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일지매는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청국의 무술과 왜국의 비술을 터득한 몸, 일지매가 악을 응징하는 내용이다. 이런 설정이 말해주듯 화려한 중국 무술과 담백한 일본 무술의 중간에 서있는 일지매는 걸걸한 막걸리처럼 한국적이고 통쾌하다. 고우영 작가 특유의 화풍과 입담이 자반고등어에 배인 소금처럼 맛깔스럽게 절여 있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아쉬운 점도 적지 않다. 주인공 중심적이고 우연적인 사건 전개는 지나칠 정도로 작위적이며, 일지매의 정의에 대한 논리와 사고방식은 상당히 모순적이고 독선적이다. 출생과 신분의 콤플렉스 때문인지 일지매는 사회 문제의 본질을 깨뚫지 못하고, 모든 탓을 도적과 탄관오리들에게 돌리며, 임금은 공격하지 않는다. 일지매가 만들어진 시대(1975)가 시대인 만큼 이러한 민감한 부분에서 조심하는 것이 쉽게 발견된다. 그래서 일지매의 비판 정신은 시대를 뛰어넘지 못하고 있지만, 30년이 지난 지금 봐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시대를 앞선 재미가 있다.
한국형무협액션만화의 지평을 열었다는 점에서 요즘 난무하는 일본풍, 서양풍 만화는 본받아야 할 것이다. 요즘 한국적 정서를 가진 만화가 거의 사라진 실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