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과 유진 푸른도서관 9
이금이 지음 / 푸른책들 / 2004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표지 그림엔, 노란 바탕에 회색의 나무 두 그루가 나란히 서 있다. 쌍둥이처럼 서 있지만 자세히 보면 좀 다르다. 왼쪽의 나무는 비교적 곧게 서 있지만, 오른쪽의 나무는 중간 부분에 좀 휘어지다가 다시 위로 뻗어 있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처음엔 의미 없이 보았던 표지 그림이 새롭게 눈에 들어온다. 그렇다면 왼쪽의 나무는 큰 유진이고, 오른쪽의 나무는 작은 유진이겠지.

 

아직까지도 많은 여아들이 유치원 원장이나 기사로부터 혹은, 친척이나 이웃집의 누구 등으로부터 성폭력에 노출되어 있다. 그러기에 딸을 가진 부모들은 늘 불안해한다. 유아기나 아동기의 성폭행은 성인이 되어서 여러 가지 후유증을 낳는다고 한다. 그런데 자신의 잘못으로가 아닌, 단지 운이 나빠서 당한 일을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이미 받은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작가는 어쩔 수 없이 당한 일을 어떤 방법으로 대처했는가에 따라 아이들이 청소년이 되어서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두 유진을 통해서 보여준다.

 

먼저 작은 유진의 부모는 수치스런(?) 기억을 빼앗는 일이다. 작은 유진의 엄마는 살갗이 벗겨지도록 몸을 닦으며 아이를 때린다. “넌 아무 일도 없었던 거야. 아무 일도. 알았어? 앞으로 그 얘기 꺼내지마. 그럼 너 죽고, 엄마도 죽는 거야”라며 윽박을 지름으로써 그 기억을 빼앗는다. 그래서 부분 기억 상실증에 걸린 작은 유진. 그러나 봉인된 기억은 영원할 수 없다. 우연히도 중학교 2학년 때 똑같은 이름의 큰 유진을 만나 사라진 기억은 재생되고, 전교 1등이었던 범생이 작은 유진은 방황과 탈선의 길로 빠져든다.

 

반면, 똑같은 성폭력을 당했던 큰 유진은 그 사건을 겪고 나서 그 어느 때보다 부모로부터 사랑을 많이 받는다. 생에 가장 많이 엄마로부터 “사랑해”라고는 소리를 들었을 정도다. “그것은 네 잘못이 아니야”라며 안아주고 감싸주었던 큰 유진은 비록 그 때 일을 떠올리면 불쾌하긴 하지만 비교적 밝고 건강한 아이로 자란다. 그 때 일이란 단지 ‘미친개에게 물린 것’일 뿐이다. 그것은 물린 사람은 전혀 잘못이 없는 일이다.

 

그러나 작은 유진은 할아버지나 할머니로부터 이젠 깨진 그릇 밖에 되지 않는다. 전교 1등을 했을 때에야 겨우 제 몫을 하는 존재일 뿐이다. 작은 유진의 고통은 성폭력 자체의 고통보다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가족에 대한 분노가 더 크다. 그렇기에 큰 유진이 너무나 부러웠다.

 

몇 년 전쯤, 여고생인 딸이 성폭행을 당했다는 것을 알고, 그 엄마가 딸을 목졸라 죽이고, 자신도 자살했다는 기사를 읽고 너무나 기가 막히고 안타까웠다. 미친개한테 물렸을 뿐인데, 왜 죽음에까지 이르는지 가슴이 아팠다. 물론 당사자가 아니고, 또 속내야 알 수 없지만 그 방법은 옳은 것은 아니라고 본다. 아직까지 순결이데올로기에 묶여서 소중한 목숨을 쉽게 버리거나 수치스러워하고 죄악시하는 것은 분명 잘못되었다. 물론 결코 자랑스러워할 일도 아니고 함부로 순결을 버리라는 것도 아니다. 다만, 미친개한테 물린 것은 정성껏 치료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미친개한테 물린 당사자가 큰 상처없이 치유할 수 있도록 주변사람이 어떻게 대처하느냐이다. 작가는 그 대안으로 큰 유진의 부모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작중인물인 희정이를 통해서 말한다. “시작은 누구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지만 결국 자신을 만드는 것은 자기 자신이지. 살면서 받는 상처나 고통 같은 것을 자기 삶의 훈장으로 만드는가, 누덕누덕 기운 자국으로 만드는가는 자신의 선택인 것 같아”라고 말하면서 결국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일을 포기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이 책에서는 어른들의 위선도 보게 된다. 청소년 상담을 하며 유치원 성폭행 사건을 보고 팔 걷고 나섰던 건우 엄마는 막상 큰 유진이 자기 아들 건우랑 사귀는 것을 알게 되자 ‘그런 애’하고 사귀지 말라고 한다. 사실 이런 위선자는 어디 한 둘이겠는가?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지만 설령 일어났다 하더라도 작은 유진이 같은 상황이 반복되지 않기를 간절히 빌어본다. 무엇보다 자신을 사랑하는 일을 포기하지 않기를... 아직 우리나라에 성폭력에 관한 본격적인 청소년 소설이 없는 가운데 이 책은 그래서 더욱 의미 있는 책이라고 본다. 청소년의 언어로 쓰여져서 청소년들이 쉽고 재미있게 읽으면서도 많은 공감대를 형성하며 깊은 울림을 주는 책이다. 많은 청소년들에게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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