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의 심장 가까이 암실문고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지음, 민승남 옮김 / 을유문화사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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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령 도중에 미쳐 버리지 않고 삶을 이해하게 된다 해도 그 앎을 지식으로 보존하기란 불가능하다. 삶을 완전하게 소유하고 표현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 앎을 하나의 태도, 삶의 태도로 삼는 것이다.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야생의 심장 가까이


처음 이 글의 제목은 '삶을 살아가기의 어려움'이었다.

소설도 아닌 소설 감상문의 제목으로 지나치게 거창하다.

삶을 살아가기, 그냥 살면 되는 것 아닌가?

클라리시 리스펙토르의 데뷔작 [야생의 심장 가까이]의 주인공,

주아나는 그냥 살지 않는-못한다.

생각 없이 살 수 없다. 그건 삶이 아니니까.

그러나 생각하며 살면 광기가 기다린다, 필연적으로.


그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이 존재한다(222쪽)


주아나, 그녀, 여자는 지나치게 존재한다.

숨 쉬는 것을 의식하는 순간부터 숨이 부자연스러워지듯,

삶을 사유하는 순간 삶은 한없이 무거워진다.

이토록 연약한 인간의 몸으로 삶을 지탱할 수 없을 것만 같다.

주아나가 찾은 답은?

주아나를 통해 탐구하는 리스펙토르의 결말은?

이 소설 전체가 답이 될 수 있고,

답을 부정할 수도 있다.

요약 불가능, 사실 소설은 한 줄로 요약할 수 없다.


소설을 소유하는 유일한 방법은 소설을 태도로 삼는 것이다.


리스펙토르라는 하나의 태도,

나는 그 태도에 매혹되었다.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없다는 건 기이한 일이다. 너무 잘 아는 걸 말할 수가 없으니까. 무엇보다도 그걸 말하기가 두렵다. 말하려는 순간 내가 느끼는 걸 표현할 수 없을뿐더러, 내가 느끼는 것이 서서히 내가 말하는 것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같은 책, 27쪽


나는 비 위에 있는 기적을 발견했어, 하고 주아나는 생각했다. 굵다랗고, 진지하며, 반짝거리는 별들로 쪼개진 기적. 고정된 경고 같은: 등대 같은. 그것들은 무엇을 말하려 하는 걸까? 나는 그들이 품은 비밀을 감지한다. 그 반짝임은 내 안에서 흐르는 신비, 광범위하고 필사적이며 낭만적인 음조로 흐느끼는 무감각한 신비다. 신이시여, 적어도 그것들과는 소통할 수 있게 해 주세요. 그것들에 입 맞추며 갈망을 만족시킬 수 있게 해 주세요. 그들의 빛을 제 입술로 느끼고, 그 빛이 제 몸 안에서 빛나게 해 주세요. 그리하여 내 몸이 동트기 직전의 순간처럼 투명하고 시원하고 촉촉한 상태로 반짝이게 해 주세요.

같은 책, 10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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