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키스트 이회영과 젊은 그들
이덕일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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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억압하지 않으며 누구에게도 억합당하지 않으리라'- 아나키즘과 아나키스트를 잘 대변하는 문장이다. 아나키즘은 나에게는 너무나도 낯설었다. 몇년전에 '아나키스트'라는 영화를 하였는데, 나는 아나키스트가 테러와 무장투쟁을 하는 사람들로 인식이 되었다. 하지만 우리와는 너무 거리가 먼 사상으로 인식되었던것은 분명하다. 아나키즘은 공산주의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공산주의는 아나키즘 일수는 있지만 아나키즘은 공산주의가 될수 없다는 말이있는데, 이런 인식이 우리에게는 없고 단순히 공산주의로 인식하여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생소하고 잊혀진 것들이다.

<아나키스트 이형과 젊은그들>은 아나키즘을 중점으로 중국에서의 이회영과 독립투사들의 활동을 말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이회영이라는 이름이 생소한다. 아마 그의 이름앞에 아나키스트라는 이름이 항상 따라다녀 이회영이야 말로 정말 투철한 독립투사임에 불구하고 우리에게는 잊혀진 존재이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이회영에게 감탄을 하였는데, 잘나가는 세도가의 자손자리를 버리고 재산을 몽땅 독립운동에 투자하고 자신의 몸과 가족의 몸까지 독립운동에 헌신한 점은 정말 높이살점이라고 할수있다. 이런 이회영이라는 사람이 왜 우리에게는 잊혀져야 했고 100년후 우리에게 다시 나타난 이유는 뭘까?

이회영으로부터 우리는 미래의 대안을 찾을수 있다. 바로 아나키즘이다. 고등학생 형에게 아나키즘이 무엇인가 질문한적이 있는데, 아주 정확히 '무정부주의자'라고 했다. 정부가 없는 자들. 하지만 이 말은 아나키스트를 잘 말해주지 못한다. 책에서도 나왔듯이 아나키스트는 자유연합주의라고 읽어야 본질을 알수 있다. 이데올로기 때문에 이렇게 고통받는 민족이 또 있을까? 우리는 그놈의 사상인가 하는놈때문에 너무나도 많은 피와 눈물을 흘려야만 했고, 지금도 고통을 받고있다. 이런 사회의 혼란속에 아나키즘은 대안이 될수 있을까? 누구도 억압하지 않고 억압당하지 않은 정신은 이시대의 필요하다. 이 시대 자유와 평화를 위해...

이 책을 통해 우리에게 잊혀진 독립투사들을 많이 알게되었다. 김구선생이나, 안중근의사, 윤봉길 의사등 - 이런 사람뒤에 묵묵히 자신을 희생하며 조국의 독립을 꿈꾼 젊은그들. 오늘 왜이리 가슴이 아플까? 왜 이제서야 그들을 알게 되었을까? 오늘은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하루가 되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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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성석제 지음 / 창비 / 200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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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몰랐지만 성석제하면 이야기꾼으로, 또는 입심좋은 작가가 평이 나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을 접하기는 전까지 성석제를 몰랐다. <황만근...>을 접하고 나서야 이 작가에게 관심이 가고 그의 작품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결국 <황만근>은 나에게는 성석제 입문서였다.

<황만근>의 제목은 소설내용과 같이 특이하다. 책을 읽기전 황만근이 누구인지도 모르는데 그가 뭐라고 말했는지 궁금해 지기 시작했다. 이 소설집의 제목이자 소설집 처음의 있는 단편소설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는 농촌의 실태를 비판한 작품으로 볼수 있는데, 왠지 전해오는 해학과 풍자가 얕은 기분이 들고 작가의 해학과 풍자를 받아들이고 난뒤 기분이 가뿐하지 않았다. 더욱더 신랄하고 따끔한 해학과 풍자가 필요하다. 그리고 재미있는. <황만근>은 책을 읽기전 기대에는 못미친다고 볼수있다. 필시 이야기꾼의 성향은 나타났으나 정말 배꼽자고 유쾌하고 웃고싶었던 나는 실망감을 감출수 없다.

하지만 소설속에 나오는 인물이나 소제들은 매우 흥미롭고 신선하다고 말할수 있다. 특히 <천하제일 남가이>나, <꽃의 피, 피의꽃>은 매우 새롭고 재미있게 읽었는데, 이런점으로 볼때는 어쩔수 없이 성석제를 입심좋은 작가로 볼수 밖에 없다. 우리가 접해볼수 없었던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얘기, <황만근>은 이런 호기심이 작용해 재미있게 읽히진 했지만 아까 말했듯이 신랄하고 정문일침의 해학과 풍자가 더 필요한점이 아쉽다. 작가의 다른 작품도 음미해 보아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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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전당포 살인사건
한차현 지음 / 생각의나무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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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이라 오전 10시 쭘 일어나서 눈을 비비고 쇼파에 앉았는데, 딩동~ 벨이 울리더니 택배아저씨가 낑낑대며 택배를 건네준다(책을 많이 주문시켜서). 잠이 확 달아나버리고 허겁지겁 박스를 개봉하는 바람에 쿼터칼날이 부러지기도 했지만 새로운 책이 왔다는 즐거움에 흥분되었다. 새로운 책들을 한번 훑어보는데 유난히 눈에 뛴것이 있었으니 <영광전당포 살인사건>이다. 책 표지와 모양도 독틀할 뿐더러 제목까지 특이하다. 그냥 <영광전당포>이면 몰라도 뒤에 <살인사건>이라는 제목이 붙혀있다. '살인'이라는 단어는 공포와 엽기 그리고 웬지모르는 흥분감이 든다. 이런 이유로 새로운 책들중에 가장 먼저 고르게 되었는데, 책 제목을 보니 대충은 짐작은 되었다. '살인사건'이니 추리소설 이겠지. 더욱더 나간다면 엽기라는게 붙거나 판타지 정도?

소설 처음 908호 주응달 노인이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일로 임 형사라는 형사가 용의자를 찾고 탐문검사를 한다. 이 대목을 보았을때 나는 항상 추리소설에서 항상 준비하는 마음자세 ㅡ 범인은 누굴까? 증거에 촉각이 곤두선다. 얘기는 약간 빗나간듯 원형과 차연의 만남이 나온다. (사실 원형이 남자이름 같고 차연이 여자이름 같았지만 소설에는 서로 반대여서 약간 헷갈리기도 햇다.) 그래서 엽기추리를 바탕으로한 멜로소설이라는것을 생각하였지만, 곧 레플리컨트라는 소제가 나오면서 공상과학소설처럼 느껴진다. 솔직히 작가에게 농락당한 기분이 들었다. 사실 이 소설은 제목과 처음부분을 읽었다고 소설전체가 파악되는 소설은 아니다. 여러 장르가 섞여있었는데 신선하고 새로워서 읽는이로써는 재미있었다. 특히 엽기추리멜로를 추측한 나는 공상과학소설로 넘어가는 소설의 분위기가 반전처럼 느껴지고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다.

내가 다니는 학원은 3층에 있다. 그 건물 1층에는 전당포가 있다. 이 소설을 읽은후 학원에 가는데 전당포 주인이 가게문을 닫으며 쓰레기를 문밖에 내놓으러 밖에 나왔는데, 순간 섬뜩해짐을 느꼈다. 분명히 그는 나를 째려보지 않았는데, 이상한 눈길을 받은것 같은 느낌이 들고 마치 소설처럼 학원아래 전당포주인이 고문으로 세상에 이름을 떨친 악당이고 나는 그를 죽여야하는 소설속에 차연같은 기분이 들었다. 결국 나는 소설에 빨려들어간 기분이었다. 혹시 내가 인조인간이 아닐까? 세상사람 모두 인조인간이 아닐까? 다른사람이 날 조정하는것은 아닐까? 정말 황당하고 유쾌한 상상이다.

제목인 이래봐도 상당히 교훈적이고 사회문화 비판적인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온갖 잔인한 살인이 난무하는 이 살벌하고 끔찍한 세상, 그리고 80년대의 독재권력을 비판하고 있다. 나는 왜하필 '전당포'일까 생각해보았는데 아마 '전당포'는 자본주의의 산물일것이다. 작가는 자본주의 까지 비판하고 있다. <영광전당포 살인사건>은 정말 재미있고, 교훈적이고, 철학적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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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균, 최후의 19일 1
김탁환 지음 / 푸른숲 / 199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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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길동 - 초등학생 또는 유치원생들도 모두 아는 인물이고, 조금 더 안다면 홍길동을 만든사람은 허균이란것. 홍길동은 새로운 세상을 꿈꾼다. 신분의 차별없이 모두 공평하게 사는 세상. 이것이 바로 소설속에 율도국을 탄생시켰다. 그럼 작가 혀균이 꿈꾼 율도국은 무엇이었을까?

<허균, 최후의 19>은 <불멸>을 읽은 후 작가에게 관심이 생겨서 읽게되었다. 작가의 조선중기 3부작은(<불멸>, <허균,최후의 19일>, <압록강>) 마치 제목만 다를뿐 하나의 소설처럼 느껴진다. <불멸>에서 이미 허균을 등장시켜 다음 작품을 예고했는데, <허균, 최후의 19일>에서는 다음작품 <압록강>의 주인공 강홍립과 임경업을 투입시켜 다음작품의 호기심 낳게한다. 그럼 본론으로 돌아와 <불멸>에서 이미 허균은 나왔다. 그가 꿈꾸는 진정한 세상, 그리고 그의 고뇌 등. 심지어(소설이지만) 이순신을 찾아가 반역의 재목인지 알아보기도 한다.

반역 - 반역이라는 말은 성공한자의 역사에서 기술된 말이다. 아마 허균이 거사에 성공했으면 혁명이었을것이다.(태조 이성계를 보고 반역이라고 하지않는다. 역성혁명이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허균의 거사에 혁명이라는 이름을 붙혀주고 싶다. 허균은 왜 혁명을 꿈꾸었을까? 천민도 아니고 중인도 아닌 양반이 왜 새로운 세상을 꿈꾸었을까? 아마 임진왜란의 영향이었을 것이다. 고통받는 백성들을 위해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것...

작가는 허균전체의 일생을 보지도 않았고, 그의 혁명 전체를 보지도 않았다. 그가 죽기전 19일만 관찰하였다. 이런점이 아마 소설의 긴장감과 흥미로움을 증폭시켜 작가의 보는눈을 즐겁게 해주었다. 작가의 아름다운 문체와 3인칭에서 1인칭으로 넘나드는 서술방식은 독자를 압도에 허균의 세상으로 빨려들어가게 하는 힘이 있다. 이런점이 아마 작가 김탁환의 매력일것이다.

그렇지만 소설은 소설일 뿐일것이다. 소설에는 이미 픽션이 많이 가미되었다. 그렇다고 다 허구는 아니지만. 하지만 픽션이던 논픽션이던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똑같다. 허균이 꿈꾸는 진정한 세상(약간은 허황하더라도), 그리고 지식인의 사유의 모습. 아마 작가가 허균의 혁명이 성공한것으로 가정해서 소설을 이끌어 나간다면 작가의 말대로 만화나 무협지가 되었을것이다. 단지 역사에 대한 객기에 지나지 않는 역사소설이 우리에게 어떤 도움을 줄까? 물론 극도의 재미를 주겠지만...'역사는 진보라는 거름을 흡수하여 발전하는 생물적 존재이다.' 라는 말이 있다. 우리에게 허균은 우리가 발전할수 있는 거름이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성공한 혁명보다 실패한 혁명이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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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어
김주영 지음 / 문이당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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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체 하나하나에 아름다움과 외로움이 묻어나온다. 김주영님의 문체의 매력일것이다. 굳이 줄거리를 듣지 않아도 문체를 보면 외로움을 느낄수 있다. 상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문체는 정말 압권이다. 1인칭 주인공 시점이래서 그런지, 작가 자신이 겪었던 일인것 처럼 느껴저 온다.

아버지가 바람펴서 도망가고 어미니와 자식이 단둘이 사는 얘기는 흔하다. 그리고 거기서 거기인 뻔한 얘기이고 눈물짜내기 얘기일것이다. 아마도 심한 반전의 비극을 삽입시켜서 독자의 눈은 끌수 있겠지만...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내가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아마 겨울과 웬지 잘 어울릴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 이다.(서평을 쓸때 '웬지'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는데 책을 읽고 딱 느껴오는 느낌을 뭐라고 표현할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내가 가을도 아닌 겨울을 타는것도 아니지만, 웬지 따듯할것 같았다. 이야기꾼 성석제의 입담소설이나, 이문열선생님의 스케일 큰 대하소설이 아닌 따뜻함을 느껴보고 싶었다. 작고 뻔한 내용이지만 웬지 따뜻한 내용... 이런 기대를 홍어는 저버리지 않았다.

책을 읽은 장소가 마침 강원도 산골이었다. 아버지께서 군인이셔서 강원도에서 근무하고 계셨는데, 마침 방학이라 그곳으로 가게 되었다. 물론 홍어도 데리고 갔다. 공부때문에 2~3일 정도 갔다 올려고 했는데, 눈이 많이 내려 도로가 위험했기 때문에 꼼짝없이 산골에 갖히는 꼴이 되었다. 그래도 홍어가 있었기 때문에 즐거웟던것 같다. 때마침 책을 한권 가져가서 아껴보느라고 감질이 났을 정도였다. 눈때문에 집에도 못가는데 왜그리도 눈이 아름답던지... 아마 홍어의 영향 일것이다. 펄펄 함박눈이 내리는 산을 바라보며 홍어를 읽는 기쁨이란 형언할수 없는 감동이었다. 마치 소설중에 '나'가 아버지를 기다리듯이 '나'가 내가 되어 버린 느낌이 들기도 했다. 겨울에 딱 어울리는 따뜻하고 아름다운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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