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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면 ㅣ 사계절 그림책
신혜은 지음, 최석운 그림 / 사계절 / 2006년 5월
평점 :
비 오는 날은 유난히 먹고 싶은 음식이 있다. 사무실이나 커피숍에 있다면 창밖을 바라보며 커피 한 잔이 마시고 싶고, 집에 있다면 부침개나 떡볶이, 라면 같은 것이 먹고 싶다. 그런데 비오는 날, 초등학생이 학교에서 선생님이 끓여 주시는 라면을 먹는 맛은 어떨까? 그것도 다른 아이들은 엄마들이 우산을 가져와서 엄마와 함께 다정히 교문밖을 나서는 것을 바라만 보아야 하는 아이들에게... 이 책을 읽는 내내 내 마음은 아침햇살처럼 따스하게 번져왔다.
나도 어렸을 때 아무리 비가와도 엄마는 우산을 가지고 오지 않으셨다.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면 우산을 가져가기에 걱정할 일이 아니지만 오후부터 비가 내리면 난 창밖만 바라보며 조바심을 냈다. 수업이 끝날 때쯤에 복도에서 웅성웅성거리는 소리는 오히려 내 맘을 심란하게 했다. 엄마는 분명히 오지 않을 것을 알고 있기에... 엄마는 자주 앓았다. 집안 일 하는 것도 무척 버거워 하셨다. 그래서 아무리 비가 많이 와도 걸어서 한 시간 가량 걸리는 학교까지 우산을 들고 오는 일은 없었다. 가끔 옆집 아줌마를 통해서 우산을 받아들게 될 때도 있었지만 난 대부분 친구의 우산을 함께 쓰거나 아니면 그냥 비를 맞은 채로 집에 가야했다. 어린 시절이었지만 비를 맞고 가는 작은 여자아이의 모습은 참 쓸쓸해 보였을 것이다.
이 작품 속에도 예전의 나와 같은 아이들이 있다. 오후부터 비가 내리자 아이들은 웅성웅성거렸고, 예정된 순서처럼 교실밖 복도에서는 우산을 들고 엄마들이 수업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소은이는 엄마가 오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일하러 가셨기 때문에 중간에 우산을 들고 학교에 올 일은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두리번두리번거리며 엄마를 찾았지만 역시 엄마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마치 다른 친구들은 새끼 병아리들처럼 엄마닭을 졸졸졸 따라갔고, 엄마가 오지 않은 아이들은 현관 입구에서 비가 그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그것을 본 선생님은 네 명의 아이들에게 라면을 끓여 주신다. 얼마나 맛있었을까? 그리고서 하시는 선생님의 이야기.
“얘들아, 너희들 그거 아니?
비구름 뒤엔 항상 파란 하늘이 있다는 거.“
“저기 저 검은 먹구름 위에는 늘 파란 하늘이 있단다.
여기서는 안 보이지만...
비가 내릴 때 그걸 떠올리기란 쉽지 않지
선생님도 가끔 잊어버리곤 해“
이 말을 아이들이 다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어린 시절 엄마가 오지 않는 비오는 날, 선생님이 끓여 준 라면 맛과 함께 먹구름을 바라보며 말씀하셨던 선생님의 이야기는 잊지 않을 것이다. 이런 선생님이 그립다. 이런 이야기를 들은 아이들은 먹구름 뒤에는 변함없이 푸른 하늘이 있다는 것을 생각할 것이고, 절망적인 상황이 닥칠지라도 먹구름 뒤에 푸른 하늘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 내고 다시 힘을 내지 않을까?
초등학교 1,2학년 정도 되는 아이들이 읽을 만한 책으로 내용도 좋지만 일단 그림이 정겹다. 우리의 그림책이 그리 많지 않은 시점에서 우리의 정서에 어울리는 그림이라 좋다. 표지 그림에서처럼 아이들 넷이 먹구름을 바라보고 있다. 그 뒤에서 선생님은 위의 얘기를 하셨겠지. 이 책을 읽는 아이들도 선생님의 말씀을 떠올릴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비 오는 날 오히려 엄마가 오시지 않고 선생님이 끓여 주시는 라면 맛을 더 그리워할지도 모르겠다. 가슴이 따뜻해지는 책이다. 내 어린 시절 이런 선생님을 만났다면 그리 쓸쓸한 기억은 하지 않았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