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박지원은『열하일기』를 썼을까? - 박지원 vs 심환지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 41
정명섭.장웅진 지음, 이일선 그림 / 자음과모음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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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대표적인 실학자하면 '박지원'을 빼놓을 수 없지요. 박지원을 이야기하려면 '열하일기' 또한 빼놓을 수 없구요.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 41번째 이야기는 바로 실학자 박지원과 관련한 이야기랍니다. 박지원 vs 심환지가 한국사법정에 거론 되는데 '심환지'라는 이름은 아이들 입장에서는 특히나 낯선 이름으로 여겨지지요.





심환지는 조선 후기 때 문신으로 정순 왕후가 수렴청정할 때 영의정에 올랐던 분이랍니다. 심환지 입장에서는 실학을 주장하는 이들이 눈엣가시처럼 여겨졌을 텐데요. 그 중심의 인물인 심환지가 그래서 이번 법정에서 원고가 되었구요. 피고는 박지원입니다. 조선의 사대부를 대표하여 심환지는 박지원을 비롯한 조선의 실학자들을 고발합니다.




 

조선은 상업이 발달하지 못해서 물자의 유통이 원활하지 못했고, 그리하여 나라는 점점 가난해지는데 양반들은 오직 과거에만 매달리며 이 문제를 해결할 의지를 보이지 않아 실학자들은 실학을 주장하게 되었는데요. 그 해결책으로 양반들도 장사나 농사일을 하도록 만들고 적서의 차별을 철폐해서 필요한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해야 한다는 주장이 실학의 주장이랍니다. 결국 이런 개혁안이 당시 시대상으로 받아들이기는 힘든 내용이었죠. 또 열하일기에서와 같이 박지원은 농업에 대한 실학 주장을 많이 펼치는데요. 또, 정약용의 경우도 정조에게 아주 큰 신임을 받지만 결국 실학을 접하면서 천주교에 대한 믿음으로 결국 오래도록 유배생활을 하게 되는 최후를 맞이하게 되지요.



 





실학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조선 후기의 실학의 등장과 관련한 많은 배경에 대한 이야기를 이해해야겠지요. 한국사 법정에서는 균전론을 주장한 유형원, 북학의를 쓴 박제가, 천주교와 새로운 문물의 도입, 실학의 꽃을 피운 정조시대 이야기 등 다양한 내용을 접할 수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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