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서양미술 순례 창비교양문고 20
서경식 지음, 박이엽 옮김 / 창비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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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니 이 책을 처음 만난 지 벌써 15년이 지났다. 사실 이 책은 예술과 관련됐다는 점과 작고 싸다는 사소한 이유로 선택되어 내게 왔던 것 같다. 그러나 우리의 일상은 매번 미지의 세계를 발견하게 하는 잠재적 장이기도 하지 않던가. 이 책과의 만남은, 지금도 여전히 그의 책을 읽고 있고 그 속에서 어떤 영향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 내게 서경식 선생과의 만남이며, 어느새 내게 던져진 어떤 정체성과 관계에 대한 고민의 출발점이 되었다.

나는 이미 고등학교 시절 공안당국이 만들었던 여러 정치적 조작 사건을 접할 기회가 있었다. 재일유학생 간첩단 사건도 그 중 하나였다. 그 사건의 터무니없음 때문이었는지 그들 형제의 이름은 내게 강렬하게 남아있었다. 서 승, 서 준 식. 재일 조선인 2세였던 형제는 격렬하게 정체성 문제를 앓을 수밖에 없었고, 결국 한국에서의 유학 생활을 택하게 된다. 그런데 그 선택이 자신들의 청춘을 온전히 도려낼 줄 짐작이나 했을까. 기어코 돌아왔던 고국은 그들에게 간첩이란 죄목을 씌워 20년 가까이 징역을 살게 한다. 그들의 청춘은 자신들과 무관한 이데올로기 앞에서 완전히 저당 잡히고, 사투에 가까운 긴 수인생활은 봉합 불가능한 상흔을 남기게 된다.

서경식 선생은 그들의 남동생이다. 형들이 절망적으로 분신하고 단식하는 상황에서 타는 가슴으로 옥바라지 하던 부모님의 상(喪)을 치른다. 그는 황망함에 싸여 여동생과 유럽으로 떠난다. 그것은 벗을 수 없는 완강한 현실을 마주한 자의 절망적인 도피였을까, 구원에 대한 어떤 열망이었을까? 미술관 관람으로 채워진 유럽 여행은, 그에게 형들을 고통에서 구할 수 있는 능력은 없지만 그들의 고통과 상처를 지켜보며 고뇌하고 증언해야 하는 자의 자리를 알게 한다. 자신의 형들을 외면할 수도 떠날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길에서 만난 미술 작품들은 그의 슬픔과 무기력이 그 자신의 것만이 아니라는 보편성을 알게 해 주었다. 이미 주어진 삶에서 밀려나온, 떠나가게 된 자들, 디아스포라로서의 우리 생의 본질 말이다. 그는 어쩌면 형들을 통해서 우리 생이 처해진 곤란함과 위급함에 차츰 다가가게 되었는지 모른다. 최근 출간한 책, 『고뇌의 원근법』에서 선생은 반 고흐의 동생 테오의 위치에 스스로를 대입해왔다고 시인하기도 했다.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 혹은 사건을 지켜보는 자의 몫이 있다면 무엇일까? 그것은 어떤 방식의 ‘책임짐’ 일 것이다. 서경식 선생은 바라보는 데서 그치지 않고 증언해야 하는 책임을 피하지 않는다. 또한 그 증언의 시선은 형들의 문제에서 재일 조선인 일반의 문제로, 아우슈비츠로, 팔레스타인 난민의 문제로 확대된다. 그의 이후 책들은 바로 이 책에서 시작된 긴 여정에 다름 아니며,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우리 역시 그의 여정을 따르지 않을 수 없다. 타인의 고통 앞에서, 역사의 상처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끝내 외면하지 않고 두려운 마음으로 지켜보는 것, 우선 거기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난 20여년의 세월에 배운 것이 있다고 한다면 희망이라는 것의 공허함일지도 모르겠는데, 뒤집어 생각하면 그것은 도리어 쉽게 절망하는 것의 어리석음이라 할 수도 있다. 그 희망과 절망의 틈바구니에서 역사 앞에서 자신에게 부과된 책무를 이행할 뿐이다.(서경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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