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창경궁에 동물원이 생겼을까? - 순종 황제 vs 이토 히로부미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 51
허균 지음, 고영미 그림 / 자음과모음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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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법정 너무 재미있게 읽고 있는 책인데요. 이번 <왜 창경궁에 동물원이 생겼을까?>를 읽으면서 영화 '덕혜옹주'가 계속 생각이 나더라구요. 시대적 배경이 딱 그러했기 때문이기도 한대요. 일본의 만행에 희생양이 되었던 수많은 중에 덕혜옹주 역시 그러했기 때문이지요. 순종이 동의를 하지 않았음에도 그 나라의 궁궐을 처참히 동물원과 식물원, 박물관이라는 용도로 바꾸어버린 일본의 행동은 경악을 금치 못하는 일이지요. 그런 그들이 덕혜옹주를 어떤 구실로던 일본으로 데려가기는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지 않았을까요? 생각만해도 소름끼치는 일본의 만행 중 가장 대표적인 일 중의 하나가 바로 창경궁에 동물원이 생긴 까닭에서 만날 수 있답니다. 아픈 역사도 역사이기에 우리는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정확히 알아야 하겠지요.   




500여 년 조선 왕조의 권위와 전통이 살아 숨 쉬는 궁궐을 개방하여 놀이터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소이다. 내가 궁궐에 살았지만, 궁궐은 나의 것이 아니라 선대왕들이 물려준 것을 잠시 빌려 쓰다가 다음 왕에게 물려주어야 하는 것일 뿐이오. 그런데 어찌 내가 선왕의 공덕이 배어 있는 궁궐을 훼손하는 일에 앞장선단 말이오! (본문 110-111 페이지 중)




 



 



이 책을 읽고 꼭 소개하고 싶은 내용은 바로 '창경궁'을 짓게 된 배경인데요. 창경궁 건립은 1484년 성종 임금 때라고 합니다. 창경궁은 창덕궁 동쪽에 있던 수강궁을 고쳐 지은 궁궐이며, 수강궁은 태종 임금이 세종 임금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스스로 상왕이 되어 거처하기 위해 지은 궁궐입니다. 창덕궁이 있음에도 창경궁을 건립하게 된 배경은 창덕궁에 있는 세조 비인 정희 왕후, 덕종 비인 소혜 왕후, 예정 비인 안순 왕후가 함께 살고 있었고 궁이 비좁아 작은 전각에서 지내시는 걸 못내 안타깝게 여긴 성종 임금이, 세 대비의 거처를 넓은 곳으로 옮기기로 했는데 이렇게 해서 창경궁을 건립하게 되었다고 하네요. 저도 이 책을 통해 창경궁의 건립 배경에 대한 이야기는 처음 알게 되었네요. 창경궁은 명정전, 문정전, 환경전, 경춘전, 통명전, 양화당, 수녕전, 여휘당, 사성각, 환취정 등 셀 수 없이 많은 전각과 당과 정자들이 들어서 있었다고 해요.



또 한가지, 성종은 궁궐 안에 꽃나무를 심지 말라고 했다는 사실도 새롭게 알게 되었는데요. 꽃나무를 궁궐에 심어 놓으면 왕이 나랏일은 돌보지 않고 꽃구경만 좋아한다는 오해를 살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해요. 성종 임금은 꽃나무 대신 버드나무와 잡목을 심으라고 했다고 하네요. 왜냐하면 이 종류의 나무들은 빨리 자라기 때문에 궁궐에 심어 놓으면 담장 밖에서 안을 잘 볼 수 없는 이점이 있다고 생각했다네요. 그러므로, 창경궁의 수많은 벚꽃은 일본이 임의로 심은 것이라 걸 변명할 여지가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한국사법정 51번째에서는 순종이 이토 히로부미를 대상으로 소장을 제출하는데요. 청구내용은 아래의 본문과 같답니다. '일제가 구한말에 창경궁 내에 동물원과 식물원, 그리고 박물관을 조성한 것은 조선 왕조의 정통성과 조선 궁궐의 권위와 위엄을 훼손한 일입니다. 그런 일을 나 순종이 허락할 리가 없고 허락한 바가 없거늘. 일부 기록에 내가 그러한 계획에 적극 동조했고 동물원, 식물원, 박물관이 들어서서 공원화된 창경궁을 일반 백성들에게 개방하는 일에도 적극적으로 찬성했다고 전해지고 있는데, 그것은 모두 사실과 다릅니다. 창경궁을 함부로 공원화한 자는 초대 조선 통감이었던 이토 히로부미와 그의 일당들입니다. 이에 한국사법정에서 조선 왕조의 권위를 상징하는 궁궐을 망친 이토 히로부미에게 죄를 낱낱이 밝히고자 하며,나 순종이 그것을 허락했다고 허위 사실을 유포한 점을 명백히 밝혀내어 나의 억울함을 풀고자 합니다....이하생략'(본문 26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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