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수업 - 불교철학자가 들려주는 인도 20년 내면 여행
신상환 지음 / 휴(休)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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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 홀로 여행지는 캄보디아였다. 앙코르와트 사원에서 일주일을 보내고 오니 어디든 갈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오래 준비했던 고시 공부를 내려놓고 소설을 쓰기 시작했던 때였다. 텅 빈 내면을 채워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은 눈에 보이지 않고, 최대한 현실적으로 접근 가능한 내면 여행이 필요했다.


20대가 아닌 50대인 지금도 떠나려면 떠날 수 있다. 다만 어디로 떠날 수 있는지가 문제일 뿐이다. 누구나 떠나는 여행, 단 한 사람도 다시 돌아오지 않는 죽음이 이 삶의 마지막 여행지이다. 지금 이 순간도 우리는 죽음을 향해 여행하고 있다. 다만 그 이전에 각자의 몫만큼의 자신의 여행을 떠난다. 젊은 날의 그 떠돎이 가르쳐준 것은 여행이란 밖으로 떠도는 것뿐만 아니라 자기 내면으로도 떠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직 살아보지 않은 인생이야말로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이니, 한 생을 사는 우리는 지금도 길 떠나는 여행자인 셈이다.

신상환 [인도수업] 17쪽(강조는 인용자)


여행은 바깥으로도, 안쪽으로도 떠날 수 있다. 안으로는 어떻게 떠나야 하나? 명상이나 종교적 수행? 순례자의 길? 책 속 작가는 인도와 티벳, 무스탕, 중앙아시아로 떠난다. 상식적으로 익숙한 인도가 아닌 불교의 발원지로서의 인도 여행. 티벳 불교를 중심으로 바라보는 티벳 여행. 도시 이름조차 낯선 무스탕, 사마르칸트, 하미 파미르 같은 실크로드 여행. 모두 불교를 중심으로 두고 움직인 여행이다. 저자가 불교 철학자로 중관사상과 티벳 불교를 전공하신 분이니까. 부처가 태어난 인도에서 시작해 불교가 곧 국교인 티벳, [서유기]로 유명한 현장법사가 불경을 싣고 건넌 중앙아시아의 길을 따라가는 것이 이 저자만의 '내면 여행'인 셈이다.


지명이나 불교 용어들이 다소 생소해 따라가기 낯선 여행이긴 하다. 불교에 관한 배경지식이 한국사에서 배운 수준(대승-소승불교, 돈오-점수 등)이면 얼추 따라잡다가 티벳 불교에서 한 번 막힌다. 내가 아는 티벳은 달라이 라마, 프리 티벳 운동, 린포체로 대표되는 특유의 환생 문화 정도뿐이라 전공자의 티벳 불교 강의를 낯설면서도 흥미롭게 읽었다. 나와 비슷한 독자들을 위해 부록으로 '티벳에 대한 오해와 이해'장이 있어 좀 더 정확한 내용들을 알 수 있었다. 한때 티벳 여행을 꿈꿔 왔고 지금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기에 이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빈 부분들이 채워지는 느낌이었다.


인도, 티벳, 네팔 모두 캄보디아 이후 떠나려 했던 여행 후보지들이었고 떠남 자체가 까다로운 곳들이었다. 이 책으로 알게 된 중앙아시아의 도시들 역시 저자가 떠났던 때보다 훨씬 더 여행이 어려워진 곳이 되었다. 직접 바깥으로 떠날 수 없더라도 글을 통해 안쪽으로 한 바퀴 돌아나올 수 있다. 산스크리트어 원문으로 적힌 불경을 한가득 이고지고 와야 했던 현장법사처럼, 글이 진리 그 자체는 아니지만 진리를 향해 떠날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다. 여행에 필요한 지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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