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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메이 아줌마 (양장)
신시아 라일런트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사계절 / 2005년 5월
평점 :
절판
가슴이 따뜻해지는 이야기를 읽고 싶었다. 그것이 동화이든 수필이든 그림책이나 소설책이든 간에 황량해진 내 마음, 서걱서걱 모래 바람만 부는 내 가슴에 따뜻한 기운을 넣어줄 글이 그리웠다. 한동안 무엇인가 쫓기듯이 불안했다. 이유 없이 불안하니 잠 못 드는 날이 늘어났고, 이침이면 식은땀에 젖어 있는 나를 발견하기도 했다. 아마, 어떤 지인의 죽음을 겪으면서 많이 나약해져 있었나 보다. 인간이란 이렇게 나약하고, 불완전한 존재를 다시 느끼게 되었을 때 이 책을 만났다.
동화나 소설에는 악역을 맡은 반동인물이 주동인물인 주인공과 대립하기도 하고, 악역은 없지만 주변 환경이나 운명이 주인공의 삶을 흔들어 놓기도 한다. 이 책에는 악역은 없다. 다만 운명이 이들의 삶을 잔인하게 끌고 간다. 그래서 더 가슴이 시리고 아렸는지 모르겠다.
6살 소녀 서머는 엄마를 여윈 후(아빠는 누군지 아예 작품 속에 등장하지 않는다), 친척들 손에 짐 보따리처럼 귀찮은 존재로 전전하다가 친척이 아닌, 피 한 방울 전혀 섞이지 않은 메이 아줌마와 오브 아저씨를 만나 새 삶을 산다. 메이 아줌마는 뚱뚱한 온 몸이 오직 사랑만 담겨 있는 것처럼 서머에게 온통 사랑을 담아 키운다. 메이 아줌마와 오브아저씨와 함께 한 삶은 가정의 따뜻함을 모르는 서머에게 따뜻한 가정의 참맛을 느끼게 해 준다. 그러나 그 행복은 아주 잠깐, 오랜 장마 기간동안 잠깐 비추는 햇빛 같은 것이다. 메이 아줌마는 갑작스레 밭에서 일을 하다 세상을 떠난다. 그 아줌마를 그리워하는 오브 아저씨와 서머와의 슬픔이 이 책의 전체를 아우르고 있다. 메이 아줌마를 너무나 사랑하던 오브 아저씨, 역시 아줌마를 너무나 좋아했던 서머. 그들의 슬픔은 책을 읽는 내내 내 가슴을 짓누르고 있었다. 누가 이렇게 선량한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는 것일까? 운명이란 왜 이렇게 선한 사람들에게 잔인하고 폭력적인가?
사랑하는 사람을 죽음 때문에 이별해야 하는 것, 아무런 준비도 없이, 예고도 없이 죽음이 찾아들고, 그 죽음을 받아들이기까지 남아 있는 사람들이 겪어야 하는 슬픔과 고통이 어떤 것인지 이 책은 알게 해 준다. 살아갈 의지를 잃은 채, 실성한 사람처럼 방황하는 오브 아저씨를 바라보는 것은 어린 소녀 서머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벅찬 것이다. 그래서 울고 싶어도 제대로 울 수 없다. 그러나 죽은 사람의 말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전해 줄 수 있다는 사람(일종의 영매자)이 있다는 말을 듣고 오브 아저씨는 기운을 차리고 3시간 넘게 차를 운전하며 서머와 함께 페트넘 군까지 간다. 하지만 이미 그 영매자가 죽었다는 것을 알고 되돌아 올 때의 허탈감이란... 그러나 그 일을 계기로 아저씨는 다시 생의 의지를 찾고 그동안 억눌렸던 울음을 터트리고 만다. 슬픔이 울음으로써 터져 나올 때 그 슬픔은 이제 삶을 헤쳐 나갈 수 있는 힘이 되어 준다. 눈물조차 흘릴 수 없는 슬픔은 독약과 같은 것이고, 죽음에 이르는 병이 될 수도 있다.
통과의례의 절차를 밟다 보면 사람들은 관습적으로 행해졌던 틀 속에 갇혀서 진정으로 자신들이 해야할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정해진 것들에 기뻐해야 하고, 정해진 만큼 슬퍼하고, 통곡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조차 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서머나 오브 아저씨 같은 사람이다. 가슴속에 있던 응어리는 풀어줘야 한다. 한 발은 이승에, 또 한발은 저승에 걸쳐놓고 사는 오브아저씨가 다시 살 수 있었던 것은 가슴 속에 응어리진 슬픔이 안에서 폭발하지 않고, 눈물로써 나왔기 때문이다. 그것은 또한 어린 양녀 서머를 지켜야 한다는 사랑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다. 이 책이 아름다운 것은 바로 사랑 때문이다. 비록 6살에 서머는 엄마와 헤어졌지만 “가엾은 우리 엄마는 나를 받아 줄 누군가가 나타날 때까지 내가 살아갈 수 있을 만큼 넉넉한 사랑을 남겨두고 간 것이다.”라고 했듯, 충분히 사랑해 줬고, 메이 아줌마와 오브 아저씨를 통해 아낌없는 사랑을 받았다.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았다는 기억은 세상의 어떤 험난한 일도 능히 헤쳐 나갈 수 있는 힘이 되는 것이다. 슬픔을 이기는 힘... 그것은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