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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소울 아프리카
조세프 케셀 지음, 유정애 옮김 / 서교출판사 / 2013년 4월
평점 :
판매중지
침대에 기대어 책을 읽고 있었지만, 아프리카를 여행하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아니, 어쩌면 여행을 가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사파리 차를 타고 멀찍이 동물들을 구경하는 것 밖에 없으니, 이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간접 경험이 더 가치 있는 측면도 있으려니 생각했다. 내 정신을 아프리카로, 아니 사자 갈기 바로 옆으로 이동시켜 주었으니 말이다.
가장 인상깊었던 부분은, 마사이족이 마니에타라는 집을 짓는 부분이었다. 한 곳에 정착하지 않는 마사이족들은 유일한 재산인 가축과 함께 이동하는데, 잠시 정착할 곳이 정해지면, 울타리에 가축들을 하룻밤동안 지내게 한다. 그러면, 다음날 가축들이 그 울타리 안에 분뇨를 남긴다. 그사이 나뭇가지로 집의 틀을 만들어 놓고, 분뇨 반죽이 완성되면 모든 부족원들이 합세해서(부족장까지) 분뇨 반죽을 틀에 바른다.(엄청난 냄새는 상상도 하기 싫지만) 아프리카의 뜨거운 햇빛이 이 집을 반나절 만에 단단하게 말려주면, 냄새도 나지 않고 튼튼한 거처가 된다. 훗날, 이동할 때가 되면 이 집을 가볍게 무너뜨리면, 자연스럽게 이 집은 땅을 살리는 질 좋은 비료로 변하니. 이 얼마나, 자연스럽고 똑똑한 삶의 방식이란 말인가.(우월한 문화라는 것이 존재하나보다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한편, 이 소설의 주요 테마는 스포일러랄 것도 없이, 열 살자리 소녀 파트리샤와 사자 킹 사이의 특별한 우정이다.
하지만, 나는 이 우정이라는 단어에 큰 이질감을 느꼈다. 갓 태어난 어린 사자를 먹이고 재우고 함께 자라면서, 소녀는 사자와 특별한 친밀감을 공유하게 되었다. 소녀와 사자는 가족 또는 친구 같은 사이가 되었는데, 소녀가 킹과 함께 있을 때 하는 행동을 보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사자를 개인용 로봇 대하듯 사자의 모든 행동을 소녀가 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집에 있는 고양이도 주인이 ‘앞발’하면, 앞발을 내밀기는커녕 ‘훗 제정신이 아니군’하는 표정을 지으며 유유히 주인 옆을 지나가기 마련이며, 만만한 강아지조차도 자기 배고프고 피곤할 때는 ‘앞발’이든 ‘뒷발’이든 도무지 들어주지 않을 때가 많건만, 이 애완사자는 소녀의 말에 절대적으로 복종하는 애완로봇처럼 행동하니 말이다. 이런 관계를 우정이라 부를 수 있단 말인가? 이상한 위화감이 들어 계속 마음에 걸렸다. 뭐가 대자연의 우정과 사랑의 대서사시란 말인가(이 소설의 표지에 쓰여있는 소개글. 어차피 낚시 이건만 왜 하를 내느냐..만) 왜냐하면, 대자연이라고 하기에 이 둘의 관계가 자연스럽지 않게 느껴졌기 때문이랄까. 아프리카에 백인 가족이 국립공원을 소유(관리)하여 주변의 모든 흑인들이 이 들을 우러러보는 상황. 이것 역시 내가 상상하고 싶지 않은 부자연스러움이다.(하지만 이게 아프리카의 현실이라는 측면에서는 자연스러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아프리카로의 여행은 여러 가지 생각의 숙제들을 남겼다. 이 책을 읽고, 저녁 산책에서 애견과 산책을 하는 우리 동네의 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또 생각해 보는 것이다. 인간과 동물의 우정이란 가능한 것일까? 그것을 우정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동등한 관계가 아님에도, 그것을 우정이라 부를 수 있을까? 가족처럼 느끼는 애정이라면 오히려 납득이 될 것 같지만 말이다. 우정이든 애정이든 뭐가 다른가라고 할 수도 있겠지마는, 이 책의 소녀와 사자의 모습을 보면 자꾸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인간과 동물의 관계와 우정에 대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