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 1 ㅣ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
박경철 지음 / 리더스북 / 2005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시골의사의 부자 경제학'이라는 이상한 제목의 재테크 서적이 인기를 얻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있다. 참 별놈의 의사가 다있구나 생각하면서 지나쳤는데, 얼마 전 우연히 한겨레 신문에 난 칼럼 하나를 읽다가 - 참, 몇 년만인가 -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남자는 세 번 운다는 말을 금과옥조로 여기며, 좀처럼 감정의 변화를 보이지 않는 나를 울린, 이 사람이 누군가하고 보니 예의 바로 그 의사였다! 재테크와 경제, 의사라고 하면 딱딱하고 냉철한 이미지가 떠오르는데 어쩜 이렇게 사람의 마음을 쥐락펴락하는 글들을 쓸 수 있을까. 그 '희안한' 의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가던 찰나 이 책을 접하게 됐다.
일단 그는 생활 글쓰기의 표본이다. 글쓰기에 대한 전문적인 수련은 아마도 없었겠지만, 생활 속에서 마주치는 사건들을 놓치지 않고 글로 옮기는 '생활작가'다. 또한 뛰어난 감수성의 소유자다. 가볍게 흘리지 않고 깊이 이해하고 같이 느낀 것처럼 보인다. 수식이 화려하고 기교가 농익은 글은 아니지만 솔직하고 인간적이다. 그래서 독자들은 그의 글에 감동하고 공감한다. 글을 죽이더라도 말을 살리라고 했던가. 감정을 솔직하게 들어낸 글이 잘된 글이라고 하는데 이 책이야 말로 그런 기준에 부합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 면에서 지은이는 나에게 좋은 본보기가 된다.
아무튼, 이 책은 저자가 의사 생활을 통해 실제로 겪은 에피소드들로 이루어져 있다. 사실 너무 끔찍하고 충격적인 장면들이 많아서 거북하기도 하다. 이런 일들이 실제로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가 의심이 들만큼. 한 편으로, 한 사람이 이런 엄청난 일들을 실제로 접하는 게 가능하단 말인가 의아하기도 하다. 이 모든 것이 모두 사실임을 너무도 잘 알기에 더욱 사실이 아닐것이라고 믿게 되는 역설이랄까. 우리들이야 이런 일들을 간접적으로 접하며 '신기하다'느니 '정말?' 이라는 감탄사를 늘어놓으면 그만이지만, 의사는 죽음에 가장 가까이 있는 직업이기에 그 모든 것들을 지켜보고 '동행'해야 한다. 한창 재밌는 개그 프로그램도 자주 보다보면 물리기 마련인데, 생의 막장을 하루에도 몇 번이고 보면서 필연적으로 겪게 될 감정의 무뎌짐, 그 관성에 빠지지 않으려고 하는 한 의사의 모습이 보인다.
일일이 집어내기 어려울만큼 우리를 울리고 웃기고, 눈살을 찌푸리게 할만큼 끔찍하고, 기립박수라도 쳐야 할만큼 감동적인 이야기들이 많다. 아마, 소설로 써도 이런 다이내믹한 이야기를 꾸며낼 수는 없을 것 같다. 이 모든 것이 소설이 아니고 현실이기에 더욱 슬프고, 안타깝고, 감동적이다. 정말 왜 힘들고 어렵게 사는 사람들에게 설상가상으로 더욱 어려운 일이 닥치는지. 저자의 말대로 '왜 이토록 고통은 평범하고 순박한 사람들을 비껴가지 못하는지…' 생각하고,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몇 남지 않은 이를 드러낸 웃음또한 머리 속으로 그리면서 읽어나가는데, 그 여정이 쉽게 거부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 책에 '새옹지마? 새옹지우!'라는 에피소드가 있다. 나는 그 에피소드야 말로 이 책을 관통하는 주제가 담겨있다는 생각이 든다. 인생이라는 것은 정말 어찌될 지 모르는 것이다. 오늘 당장, 지금 당장 어떻게 될 지 모르는 것이 인생아닌가. 시작도 끝도 내가 결정할 수 없고 삶을 살면서 겪는 희로애락도 사실, 내가 결정하고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인생에서 내가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하지만 우리들은 모든 것을 다 소유하고 선택할 수 있는 것처럼 산다. 오만하고 냉정하게 앞만 보고 달려간다. 하지만 그런 삶에서 결국 기다리고 있는 것은 '허무'와 '고독'일 뿐이지 않는가…. 지은이는 이 책을 통해 자신이 의사로 일하며 겪었던 기쁘고, 슬프고, 노엽고, 재밌는 사건들을 솜씨좋게 말하지만 결국 말하고 있는 것은 이런게 아닐까 싶다.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것이 인생입니다. 주위를 돌아보면서 넘어진 사람 일으켜주기도 하고, 잠시 쉬면서 서로 이야기도 나누면서 그렇게 살아가는 것은 어떻습니까. 결국에 남는 것은 사람입니다.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 열심히 뛰어봤자 기다리고 있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하고 말이다. 끝으로, 지은이 시골의사는 물론이고 글솜씨가 없어서 지은이처럼 책을 내지 못했지만 묵묵히 일하고 있을 의사들, 사회의 그늘 속에서 같이 눈물 흘리는 봉사자들, 말없이 손에 손잡고 동행하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감사와 응원을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