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오야월
김도연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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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연의 소설집을 읽는다. 이 책에 실려있는 10편의 중단편 중 몇 편은 이미 <현대문학>이나 <문학사상> 같은 여러 문예지에서 읽었다. 그러나 난 그의 소설을 다시 읽고 또 읽고 했다. 하루에 다 읽지 않았다. 그럴 수가 없었다. 글 읽는 속도가 느려서도 아니고, 바쁨 때문만도 아니다. 맘만 먹으면 하룻밤만에 다 읽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저 우물처럼 깊은 그의 고독에 전염이라도 된 듯, 가슴 저리게 천천히 읽어야 했다.

 

작가들마다 자기만의 고유한 문학 세계를 갖고 있지만 김도연의 세계는 여느 작가들과는 확연히 다르다. 변방에서 부르는 그의 노래는 천천히 중앙으로 전해져 온다. 아직 많은 독자층을 거느린 것은 아니지만, 이미 그의 책을 읽은 독자라면 독특한 그의 문학 세계에 빠져 버릴 것이다. 이 책은 2006년 동인문학상 1차에 후보작으로 선정되었었다. 선정 이유로 이청준씨는"도시의 언어를 가지고 농촌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점이 독특했다. 또한 죽은 조상들이 갑자기 나타나는 대목, 동물이나 귀신하고 대화하는 대목 등은'동양적 상상력'이라 불러도 좋을 만큼 우리의 이야기 전통을 드러내 보인, 흥미 있는 글쓰기였다"라고 평하고 있다.

 

「흰 등대에 갇히다」작품에선 사향노루를 연구하는 주인공이 나온다. 작품 속에서 사향노루라고 불리는 사내는 십 년 동안 <사향노루, 백년동안의 고독>이란 제목의 글을 ‘창작과 비평’에 기고하였지만 매번 거절당한다. 그가 여기서 ‘백년 동안의 고독’을 언급한 것은 스스로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께스’ 의 《백년 동안의 고독》에서 보여 주는 마술적 리얼리즘 같은 소설을 쓰고자하는 욕심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미 이청준씨가 지적하였듯, 그의 작품에는 동양적 상상력이라 부를만한 독특한 글쓰기를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길은 너무나 고독하다. 도서관 사서가 사향노루와 그냥 노루와의 차이점에 대해서 묻자 그는 순수소설과 대중소설과의 차이라고 말한다. 경찰과의 대화에서 착한 인상의 경찰은 “사향노루 연구는 배가 고파야 할 수 있죠. 아니면 상처가 깊거나...”라고 한다. 세상이 준 상처를 가슴에 안고, 배가 고플 수밖에 없는 순수 소설을 그는 고집하고 있다. 여기에 그의 고독이 있다.

 

그러나 그의 고독은 인간이기에 느껴야 하는 근원적인 고독, 순수 소설을 고집하는 배고픔의 고독뿐만이 아니라 세상과의 불화에서 오는 고독, 운명에 순응하지 못하는 고독이 더 깊다.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그 고독, 세상과의 단절에서 오는 고독을 이기기 위해 그는 동물들이나 귀신들과 대화를 나눈다. 「도망치다가 멈춰 뒤돌아보는 버릇이 있다」에서 주인공인 총각은 늙은 사냥개와 대화를 한다.

"워리야...... 인간 세상엔 시란 게 있어. 시가 뭐냐고? 고독한 영혼이 부르는 노래지. 고독한 영혼이 뭐냐고? 삶의 희노애락에 화상을 입어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만질 수는 없으나 쉽게 벗어나기도 힘든 무형의 꽃 같은 거야. 꽃말이야. 물론 꽃에도 여러 종류가 있지. 그 중에서 어느 꽃이 가장 낫다고 고집할 순 없지만. 내가 볼 땐 말이야. 세상의 오물 속에서 피어난 꽃이 최고라고 봐. 오물이란 곧 환멸이야. 환멸이 피운 꽃! 멋지지 않아?"

 

그는 작품 속에서 시를 쓴다. 아무도 봐주지 않는 시를. 다만 늙은 사냥개에게 그의 시를 읽어 줄 뿐이다. 세상과 소통하고 싶지만, 세상은 그의 대화에 귀기울여 주지 않는다. 운명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전혀 다른 곳으로 흘러가고 있다. 운명에 반항하지만 무력하게 벽에 부딪칠 뿐이다. 창공의 왕자인 알바트로스가 지상에 유배되어 세인들의 조롱을 받는 것처럼 그는 고독하다. 그러나 그 고독이 꽃을 피우고 있다. 오물 속에서 피어난 환멸의 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아주 멋진 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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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베이 2007-08-02 2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서평 잘 봤습니다. 구입해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