보에는 '단결'대신 '연대'라는 개념이 있다.  다양성의 장 자체를 지키거나, 되찾거나, 만들어내기 위한 공동의 노력으로서의 '연대'는 그 안에서 나 자신이 사라지고 그저 국민의 한 사람이 되어버고 말뿐인 '대동단결'과는 다른, 다양성의 존립을 위한 전략적하고 합리적인 행동이다.   진보는 분열해있지만, 한편으로 연대를 한다.  그리고 최근 넌센스적인 탄핵정국은 많은 다양체들을 '민주주의 수호'라는 구태의연하지만, 아직도 필요할 수밖에 없는 구호아래 연대하게 만들었다.  반동분자들은 야합따위는 알지만, 이런 '연대'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그들은 '노사모가 불법집회를 통해 국민들을 현혹하고 혼란을 조장한다'따위의 말을 하고 있다.

4.

이 세상의 모든 흑백논리, 양자논리는 배척하여야 한다.  보수와 진보라는 양자구도 역시 지극히 상대적인 개념을 하나의 절대적 잣대, 장 속에 몰아넣는 짓이며, 대부분 그것은 권력의 불순한 의도에서 기인한다.  보수와 진보는 틀리며, 보수와 다양체의 연대가 맞을 것이다.  다시 한민당은 아예 공개적으로 '친노와 반노의 세력구도 싸움이다'라는 말을 내세웠다.  그게 사실인가?  과연 이 세상은, 이 대한민국은 친노 아니면 반노일 뿐인가?  광화문의 연대는 그저 친노들의 뭉침에 불과한 것이었나?  너무 노골적이고 유치하다.  대부분 반동세력은 이렇게 세련되지 못하고 쉽게 알아볼 수 있다.  수십년 동안 투쟁해서 상당히 얻은 민주화의 결과는 적어도 형식상 이제 완숙한 승리 앞에 와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오락게임을 하면 늘 진짜 나쁜놈 대왕이 나오기까지 크고 작은 중간 왕들을 격파해야 하듯이 나는 이 멍청한 반동세력들은 중간왕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싶다.  진짜 왕은 아직 그 실체를 드러내지 않고 있다.  혹은 이미 우리 주변에, 우리 안에 자리를 펴고 있는지 모른다.  바로 자본이다. 

 

적은 어디에 있는가.
야만인은 어디에 있는가.
신체 구석구석에, 내장 속까지 각인된
자본의 힘, 권력의 힘.

* "검은비"님 그림인데, 글을 쓰다가 제 생각과 너무 잘 맞는것 같아 붙였습니다.  취지에 맞지 않거나, 좋지 않다고 생각되시거나, 맘에 드시지 않으시면 즉시 지우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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