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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코끼리
스에요시 아키코 지음, 양경미.이화순 옮김, 정효찬 그림 / 이가서 / 2006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 어느날 문득, 노란 아기 코끼리가 다가왔다.
매사에 덜렁거리는 기계치인 엄마가 드디어 운전면허를 결심하면서 '나'(요군)에게 새 가족이 생긴다. '노란 아기 코끼리'라는 애칭을 수여받게 된 중고차가 바로 그것. 엄마의 운전면허증보다 먼저 도착한 노란 코끼리는 한 달이 지나서야 바다로 첫 나들이를 떠난다. 엄마와 나, 동생 나나. 이렇게 셋이서.
앙증맞은 제목만큼이나 사랑스런 외모를 갖고 있는 책, <노란 코끼리>. 그냥 휘리릭~ 넘겨보면 첫 느낌은 삽화책 같기도 하고 동화책 같기도 하다. 마티즈를 연상시키는 노란 자동차가 굴러가는 표지 위에 샛노란 띠지를 걸치고 속지까지 노랗게 물들인 귀여운 이 책은, 책 속에 책표지와 같은 그림이 새겨져있는 이쁜 책갈피 선물까지 품고 있다. 오~ 작은 걸로 큰 감동주는 센스쟁이~! ㅎㅎㅎ
또래보다 성숙한 아이 요군과 매사에 덜렁대지만 엄청난 낙천주의자인 싱글맘인 엄마의 가족 이야기인 '노란 코끼리'는, 아이의 어른스러움과 시니컬함이 매사에 덜렁대는 엄마의 성격과 서로 상충되며 웃음을 유발한다. 한 편의 시트콤을 보는 것 같다고나 할까. 그러나 키득대면서도 마음 어딘가가 짠하다.
부모의 행동은 어떤 형태로든 아이에게 많은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아빠의 외도로 인한 부모님의 이혼 또한 어린 요군을 너무 빨리 애늙은이로 만들어 버린다. 아빠 없는 가정에서 맞는 현실이 녹록찮다는 것을어린 나이에 알아버렸다고나 할까. 요군의 열한 번째 생일에 찾아왔다가 어린 나나의 우산도 마다하고 비오는 거리로 사라진 아빠의 뒷모습을바라 보는 요군의 모습은 그래서 더욱 안타깝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너무 일찍 씁쓸한 어른의 세계를 알아버린 요군의 마음이 그대로 들어나 마음이 찡하기도 하고;;
부끄럽지만 내 운전면허는 소위 장롱면허다; 취득한지 벌써 오래지만(없어지지 않았다면 나도 어엿한 녹색면허자가 되어있을지도;; ^ ^;;) 일년에 운전을 하는 횟수는 얼마되지 않는 터라 오랫만에 운전대를 잡기라도 하면 무뎌질대로 무뎌진 감각에 바짝 긴장을 한다. 기계치는 아니지만 그때의 심정을 알기에 <노란 코끼리>의 기계치인 엄마가 콧잔등에 송글송글 땀이 맺히도록 긴장하는 그 모습이 낯설지가 않다. 그런 엄마가 운전면허를 결심한 건 자신이 지켜야 할 아이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무섭고 겁이 나지만 용기를 내어 운전면허증을 따고 운전대를 잡는다. 이 책에서 엄마의 운전은 싱글맘으로서 맞닥뜨려야 하는 현실의 어려움을 이겨나가려는 엄마의 의지표출이 아닌가 싶다.
엄마의 중고차 '노란 아기 코끼리'가 찾아오면서 시작된 <노란 코끼리>는 그 코끼리를 떠나보내면서 끝난다. 그러나 노란 코끼리는 떠난 자리엔 새로운 용기와 희망이 남아있다. 두려움에 맞짱뜨면서 운전대를 잡는 엄마는 어쩌면 세상을 향해 홀로서기를 시도하는 모든 싱글맘의 모습이 아닐까. 차 안에 열쇠를 두고 문을 잠그는 황당한 실수부터 주차해둔 차를 견인당하고 집으로 들어오고 나가면서 수없이 차를 긁어대고 때론 교통체증을 유발하는 수난을 겪으면서 베스트 드라이버로 거듭나듯이, 원고 때문에 머리를 쥐어짜고 출판사에서 머리를 조아리며 날마다 아이들과 한 판 승부를 벌이고 말 안 듣는 아들 걱정이 이어지는 일상을 보내면서 엄마도 아이도 한 뼘즘 성장해 간다.
싱글맘이란 쉽지 않은 소재로 이야기를 꾸려나가지만 <노란 코끼리>는 예의 그 미덕인 밝고 경쾌함을 잃지 않는다. 부록으로 웃음도 동반한다. 그렇지만 그 짧은 이야기 안에는 작가가 하고 싶은 많은 메시지가 담겨있다. 그래서 마냥 가볍지만은 않다. 마지막 가족여행에서 돌아오며 엄마가 하는 말은 그래서 더 가슴에 와 닿는다.
- 엄마는 노란 아기 코끼리를 타고 있을 때면 늘 기분이 좋았단다. 엄마 노릇도 잘 못하고 아내로서도 부족했지만, 복잡한 도로에서 다른 차량의 물결에 섞여 함께 달리다 보면, '어때, 나도 남들에게 뒤쳐지지 않고 잘 하잖아' 하는 기분이 들었거든. 엄마가 그럭저럭 생활을 꾸려갈 수 있었던 건 모두 이 노란 아기 코끼리 덕분이야. 물론 앞으로도 사람들에게 이런저런 폐를 끼치게 될 지도 모르지만, 우리도 이젠 남에게 의지하지 말고 어떻게든 씩씩하게 살아가야 해. 별 일도 아닌 걸 가지고 놀란 고슴도치처럼 몸을 동그랗게 말고 있을 수 만은 없으니 말이야. 엄마는 이제 가슴을 펴고 씩씩하게 나아갈 거야. (218 쪽)
아참,, 부모가 모두 없다고 해서 '결손가정'이라 부르는 것도 하나의 편견이 될 수 있다는 말을 전에 들었다. 그들의 가정이 우리랑 조금 다르다고 해서 '결손'되었다고 함부로 말할 수 있을까. 이혼률이 증가하는 요즘 그들이 우리의 생각없는 말로 또 다른 상처를 받지 않길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