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지도 -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곳을 찾아 떠난 여행
에릭 와이너 지음, 김승욱 옮김 / 어크로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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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행복을 찾아 나선다거나 만족을 찾는다고 말한다. 마치 제대로 된 지도와 항해술만 있다면 찾아갈 수 있는 장소가 지도상에 실제로 존재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에릭 와이너 [행복의 지도], 프롤로그

7년 전의 나 자신을 문장으로 표현한다면 저 두 문장으로 압축될 수 있지 않을까. 공립 고등학교 보조교사로 일하면서 번 돈을 분기별로 떠나는 여행에 쏟아붓는 그때의 나는 이곳만 아니라면 어디든 상관없었다. '이곳'의 나는 불행하다. 번듯한 직업 없이 단기 일자리를 전전하며 공모전에 도전하는 족족 떨어지는 나는 이곳의 나. 글을 쓰기 위해 새로운 곳에서 영감을 얻으며 희망을 꿈꾸는 나는 저곳의 나. 방금까지 앙코르와트 사원의 폐허에 숨겨진 소설을 뒤적이던 나와 학교 맨 뒷자리에 서서 떠드는 학생에게 벌점을 부과하는 나는 같은 사람일 리 없었다. 여기서 나는 행복하지 않아!

그런데 행복이란 뭘까? 불행하지 않은 상태(단순하다), 즐거운 상태(쾌락?), 원하던 것을 얻었을 때의 성취감, 욕망의 충족, 대한민국 헌법으로 규정된 인간의 권리, 행복은 감정일까, 일시적인 상태일까, 명확한 권리일까? 우리는 행복하게 살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면서 정작 행복이 무엇인지 질문을 받으면 말문이 막힌다. 행복이라...로또에 당첨되거나 내 집과 차가 있으며 가족 모두가 평안한 상태...? 고민거리가 없는 상태...? 모든 고민을 없앨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다, 죽음. 하지만 우리는 행복을 위해 죽음을 선택하지 않는다.

행복이란 선을 그어놓고 '저 선만 넘으면 행복해져!'라며 폴짝 뛰어넘는 걸로 정의될 수 없다. 여기까지가 불행하고, 저기서부터 행복한 완벽한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행복의 의미를 찾아 전 세계를 여행한 작가 역시 이를 깨닫는다. '우리는 행복을 성취하고 싶어하지, 그냥 행복을 경험하기만 하는 것은 바라지 않는다.'(같은 책, 46쪽) 불행을 제거한 상태가 행복이라면 술을 잔뜩 마시거나 약물에 취한 상태로 살아가면 된다. 아니면 돈이 아주 많거나. 전세계적인 벼락부자 나라인 카타르는 행복한가? 가장 돈이 많은 나라와 가난한 나라의 행복 지수는 비슷하다. 오히려 부탄 같은 나라의 국민행복지수가 더 높아 보인다. 물론 몰도바와 같이 가난한 나라는 대체로 불행하다. 특히 성실함과 미래를 향한 희망의 가치가 사라진 곳에 행복은 존재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롭고 내 마음을 끌어당긴 나라가 아이슬란드다. 악천후와 추위가 일상인 고립된 섬나라, 겨울엔 하루종일 해가 뜨지 않는 이 나라 사람들은 행복하다. 비슷한 조건의 러시아인들은 하루 종일 보드카를 달고 살며 절망에 빠진다. 아이슬란드인들도 매일 술을 마시지만 절망하는 대신 책을 쓰고 음악을 만들고 체스 게임을 한다. 춥고 어두운 이 작은 얼음나라 사람들은 왜 행복할까?

"당신이라면 행복을 어떻게 정의하겠어요?"

사라는 잠시 생각을 해보고는 이렇게 말한다. "행복은 마음의 상태이자, 그런 상태에 도달하려는 노력이에요."

아리스토텔레스도 대충 비슷한 말을 했다. 물론 남자 같은 여자들이 드나드는 아이슬란드의 연기 자욱한 술집에서 그런 말을 한 것은 아니다. 행복이라는 목표를 추구하는 방식도 최소한 그 목표 자체만큼 중요하다. 어쩌면 더 중요할 수도 있다. 사실 이 둘은 같다. 수단이자 목적이다. 착하게 살다 보면 반드시 행복해진다.

에릭 와이너 [행복의 지도], 297쪽

새 텀블러를 소유하는 것이 아닌 텀블러 사용으로 환경 보호에 동참하는 행위의 행복. 추위와 어둠을 불평하기보다 어둠 속에서 요정과 괴물의 이야기를 상상하며 작품을 창조하는 행동이 주는 행복. 설거지 같은 일상적인 행동에도 현재의 순간에 주의를 기울이며 흘러가는 시간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일의 행복. 지금보다 조금 더 나은 미래를 추구하며 현재에 최선을 다하는 것. 너무 뻔한 말인가? 행복이라는 개념이야말로 빤하다. 그래서 정의하기 까다롭다.

7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의 행복도를 비교했을 때 지금이 조금 더 높다. (몰도바의 루바와 같이 '50대 50'이다 답할수도 있다) 과거의 나는 더 자유로웠고 그만큼 불안했다. 지금의 나는 덜 자유로운 대신 안정적이다. '저곳'을 찾아 바쁘게 떠날 때의 나는 당장 1년 뒤의 미래를 상상하지 못했다. '이곳'에 자리를 잡은 나는 10년, 20년의 계획을 대충의 틀이라도 세우고 있다. 앞으로도 여행은 계속 떠날 테지만, 그때와 다른 목적으로 비행기를 탈 것이다. 나의 행복만이 아닌 남편과 아이 모두의 행복을 다지기 위한 삶.

36살 여자(한국) 무명작가에게 행복이란 완벽한 커피 한 잔과 함께 [행복의 지도]와 같이 적절한 유머와 통찰이 겸비된 훌륭한 책을 읽는 시간이다. 4살 남자(한국, 26개월생)에게 행복이란 태어나서 처음 맛보는 과자를 먹고 푹신푹신한 바닥을 마음껏 뛰어다니는 일이다. 누군가에게 행복이란 내가 보유한 주식이 오르는 일이고(물론 그 주식이 더 오르길 바라며 애를 태우다 불행해질 가능성도 있다), 다른 이에게 행복이 무엇인지 묻는다면 내가 아는 모든 이의 건강(대 전염병의 시대에 절실히 와닫는 답이다)이라 할 수 있다. 어떤 나라에서 질서가 곧 행복이라면 옆 나라는 무질서야말로 행복의 원천이라 답할지 모른다. '불행한 나라들은 모두 똑같지만, 행복한 나라들은 각각 자기만의 방식으로 행복하다.(같은 책, 522쪽)' 우리는 이제 각자의 행복을 헤아리고 공유할 담화의 장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한다.

당신이 생각하는 행복이란 무엇인가?

내가 이 원고를 컴퓨터로 쓰는 동안 이제 두 살인 우리 딸이 내 발치에서 수선을 피운다. 저 아이는 무엇을 원할까? 내 사랑? 그래, 어떤 의미에서는 그럴 것이다. 하지만 아이가 정말로 원하는 건 내가 자신에게 주의를 기울여주는 것이다. 순수하게 자신에게만 주의를 기울여주는 것. 아이들은 거짓으로 주의를 기울이는 사람을 금방 알아낸다. 어쩌면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사실은 사랑과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이 둘은 항상 같이 존재한다. 영국의 학자 애브너 오퍼는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행복의 보편적인 도구"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서, 주의를 기울이는 사람이 행복하다는 뜻이다.

같은 책, 96쪽

그런데 존재는 행복의 선행조건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자신을 사랑하려면 인종, 민족, 언어, 요리 중 무엇에 관해서든 하여튼 정체감이 확고해야 한다. 우리가 매일 그 정체감을 되새기며 살지는 않더라도 정체감은 항상 그 자리에 있다. 은행 계좌에 들어 있는 돈처럼. 그래서 우리가 힘들 때 거기에 기댈 수 있다.

같은 책, 349쪽

좋은 음악은 뭔가 다른 것을 가리키지 않는다. 그냥 존재한다. 같은 맥락에서, 오로지 불행만이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불행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고, 불행에 관해 이런저런 말을 늘어놓는 것이다. 행복에는 말이 필요 없다.

같은 책, 36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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