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렇지 않다
최다혜 지음 / 씨네21북스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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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다 읽은 뒤 제목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아무렇지 않다'

정말로 아무렇지 않아? 그럴 수 있어?


내가 그린 그림을 내 이름으로 낼 수 없는 일러스트레이터 지현,

다음 학기 강의도 보장받지 못하는 대학 시간강사 은영,

점심값을 아껴 물감을 사야 하는 무명의 화가 지은.


나의 결과물은 정당히 인정받지 못하고 쉬지 않고 열심히 살아 왔는데 편의점에서 도시락 대신 컵라면을 골라야 하는 얇은 지갑 앞에서 그녀들의 표정은 얼핏 덤덤해 보인다. 아크릴 물감으로 덧칠된 얼굴 아래 숨겨진 감정은 어두운 방 안이나 바퀴벌레가 나오는 꿈, 낮은 채도의 배경으로 암시된다.


이 불행은 나 때문일까?

나의 무능과, 나의 재능 없음과, 나의 돈 없음 탓이었을까?


불행이 닥치면 우리는 탓할 대상을 찾아 거기에 부정적인 감정들을 쏟아붓는다. 내가 이렇게 된 건 다 나-너-탓이야. 다 내 잘못이야! 혹은 내 잘못 아니야! 격정의 감정이 모든 것을 휩쓸어 버린다.


그러나 그녀들은 담담하다.

자신의 작품에 대한 저작권 양도를 강요하는 계약서에 서명하지 않고,

다음 강의를 맡지 못했다는 소식에 밥 챙겨 먹고 다른 일을 찾아 면접을 보러 가고,

그림을 잠시 넣어두고 재취직을 한 회사 창 밖으로 떨어지는 눈송이를 화가의 눈으로 담아 둔다. 다음 작품 활동을 예비하며.


화내지 않는다. 욕하지 않는다. 끼니를 챙기고 지금 해야 할 일을 한다. 살아 있어야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으니까. 그녀들은 아무렇지 않다.


받아들이지 마라. 스스로 무례해지지 마라.

최다혜 [아무렇지 않다],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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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이지 가드너 1
마일로 지음 / 북폴리오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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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 똥손인데 식물 키우고 싶어졌어요...책임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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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지도 -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곳을 찾아 떠난 여행
에릭 와이너 지음, 김승욱 옮김 / 어크로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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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행복을 찾아 나선다거나 만족을 찾는다고 말한다. 마치 제대로 된 지도와 항해술만 있다면 찾아갈 수 있는 장소가 지도상에 실제로 존재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에릭 와이너 [행복의 지도], 프롤로그

7년 전의 나 자신을 문장으로 표현한다면 저 두 문장으로 압축될 수 있지 않을까. 공립 고등학교 보조교사로 일하면서 번 돈을 분기별로 떠나는 여행에 쏟아붓는 그때의 나는 이곳만 아니라면 어디든 상관없었다. '이곳'의 나는 불행하다. 번듯한 직업 없이 단기 일자리를 전전하며 공모전에 도전하는 족족 떨어지는 나는 이곳의 나. 글을 쓰기 위해 새로운 곳에서 영감을 얻으며 희망을 꿈꾸는 나는 저곳의 나. 방금까지 앙코르와트 사원의 폐허에 숨겨진 소설을 뒤적이던 나와 학교 맨 뒷자리에 서서 떠드는 학생에게 벌점을 부과하는 나는 같은 사람일 리 없었다. 여기서 나는 행복하지 않아!

그런데 행복이란 뭘까? 불행하지 않은 상태(단순하다), 즐거운 상태(쾌락?), 원하던 것을 얻었을 때의 성취감, 욕망의 충족, 대한민국 헌법으로 규정된 인간의 권리, 행복은 감정일까, 일시적인 상태일까, 명확한 권리일까? 우리는 행복하게 살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면서 정작 행복이 무엇인지 질문을 받으면 말문이 막힌다. 행복이라...로또에 당첨되거나 내 집과 차가 있으며 가족 모두가 평안한 상태...? 고민거리가 없는 상태...? 모든 고민을 없앨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다, 죽음. 하지만 우리는 행복을 위해 죽음을 선택하지 않는다.

행복이란 선을 그어놓고 '저 선만 넘으면 행복해져!'라며 폴짝 뛰어넘는 걸로 정의될 수 없다. 여기까지가 불행하고, 저기서부터 행복한 완벽한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행복의 의미를 찾아 전 세계를 여행한 작가 역시 이를 깨닫는다. '우리는 행복을 성취하고 싶어하지, 그냥 행복을 경험하기만 하는 것은 바라지 않는다.'(같은 책, 46쪽) 불행을 제거한 상태가 행복이라면 술을 잔뜩 마시거나 약물에 취한 상태로 살아가면 된다. 아니면 돈이 아주 많거나. 전세계적인 벼락부자 나라인 카타르는 행복한가? 가장 돈이 많은 나라와 가난한 나라의 행복 지수는 비슷하다. 오히려 부탄 같은 나라의 국민행복지수가 더 높아 보인다. 물론 몰도바와 같이 가난한 나라는 대체로 불행하다. 특히 성실함과 미래를 향한 희망의 가치가 사라진 곳에 행복은 존재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롭고 내 마음을 끌어당긴 나라가 아이슬란드다. 악천후와 추위가 일상인 고립된 섬나라, 겨울엔 하루종일 해가 뜨지 않는 이 나라 사람들은 행복하다. 비슷한 조건의 러시아인들은 하루 종일 보드카를 달고 살며 절망에 빠진다. 아이슬란드인들도 매일 술을 마시지만 절망하는 대신 책을 쓰고 음악을 만들고 체스 게임을 한다. 춥고 어두운 이 작은 얼음나라 사람들은 왜 행복할까?

"당신이라면 행복을 어떻게 정의하겠어요?"

사라는 잠시 생각을 해보고는 이렇게 말한다. "행복은 마음의 상태이자, 그런 상태에 도달하려는 노력이에요."

아리스토텔레스도 대충 비슷한 말을 했다. 물론 남자 같은 여자들이 드나드는 아이슬란드의 연기 자욱한 술집에서 그런 말을 한 것은 아니다. 행복이라는 목표를 추구하는 방식도 최소한 그 목표 자체만큼 중요하다. 어쩌면 더 중요할 수도 있다. 사실 이 둘은 같다. 수단이자 목적이다. 착하게 살다 보면 반드시 행복해진다.

에릭 와이너 [행복의 지도], 297쪽

새 텀블러를 소유하는 것이 아닌 텀블러 사용으로 환경 보호에 동참하는 행위의 행복. 추위와 어둠을 불평하기보다 어둠 속에서 요정과 괴물의 이야기를 상상하며 작품을 창조하는 행동이 주는 행복. 설거지 같은 일상적인 행동에도 현재의 순간에 주의를 기울이며 흘러가는 시간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일의 행복. 지금보다 조금 더 나은 미래를 추구하며 현재에 최선을 다하는 것. 너무 뻔한 말인가? 행복이라는 개념이야말로 빤하다. 그래서 정의하기 까다롭다.

7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의 행복도를 비교했을 때 지금이 조금 더 높다. (몰도바의 루바와 같이 '50대 50'이다 답할수도 있다) 과거의 나는 더 자유로웠고 그만큼 불안했다. 지금의 나는 덜 자유로운 대신 안정적이다. '저곳'을 찾아 바쁘게 떠날 때의 나는 당장 1년 뒤의 미래를 상상하지 못했다. '이곳'에 자리를 잡은 나는 10년, 20년의 계획을 대충의 틀이라도 세우고 있다. 앞으로도 여행은 계속 떠날 테지만, 그때와 다른 목적으로 비행기를 탈 것이다. 나의 행복만이 아닌 남편과 아이 모두의 행복을 다지기 위한 삶.

36살 여자(한국) 무명작가에게 행복이란 완벽한 커피 한 잔과 함께 [행복의 지도]와 같이 적절한 유머와 통찰이 겸비된 훌륭한 책을 읽는 시간이다. 4살 남자(한국, 26개월생)에게 행복이란 태어나서 처음 맛보는 과자를 먹고 푹신푹신한 바닥을 마음껏 뛰어다니는 일이다. 누군가에게 행복이란 내가 보유한 주식이 오르는 일이고(물론 그 주식이 더 오르길 바라며 애를 태우다 불행해질 가능성도 있다), 다른 이에게 행복이 무엇인지 묻는다면 내가 아는 모든 이의 건강(대 전염병의 시대에 절실히 와닫는 답이다)이라 할 수 있다. 어떤 나라에서 질서가 곧 행복이라면 옆 나라는 무질서야말로 행복의 원천이라 답할지 모른다. '불행한 나라들은 모두 똑같지만, 행복한 나라들은 각각 자기만의 방식으로 행복하다.(같은 책, 522쪽)' 우리는 이제 각자의 행복을 헤아리고 공유할 담화의 장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한다.

당신이 생각하는 행복이란 무엇인가?

내가 이 원고를 컴퓨터로 쓰는 동안 이제 두 살인 우리 딸이 내 발치에서 수선을 피운다. 저 아이는 무엇을 원할까? 내 사랑? 그래, 어떤 의미에서는 그럴 것이다. 하지만 아이가 정말로 원하는 건 내가 자신에게 주의를 기울여주는 것이다. 순수하게 자신에게만 주의를 기울여주는 것. 아이들은 거짓으로 주의를 기울이는 사람을 금방 알아낸다. 어쩌면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사실은 사랑과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이 둘은 항상 같이 존재한다. 영국의 학자 애브너 오퍼는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행복의 보편적인 도구"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서, 주의를 기울이는 사람이 행복하다는 뜻이다.

같은 책, 96쪽

그런데 존재는 행복의 선행조건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자신을 사랑하려면 인종, 민족, 언어, 요리 중 무엇에 관해서든 하여튼 정체감이 확고해야 한다. 우리가 매일 그 정체감을 되새기며 살지는 않더라도 정체감은 항상 그 자리에 있다. 은행 계좌에 들어 있는 돈처럼. 그래서 우리가 힘들 때 거기에 기댈 수 있다.

같은 책, 349쪽

좋은 음악은 뭔가 다른 것을 가리키지 않는다. 그냥 존재한다. 같은 맥락에서, 오로지 불행만이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불행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고, 불행에 관해 이런저런 말을 늘어놓는 것이다. 행복에는 말이 필요 없다.

같은 책, 36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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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수업 - 불교철학자가 들려주는 인도 20년 내면 여행
신상환 지음 / 휴(休)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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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 홀로 여행지는 캄보디아였다. 앙코르와트 사원에서 일주일을 보내고 오니 어디든 갈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오래 준비했던 고시 공부를 내려놓고 소설을 쓰기 시작했던 때였다. 텅 빈 내면을 채워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은 눈에 보이지 않고, 최대한 현실적으로 접근 가능한 내면 여행이 필요했다.


20대가 아닌 50대인 지금도 떠나려면 떠날 수 있다. 다만 어디로 떠날 수 있는지가 문제일 뿐이다. 누구나 떠나는 여행, 단 한 사람도 다시 돌아오지 않는 죽음이 이 삶의 마지막 여행지이다. 지금 이 순간도 우리는 죽음을 향해 여행하고 있다. 다만 그 이전에 각자의 몫만큼의 자신의 여행을 떠난다. 젊은 날의 그 떠돎이 가르쳐준 것은 여행이란 밖으로 떠도는 것뿐만 아니라 자기 내면으로도 떠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직 살아보지 않은 인생이야말로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이니, 한 생을 사는 우리는 지금도 길 떠나는 여행자인 셈이다.

신상환 [인도수업] 17쪽(강조는 인용자)


여행은 바깥으로도, 안쪽으로도 떠날 수 있다. 안으로는 어떻게 떠나야 하나? 명상이나 종교적 수행? 순례자의 길? 책 속 작가는 인도와 티벳, 무스탕, 중앙아시아로 떠난다. 상식적으로 익숙한 인도가 아닌 불교의 발원지로서의 인도 여행. 티벳 불교를 중심으로 바라보는 티벳 여행. 도시 이름조차 낯선 무스탕, 사마르칸트, 하미 파미르 같은 실크로드 여행. 모두 불교를 중심으로 두고 움직인 여행이다. 저자가 불교 철학자로 중관사상과 티벳 불교를 전공하신 분이니까. 부처가 태어난 인도에서 시작해 불교가 곧 국교인 티벳, [서유기]로 유명한 현장법사가 불경을 싣고 건넌 중앙아시아의 길을 따라가는 것이 이 저자만의 '내면 여행'인 셈이다.


지명이나 불교 용어들이 다소 생소해 따라가기 낯선 여행이긴 하다. 불교에 관한 배경지식이 한국사에서 배운 수준(대승-소승불교, 돈오-점수 등)이면 얼추 따라잡다가 티벳 불교에서 한 번 막힌다. 내가 아는 티벳은 달라이 라마, 프리 티벳 운동, 린포체로 대표되는 특유의 환생 문화 정도뿐이라 전공자의 티벳 불교 강의를 낯설면서도 흥미롭게 읽었다. 나와 비슷한 독자들을 위해 부록으로 '티벳에 대한 오해와 이해'장이 있어 좀 더 정확한 내용들을 알 수 있었다. 한때 티벳 여행을 꿈꿔 왔고 지금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기에 이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빈 부분들이 채워지는 느낌이었다.


인도, 티벳, 네팔 모두 캄보디아 이후 떠나려 했던 여행 후보지들이었고 떠남 자체가 까다로운 곳들이었다. 이 책으로 알게 된 중앙아시아의 도시들 역시 저자가 떠났던 때보다 훨씬 더 여행이 어려워진 곳이 되었다. 직접 바깥으로 떠날 수 없더라도 글을 통해 안쪽으로 한 바퀴 돌아나올 수 있다. 산스크리트어 원문으로 적힌 불경을 한가득 이고지고 와야 했던 현장법사처럼, 글이 진리 그 자체는 아니지만 진리를 향해 떠날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다. 여행에 필요한 지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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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떠나온 세계
김초엽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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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할 수 있을까?

내가 너를 이해할 수 있을까?

네가 나를 이해할 수 있을까?


'나'는 모그인 마리를 이해할 수 있을까?(마리의 춤)

진은 세 번째 팔을 원하는 로라를 이해할 수 있을까?(로라)

숨이 곧 언어인 숨그림자 사람들은 음성언어를 사용하는 원형인류를 이해했을까?(숨그림자)


서로 다른 세계의 사람들이 만난다. 다른 행성 출신이, 지구에서 먼 행성으로 이주한 이주민들이, 분화된 진화과정을 거쳐 신인류가 된 인간과 원형 지구의 인간이. 입자로 의사소통하는 <숨그림자>의 행성에서 불시착한 원형 인류가 발견된다. 엄격한 종교가 지배하는 행성 벨라타에 착륙한 지구 탐사선은 행성만의 <오래된 협약>의 비밀에 당황한다.


때로 그 세계는 선천적인 질병이나 후천적인 아픔의 형태로 다가오기도 한다. <최후의 라이오니>의 '나'는 로몬이라는 자신이 속한 세계에서 적응을 어려워 한다. <인지 공간>의 이브는 병약하게 태어나 공동체에 속한 사람이라면 마땅히 진입해야만 하는 인지 공간에 들어갈 자격을 얻지 못한다. 이 세계가 나를 환영하지 않는다는 감각은 아프다. 내가 이곳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적응하거나, 변화시키려 노력하거나, 떠나거나.


"이곳을 사랑하게 만드는 것들이 이곳을 덜 미워하게 하지는 않아. 그건 그냥 동시에 존재하는 거야. 다른 모든 것처럼."

김초엽 <숨그림자> [방금 떠나온 세계]


김초엽 작가님의 두 번째 단편소설집 [방금 떠나온 세계]의 독특한 지점 중 하나가 기존 세계와 불화하는 존재를 중심으로, 그를 바라보는 관찰자의 시점을 중요하게 다룬다는 것이다. 선천적인 시지각 이상증을 가지고 태어난 모그인 마리에게 춤을 가르치는 <마리의 춤>의 '나'는 보이지 않는 춤을 연습하는 마리를 이해하려 노력한다. 원래 지구 출신인 조안을 이해하려는 <숨그림자>의 단희는 조안을 위해 새로운 의미합성 기계를 만드는 일에 몰두한다. 존재하지 않는 세 번째 팔을 원하는 <로라>의 로라를 이해하기 위해 책까지 쓰는 진, 인지 공간에 들어올 수 없는 이브의 노력을 뒤늦게 알아채고 친구의 연구를 이어가기 위해 인지 공간을 떠나는 <인지 공간>의 '나', 시간지각 능력을 잃어버린 천재 이론물리학자 언니를 이해하기 위해 울산의 백화점 옥상 관람차에 탑승하는 <캐빈 방정식>의 '나'. 아끼고 사랑하는 가까운 이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고 연구하고 기다리며 끝내 익숙한 세계를 떠나는 '나'들.


나의 세계와 너의 세계는 서로 다른 행성처럼 기압도 중력도 생태계도 달라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 나의 시간과 너의 시간은 서로 다르게 흐른다. 때로 나는 너를 오해하고, 어쩌다 너는 나를 라이오니라 착각한다. 나는 너의 라이오니가 아닌데, 왜 너는 내게 춤을 배우려 하는지, 왜 나를 떠나려 하는지, 이해할 수 없지만 이해하겠다. 그 이해가 끝내 실패하더라도 끝까지 붙잡아보겠다. 너의 주머니 우주와 나의 주머니 우주가 동시에 공명하는(캐빈 방정식) 그 순간을 위해.


눈이 마주쳤을 때, 로라는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씩 웃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여전히 로라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동시에 제가 앞으로도, 어쩌면 영원히 로라를 이해할 수 없으리라는 것도요.

하지만 그걸 깨닫는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사랑하지만 끝내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당신에게도 있지 않나요.


김초엽, <로라>, 같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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