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소설
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음, 유숙자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손바닥 혹은 나뭇잎 한 장. 장편소설(掌篇小說)이나 엽편소설(葉片小說)이라고 불리는,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콩트 모음집이다. 작은 판형에 290여쪽, 그런데 68편이나 실려있는 건 그래서다. 이야기 하나가 두, 세 페이지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설국>으로도, 노벨문학상 수상으로도 유명한 가와바타 야스나리 문학의 고향이라고 부를 수 있는 책이다. 그가 젊은 날에(이십대였던 1921년부터 1935년 사이) 쓴 이야기들이라 <설국>과 <잠자는 미녀>같은 작품들에 이르는 단초가 되는 ‘발상’을 만날 수 있어 흥미롭다. 여자의 몸, 어린 여자의 몸, 생명, 삶, 죽음, 희생을 비롯한 죽음과 맞닿는 탐미주의적인 아름다움을 탐색하는 이야기도 있고, 예상외로 쿨한 연애담도 있고, 환상담도 꽤 있다.
이야기 내용 자체에 집중해 호불호를 가르는 일도 의미있겠으나, 그보다 이 책을 더 재미있게 읽는 방법이 있다. “많은 작가들이 젊은 시절에 시를 쓰지만, 나는 시 대신 손바닥 소설을 썼다. 이제 와서 보건대, 이 책을 ‘나의 표본실’이라 하기에 부족함은 있지만, 젊은 날의 시정신은 꽤 살아있다고 생각한다.” 짧은 이야기를 시처럼 구사해 풀어내고자 했다는 뜻이다. 고요한 호수에 파문이 일 듯 첫 문장에서 시작된 여운이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일도 이 책을 즐기는 방법. “그녀가 싫어 도망친 남편에게서 편지가 왔다.” “사실 그의 어머니는 눈치가 둔하다.” “노인과 젊은 처녀가 걷고 있었다.” “언니는 너무나 상냥한 사람이었는데 어째서 그토록 처참하게 죽어야 했는지,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요즘 언니는 동생의 기모노를 자주 입는다.” “눈()이 반사되어 환해진 젖빛 유리문에 장식 소나무 그림자가 어렸다.” “여기서 말하는 장님이란, 눈이 안 보이는 걸 의미하지 않아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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