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도하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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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롭고 여유롭게 시작한 휴일의 독서는 느닷없는 신열과 같았다.

김훈 작가의 무시무시한 필력에 끌려들어가면서, 그의 세상에 대한 우울과 불신에 덩달아 휘말려 들어갔다.

어디까지나 차갑고 냉정하지만 또 어쩔 줄 모르는 애증, 그 반동으로 몰려오는 무기력함.

이런 감정들이 책을 덮은 후에 밀려들었다.

압권은 짧디 짧은 작가의 말. 나는 이 세계와의 모든 관계를 혐오한다니........ 그리고 어디론가 가서 새로 태어나든 망하든 해야 한다니...... .

치열할 정도로 '대한민국에서 산다는 것'의 내부를 파헤쳐 놓고 한 말 치고는 그 감정의 정리가 너무 단호해서 등줄기가 다 서늘해진다.

그래도 오래간만에 서평을 남기고 싶은 소설책을 읽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무언가 묵직하게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었다.

 

직업상 지긋지긋할 정도로 삶의 현장을 쫓아다니는 주인공의 발가락에 깊이 침투한 '추잡한' 무좀같은 것인가. 인간의 산다는 것이란.

추잡함 뒤에 추잡함, 또 한꺼풀 들춰낸 곳에 드러나는 추잡함.

그러나 그것들은 세상에 드러내놓고 말할 수 없는, 말한다고 해서 그 누구도 다시 아름다워지지 않는 사연이고, 그냥 그것이 인간이라는 존재다.

진실이 거기에 존재하든 그렇지 않든, 삶의 현장을 누비고 다니는 자에게서는 퀴퀴한 냄새가 나고, 한 발짝 떨어져 자못 웅크리고 스스로를 사유하는 삶을 사는 자는 담백한 숨 냄새만을 풍긴다. 작가는 그렇게 인간 삶의 서로 다른 양면을 제시한다. 뭐 약간은 극단적이다.

그래서인지 책 속에 등장하는 수 많은 인간의 모습 중에서 나와 일치하거나 약간이라도 비슷한 것을 찾는 일이 힘들었다. 굳이 그럴 필요도 없는데, 그리고 소설을 읽으면서 그냥 이야기를 즐길 뿐이지 뭘 찾거나 하지 않을 때도 많은데.... 자꾸 책 속에서 나와 비슷한 인물이나 비슷한 생각을 찾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고는 흠칫했다. 이 책이 '존재'에 대해 끊임없이 쑤시고 들추고 냉소하기 때문일까. 그 존재들로부터 나 자신이 자유롭지 못하다는 괴이한 소속감 때문이었을까.

결국은 이래저래 쉽게 몰입하지 못하는 책인 것만은 분명하다.

하지만 책에서 다루어지는 사건들은 상당히 구체적이다.

단, 그 정보들은 대단히 외연적인 것이어서 무엇이 진짜 진짜 진실인지 알 수 없고, 그렇게 남겨진 한오라기 의심이 독자를 긴장하게 만든다.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신문이나 TV의 정보들에 대해 전적인 신뢰를 애당초 포기하고 한 발짝 두는 거리 만큼, 이 책도 독자에게 백퍼센트의 감정이입보다는 적당히 불편한 거리를 요구하는 것 같다. 이것이 이야기와의 순조로운 동화를 방해하는 또 하나의 요인이다. 작가는 부조리한 세상에 대해 일침을 날리면서 짜릿한 통쾌함을 안겨주는 것도 아니고, 독자로 하여금 주인공의 감정에 몰임하게 하지도 않는다. (주인공에 대한 신상 정보가 이렇게 절제된 소설도 아마 드물 것이다.)

이처럼 불친절한 소설, '공무도하'는 그러나 결코 난해함이나 불쾌함으로 독자를 밀어내지는 않는다.

주인공의 심리상태를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유추할 수는 있고, 풍부하게 제공되는 정황근거들 때문에 소설에 드러나있는 것보다 더 많은 상황들을 짐작케 하며, 어렴풋이 윤곽만 제시되곤 하는 진실들 너머의 진실을 쫓아가게끔 한다. 생각해보면, 사실은 이것이 우리가 살면서 세상의 일들을 접하는 방식 그대로이지 않은가.

그래서인지 책을 다 읽고 난 후의 감정의 복잡함에 비해  그다지 불편한 마음이 들지 않는다.

다만, 극단적인 어휘들로 본문보다 더한 강렬함을 남긴 작가의 말이, 그저 뇌리에 남아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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