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회피했지만, 노래는 숙명처럼 따라다녔다.
아버지 나영수씨는 국립합창단 초대 지휘자를 역임한 한양대 음대 명예교수이고, 어머니 김미정씨는 뮤지컬 배우다. 집에는 늘 음악인들이, 음악이 드나들었다. 대학 2학년 때이던 1989년 친구를 따라 프랑스 대사관이 주최한 샹송 대회에 가서 덜컥 1등을 했다. 이때까지도 음악은 ‘젊은 날의 추억이자 취미’였다.
그러나 95년 록 뮤지컬 ‘지하철 1호선’ ‘번데기’ ‘오션 월드’ 등에 출연해 자꾸 노래를 하게 됐다. “나는 노래를 해야 하나 보다.” 당시 갖고 있는 것으로만 부족했다. 결심이 서자 바로 짐을 쌌다. 불문과를 졸업했고, 샹송으로 불렀던 인연은 그녀를 프랑스로 이끌었다. 27살의 도전이었다.
#대학2학년때 얼떨결에 샹송대회 1등
빌리 홀리데이, 엘라 피제럴드, 사라 본 등 여성 보컬 대가들의 목소리는 굵고 나직하다. 나윤선은 곱고 가늘어 팝에 더 어울린다는 인상을 받을 수도 있다. 아니면 노라 존스처럼 노래 위주로만 하든지. 나윤선은 “유럽에서는 노마 윈스턴, 수잔 아뷰엘, 타미야 등 고음의 재즈 보컬들이 많다. 중요한 것은 ‘느낌’”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95년 10월 유럽 최초의 재즈 스쿨인 파리 ‘CIM’에 들어가 4년간 공부했다. 졸업 후 동양인 최초로 CIM에서 1년간 교수로 재직했다. 고운 음색에 세밀하고 탄탄한 기교는 유럽 감성에 들어맞았기 때문이다.
이역만리에서 그녀는 비상했다. 학교에서 만난 기욤 노(피아노), 요니 젤닉(콘트라베이스), 데이비드 죠르줄레(드럼), 다비드 니어만(비브라폰)과 퀸텟(5인조) 밴드를 조직해 클럽, 페스티벌을 중심으로 명성을 얻었다. 98년 몽마르트 재즈 페스티벌 콩쿠르에서 2등, 99년 생-모르 재즈 페스티벌 콩쿠르에서 대상을 받았고, 그 해 프랑스에서 가장 권위있는 르 콩쿠르 드 라 데팡스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았다. 지난 5월 프랑스 아르트 TV 특집프로그램 ‘파리 재즈 클럽스’는 프랑스 최고의 뮤지션 중 한명으로 그녀를 꼽았다.
“운이 좋았죠. 주위 분들이 많이 도와주셨습니다. 프랑스에서 공부할 때에도 별 어려움을 몰랐고요.”
#27살때 佛로…고운 음색에 기교 입혀
겸양이다. 그녀는 지독하게 공부했다. 보베에 국립음악원 성악과 1등 졸업(96~98년), 상트르 다르 폴리포니크 재즈 보컬 앙상블 연수(96~97년), 나디아&릴리 불랑제 콘서바토리 재즈과 졸업(97~99년). 학위가 아니라 연구를 위해.
‘왜 재즈인가’. “어릴 때부터 ‘왜 악보대로 노래를 해야 하는가’라는 의문을 가졌습니다. 재즈는 같은 곡이라도 사람마다, 같은 사람이라도 부를 때마다 다르게 부르죠. 스스로 소화해 창조하는 겁니다.”
‘재즈는 뭔가’. “재즈는 자유이고, 포용입니다. 넉넉함이죠. 어떤 음악이든 재즈로 만들 수 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앎에 충실했다. 2001년 첫 음반 ‘르플레(Reflet·반영)’의 ‘더 조디 그라인드’라는 곡에서 클리포드 브라운의 트럼펫 연주를 연상시키는 탁월한 스캣과 즉흥연주를 선보인다. ‘블루사이드’에서는 대리석 위에서 상아로 된 공이 튀듯 경쾌하지만, ‘유어 페이스’에서는 착 가라앉아 진중하다. 2집 ‘라이트 포 더 피플’은 유럽에서 연주하던 곡들 위주다. ‘베사메 무초’에서 그녀는 음울함을 최대한 끌어내 어둡게 칠한다. ‘섬타임스 아임 해피’는 듣는 이에 따라 천국과 지옥이다. 밴드가 가진 기량을 최대한 뽐내는 이 곡은 빈틈없는 연주 속에서 선율을 한올 한올 해체해버리는 모달 재즈의 영향이 강하게 느껴진다.
그럼 이번에 낸 3집 ‘다운 바이 러브’의 정체는. 연구 과제를 잔뜩 담아놓았다.
“앞으로 어떤 가수가 될지 모르겠습니다. 재즈만 고집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3집에는 쿠바,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 월드뮤직 쪽 노래들에 도전했습니다.”
우울한 브라질 팝 ‘아 메디다 다 파이샤용’에 이어 두번째 곡이 들리기 시작하면 청자는 놀랄 수밖에 없다. 사이키델릭 밴드 ‘메이지 스타’의 노래 ‘인투 더스트’가 흐른다. 그녀의 목소리는 즉흥연주를 하는 재즈 가수가 아니라 영국 아트록 밴드 ‘커브드 에어’의 소냐 크리스티나 같은 청아한 고음이다. 스팅이 불렀던 ‘콘시더 미 곤’에서는 착착 감기는 보컬과 리듬감이 뛰어나다. 또 지미 헨드릭스의 ‘매닉 디프레션’에서는 히스테릭한 비명같은 소리를 내지른다. 화려한 연주가 아니라 절제를 통해 탄탄하고 안정된 소리를 추구한다.
#“인기에 연연않고 제 목소리 만들래요”
동덕여대 실용음악과, 수원여대 대중음악과 교수인 그녀는 공연과 녹음 때문에 제대로 못가르친다고 미안해한다. 내년에는 아예 사직할 생각이다.
미모와 재주를 갖춘 그녀에게는 “큰 음반사나 기획사에 들어가서 좀더 쉬운 노래를 하라”는 유혹이 많다.
“제 귀에는 그런 말이 하나도 안들립니다. 제 노래를 대중이 좋아할 수도, 싫어할 수도 있죠. 음악은 사는 거랑 비슷한 거 같습니다. 남의 요구에만 따라가면 자신은 소모되고 발전은 없죠. 그저 도전하고 노력하는 거죠. 오래 오래 음악하면서 제 소리를 만들고 싶어요.”
인기에 악다구니하지 않는, 쿨(Cool)한 모던 재즈 같은 답변이다.
〈경향신문, 글 최우규·사진 박민규기자 banco@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