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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야식당 1~6 세트 (묶음) ㅣ 심야식당
아베 야로 지음 / 미우(대원씨아이) / 2008년 9월
평점 :
품절
오랜만에 만화를 읽었다.
요즘은 연재 만화는 잘 안 읽게 된다. 나이를 어느 정도 먹었더니 '홀릭'이 잘 안 되는 까닭이다.
열렬한 팬 정신과 인내심, 꾸준함, 열정, 그리고 물론 불타는 애정이 있을 때, 다음 회를 기다리는 미덕을 지켜낼 수 있다, 는 생각을 해본다.
각설하고, <심야식당>은 새삼스럽게 일본 만화의 최대 장점인 '스토리 텔링'의 힘을 인식하게 해 준 만화라고 총평하고 싶다.
스토리 텔링의 힘이란 어느 시대 어느 지역 사람들에게서도 공감과 감동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인류 공통의 감성에 호소하는 이야기가 가진 생명력일 것이다. 아마도 만화 보다는 문학에서 더더욱 뚜렷한 경향일텐데, 세익스피어와 같은 고전이 그렇듯이, 국경을 넘나들며 사랑받는 많은 작가들이 그렇듯이, 이야기의 생명력은 시대와 세대를 초월하는 힘이다.
특히 만화에 있어서 잘 만들어진 서사는 절대절명의 요소이다. 그림을 제아무리 잘 그려도 이야기 면에서 딸리면 가차없이 도태되는 게 만화계의 생리다. 오늘날 만화 독자들은 대부분 유년층부터의 다독 경험(만화의 특성상)에 의해 민감하고 냉정한 판다력을 갖추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아베 야로의 <심야식당>은 잘 짜여진 이야기 하나로도 충분히 승부에서 살아남을 수 있고 또 그럴 가치가 있는 좋은 작품이다. 여기에 담겨진 이야기들은 하나같이 시대와 세대를 초월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특별하지 않은, 고만고만한, 어디에나 있을 듯 한, 그러나 자기만의 특별한 사연을 갖고 있는 사람들(즉, 우리 자신)의 이야기를 겁나게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내고 있다.
한쪽 눈에 새겨진 칼자국이 무색할 정도로 인간성 좋지만 무언지 모를 주관만은 뚜렷한 식당 주인의 시선은, 인간에 대한 애정, 이웃에 대한 애정, 연민-측은지심을 담뿍 담고 있는데, 이는 나아가 가끔은 불행한 이웃들이 발딛고 살아가는 이 세상에 대한 나름 쌉싸름한 비평으로 이어지곤 한다.
사실은 난 이 만화를 보면서 요리에 대한 좀 더 전문화된 정보를 기대했다. '맛의 달인' 이후 프로페셔널한 수준의 요리 만화를 만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것도 있지만, 일본의 서민 요리에 대한 호기심이 좀 더 충족되었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물론 대단히 개인적인 아쉬움이다. 읽고 나서 보니, 이 만화는 요리만화라기 보다는 인생과 사람들에 대한 소묘, 단상에 가까운, 한마디로 치밀하다기 보다는 '훈훈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만, 훈훈함 이상을 원하는 독자들에게는 2% 부족한 느낌으로 다가올 수도 있을 것 같다. 많은 만화 독자들이 작가만큼이나 '전문적인' 만화 읽기를 하는 요즘 세상이므로, 실험적인 독자가, 어떻게 보면 전통적인 스토리텔링과 그림체를 답습하고 있는 이 만화에서 새로운 그 어떤 느낌을 발견하려고 한다면 좌절할 수도 있다. 뭐, 하지만 아무튼, 그래도 어쨌건 '재미'는 있다는 거.
번역이 꽤 잘 되어 있다는 평가도 덧붙이고 싶다. 문맥과 뉘앙스를 잘 이해한 번역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만화 번역에서 상당 부분 문맥을 잘 못 이해한 오역을 발견하는 일이 많은데, 그런 면에서는 만족스러운 번역이었다. 음식 재료나 음식 이름은 다 한국식으로 바꿨는데 역주같은 방법으로 원어 표기를 해주었으면(발음이라도) 좋았을 것 같다. 그랬다면 한국어 번역판으로서는 문화 정보적인 가치도 더해졌을거라는 생각이 든다. 음, 하지만 이건 만화 번역에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 것일지도. ㅡ.ㅡ;;
추운 겨울날, 부담없이 훈훈하고 사소하면서도 자연스럽게 공감, 감동 할 수 있는 독서를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게 활자로만 된 책이 아니어도 상관 없다면,,,, <심야식당>을 슬쩍 권해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