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에의 심야상담소
이시모치 아사미 지음, 홍미화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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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로 똑똑한 꽃미남 나가에, 술에 해박한 식품회사의 유능한 여사원 구마이, 음식도 술도 잘 모르지만 잘 마시고 잘 먹는 여자 아쓰미.

대학시절부터 술친구였던 세 사람은 지인을 한 사람씩 초대하여 맛있는 술과 음식을 먹으며, 지인의 이야기 속에 숨어있는 미스터리들을 해결해 나가는데...

 

아무도 죽지 않는 소소한 연애 상담에 불과한 일상적인 사연들이지만, 맛있는 음식이 있는 가까운 친구들과의 심야의 마음편한 술자리에 내가 동석하고 있다는 기분에 어깨가 느슨해지고 기분이 좋아지고, 입이 심심해진다.

 

당신에게도 이런 술친구가 있는지. 말 그대로 모여서 술과 음식만 함께하는 술친구. 밥만 먹어서도 안되고 차를 마신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문자 그대로의 술친구 말이다.

 

나에게는 술친구보다 친밀도가 더 끈끈한 술가족이 있다.

 

몸무게 세 자리의 미식가이자 대식가인 노총각 D, 술 종류도 미식도 모르지만 누구보다 애주가인 보다 숙성된 노총각 K, 한 잔만 먹어도 얼굴이 빨개지지만 그 자세 끝까지 가는 마음 착한 유부남 W, 까다로운 기호를 가지고 있는 미식가이자 애주가이지만 소화력이 딸려 늘 안타까워하며 젓가락질을 하는 유일한 여성회원인 나.

 

이들은 대학교 선후배 사이이자 국어국문학과 현대문학부의 부원이었다.

 

학회모임은 안 나오면서 술자리에만 늘 모습을 드러내 학회내의 지위를 곤고히 하며 술값을 자주 내주었던 D선배(98학번), 학회 때마다 화제와 상관없는 사랑이야기만 하다가 모두의 빈축을 사고는 술자리에서 자주 쓰러져 잠들었던 학회장 K선배(97학번), 문학과 야구를 사랑하지만 대학 때에는 야구를 더 사랑하여 현대문학에는 큰 관심이 없었지만 여자 친구 따라 학회에 와서 남자 선배들의 사랑을 듬뿍 받아오고 있는 학번 유일의 남자회원 W(01학번), 문학과 술을 사랑해 주량의 끝을 모르는 음주 전성기를 달리던 대학시절의 주당 히로인이었던 나(01학번).

 

이들이 대학을 졸업하고는 사회인이 되었다.

 

업계 최고의 소방자격관련 학원 원장님이 된 D, 학원에서 아이들에게 국어를 가르치는 K, 신문기자가 된 한편 나와 결혼한 착한 W, 십년 째 학교를 그만두고 싶다는 이야기를 술자리에서 하고 있는 소망대로 곧 학교를 그만둘 예정인 중학교 국어 선생님이 된 나.

 

이 넷은 한 달에 한 번 씩 모여, 맛있는 음식과 함께 술을 마신다.

 

몸무게 세 자리인 미식가이자 대식가인 D선배는 식성도 까다롭지만 사실은 고집쟁이인데다 자기 본위가 심한 사람이다.(그렇지만 계산을 주로 담당하고 있다.) 그에 반해 K선배는 눈이 안 보일정도로 늘 웃는 상에 허허실실하는 양반인데 같이 있으면 편하고 재미있는 사람이다. 이 모임에서 완충제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W는 선량하고 배려심 많은 성품으로 D, K 그리고 나 사이를 부드럽게 하고 있다. 나는 무엇을 하냐고? 완충제를 소유하고 있는 처지인데다 실질적으로 이 모임에서는 보이지 않는 손과 같은 축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사실 고집쟁이인 D선배는 술자리에서도 K선배나 우리가 맞춰 줘야하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그에게는 강력한 까방권(까임방지권)이 있다는 사실. 그는 고집쟁이이지만 인간관계에 있어서는 정이 많고 의리가 있으며 그것을 부지런하게 실천하고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과거 내가 대학 졸업 무렵부터 몇 년 정신적, 상황적으로 큰 위기를 겪을 때, D선배 덕분에 그 시기를 견뎌 낼 수 있었다. 한편, K선배의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의식불명 상태가 지속되는 시련을 겪고 사람들과 만나지도 못하고 두문불출하며 경제적, 정신적으로 우울한 시기를 보내고 있을 때에 세상으로 K선배를 불러 지금처럼 밝게 지낼 수 있게 지속적으로 도와주고 함께해준 사람도 D이다. 이런 까닭에 우리는 D를 미워할 수가 없다는 말씀.

 

이런 네 사람이 모여서 무슨 이야기를 하냐구?

나가에처럼 소소한 일상의 미스터리를 풀어내는 흥미로운 상황은 역시 연출되지 않는다.

 

다만 진실은 이것 뿐.

지치고 마음 복잡할 때, 뭐 특별할 거 있나. 간단한 안주에 술 한잔하면 딱이지.”

그리고, 함께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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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의 위스키 성지여행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이윤정 옮김, 무라카미 요오코 사진 / 문학사상사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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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스키의 성지를 찾아 스코틀랜드의 아일레이 섬과, 아일랜드를 방문한 하루키 부부. 여행 에세이집이라고 하기에 글은 너무 짧고 다 읽고 나도 아쉬움이 남는다. 하루키의 아내 요오코의 사진을 다한다 해도 몇 장 되지 않는 이 작은 여행기는 낯선 글씨체 마저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지만, 이 짧은 글과 사진 속에. 위스키의 향기가 담뿍 담겨있다. 
  
하루키의 소망대로 이 글을 읽다 보면 낯이든 밤이든 싱글몰트 위스키에 물을 약간 타서 마시고 싶어진다. (마침 집에 몇 잔 남아있던 글렌피딕 12년산 싱글몰트 위스키가 이 자리에서 희생됨)

증류소에서 만난 장인들의 싱글몰트 위스키에 대한 순수한 열망과 자긍심. 바닷내음 가득한 아일레이 섬의 풍경과 고색창연한 펍의 분위기 묘사에서도 그 향기를 느낄 수가 있지만. 이 책의 묘미는 서문에 있다. 

  "만약 우리의 언어가 위스키라고 한다면, 이처럼 고생할 일은 없었을 것이다. 나는 잠자코 술잔을 내밀고 당신은 그걸 받아서 조용히 목 안으로 흘려 넣기만 하면 된다. 너무도 심플하고, 너무도 친밀하고, 너무도 정확하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우리의 언어는 그저 언어일 뿐이고, 우리는 언어 이상도 언어 이하도 아닌 세상에 살고 있다. 우리는 세상의 온갖 일들을 술에 취하지 않은 맨 정신의 다른 무엇인가로 바꾸어 놓고 이야기하고, 그 한정된 틀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예외적으로 아주 드물게 주어지는 행복한 순간에 우리의 언어는 진짜로 위스키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우리는 - 적어도 나는- 늘 그러한 순간을 꿈꾸며 살아간다. 만약 우리의 언어가 위스키라면, 하고."

만일 우리의 언어가 와인이라면 더욱 오해가 많아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의 언어가 위스키라면, 잔을 들어 향을 맡고 바로 목으로 넘기고 남는 향을 음미하기만 하면 되는 그 심플한 행동만으로 우리가 충분히 소통할 수 있다면. 마법약같은 그 호박색 액체를 목으로 넘기는 것으로 모든 것이 충분하다면...

"만약 우리의 언어가 위스키라고 한다면, 이처럼 고생할 일은 없었을 것이다. 나는 잠자코 술잔을 내밀고 당신은 그걸 받아서 조용히 목 안으로 흘려 넣기만 하면 된다. 너무도 심플하고, 너무도 친밀하고, 너무도 정확하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우리의 언어는 그저 언어일 뿐이고, 우리는 언어 이상도 언어 이하도 아닌 세상에 살고 있다. 우리는 세상의 온갖 일들을 술에 취하지 않은 맨 정신의 다른 무엇인가로 바꾸어 놓고 이야기하고, 그 한정된 틀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예외적으로 아주 드물게 주어지는 행복한 순간에 우리의 언어는 진짜로 위스키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우리는 - 적어도 나는- 늘 그러한 순간을 꿈꾸며 살아간다. 만약 우리의 언어가 위스키라면,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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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소울 아프리카
조세프 케셀 지음, 유정애 옮김 / 서교출판사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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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에 기대어 책을 읽고 있었지만, 아프리카를 여행하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아니, 어쩌면 여행을 가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사파리 차를 타고 멀찍이 동물들을 구경하는 것 밖에 없으니, 이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간접 경험이 더 가치 있는 측면도 있으려니 생각했다. 내 정신을 아프리카로, 아니 사자 갈기 바로 옆으로 이동시켜 주었으니 말이다.

 

가장 인상깊었던 부분은, 마사이족이 마니에타라는 집을 짓는 부분이었다. 한 곳에 정착하지 않는 마사이족들은 유일한 재산인 가축과 함께 이동하는데, 잠시 정착할 곳이 정해지면, 울타리에 가축들을 하룻밤동안 지내게 한다. 그러면, 다음날 가축들이 그 울타리 안에 분뇨를 남긴다. 그사이 나뭇가지로 집의 틀을 만들어 놓고, 분뇨 반죽이 완성되면 모든 부족원들이 합세해서(부족장까지) 분뇨 반죽을 틀에 바른다.(엄청난 냄새는 상상도 하기 싫지만) 아프리카의 뜨거운 햇빛이 이 집을 반나절 만에 단단하게 말려주면, 냄새도 나지 않고 튼튼한 거처가 된다. 훗날, 이동할 때가 되면 이 집을 가볍게 무너뜨리면, 자연스럽게 이 집은 땅을 살리는 질 좋은 비료로 변하니. 이 얼마나, 자연스럽고 똑똑한 삶의 방식이란 말인가.(우월한 문화라는 것이 존재하나보다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한편, 이 소설의 주요 테마는 스포일러랄 것도 없이, 열 살자리 소녀 파트리샤와 사자 킹 사이의 특별한 우정이다.

 

하지만, 나는 이 우정이라는 단어에 큰 이질감을 느꼈다. 갓 태어난 어린 사자를 먹이고 재우고 함께 자라면서, 소녀는 사자와 특별한 친밀감을 공유하게 되었다. 소녀와 사자는 가족 또는 친구 같은 사이가 되었는데, 소녀가 킹과 함께 있을 때 하는 행동을 보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사자를 개인용 로봇 대하듯 사자의 모든 행동을 소녀가 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집에 있는 고양이도 주인이 앞발하면, 앞발을 내밀기는커녕 훗 제정신이 아니군하는 표정을 지으며 유유히 주인 옆을 지나가기 마련이며, 만만한 강아지조차도 자기 배고프고 피곤할 때는 앞발이든 뒷발이든 도무지 들어주지 않을 때가 많건만, 이 애완사자는 소녀의 말에 절대적으로 복종하는 애완로봇처럼 행동하니 말이다. 이런 관계를 우정이라 부를 수 있단 말인가? 이상한 위화감이 들어 계속 마음에 걸렸다. 뭐가 대자연의 우정과 사랑의 대서사시란 말인가(이 소설의 표지에 쓰여있는 소개글. 어차피 낚시 이건만 왜 하를 내느냐..) 왜냐하면, 대자연이라고 하기에 이 둘의 관계가 자연스럽지 않게 느껴졌기 때문이랄까. 아프리카에 백인 가족이 국립공원을 소유(관리)하여 주변의 모든 흑인들이 이 들을 우러러보는 상황. 이것 역시 내가 상상하고 싶지 않은 부자연스러움이다.(하지만 이게 아프리카의 현실이라는 측면에서는 자연스러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아프리카로의 여행은 여러 가지 생각의 숙제들을 남겼다. 이 책을 읽고, 저녁 산책에서 애견과 산책을 하는 우리 동네의 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또 생각해 보는 것이다. 인간과 동물의 우정이란 가능한 것일까? 그것을 우정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동등한 관계가 아님에도, 그것을 우정이라 부를 수 있을까? 가족처럼 느끼는 애정이라면 오히려 납득이 될 것 같지만 말이다. 우정이든 애정이든 뭐가 다른가라고 할 수도 있겠지마는, 이 책의 소녀와 사자의 모습을 보면 자꾸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인간과 동물의 관계와 우정에 대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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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빨강 1 민음사 모던 클래식 1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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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고은 시인을 뒤로 한 채 노벨상을 수상한 오르한 파묵의 이 작품에 대해 어느 기자는 말했다. ‘눈에 쌍심지를 켜고 읽어도 특별한 흠을 꼬집을 수 없는 수작이다.’ 이 말에 토를 달긴 어려울 거라 생각했지만, 무식한 자는 용감한 법이어서, 나의 경우에는 이 말에도 토를 달고, 이 작품에 대해 흠도 잡을 수 있었다.

 

이전부터 터키 문화의 신비로운 매력에 관심을 두고 있었지만, ‘살모사의 눈부심(쥴퓨 리반엘리, 오래전에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지만 꼭 한 번 다시 구해서 읽어보고 싶은 강렬한 작품이다.)’ 이후 오랜만에 손에 잡은 작품으로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 거물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세밀화와 터키 역사에 대한 배경지식 부족으로 인한 난해함이 크게 장애가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소설은 세밀화라는 옛 전통, 문화유산에 대한 애정 어린 시각을 추리, 로맨스, 역사, 미학적 영역에 걸쳐 창의적이고 수준 있는 형식을 활용하여 화려하게 그려낸 훌륭한 세밀화 한 폭(한 권 아니, 두 권)이 아닐까 싶다.

 

죽은 자, 주인공, 주변 인물들, 빨강에 이르기까지 장마다 화자를 바꾸어 한 폭의 그림을 다양한 시각으로 보여주는 이 수법은 문학적으로 매우 가치 있고 신선한 느낌을 주었다. 더불어, 신의 시각에서 보이는 대로 즉, 원근법을 사용하지 않고 평면적으로 그림을 그리는 전통을 고수해 온 터키의 옛 세밀화가들. 개인의 개성과 주관성을 존중하는 요즘 세상에서 한 사람의 예술가로서 그 자신만의 스타일마저 포기했던 터키인들의 신앙심, 순수함, 겸허함 그리고 장인정신 역시 참 인상적이었다.

 

 

다만, 아무리 그래도 조금 더 쉽고 조금 더 재미있게 쓸 순 없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것이 바로 내가 찾아낸 흠이다. . 읽으면 읽을수록 살인자가 누구인지 점점 궁금해지는 게 아니라 점점 누구든 상관없으니 알려주고 마무리 지어주세요. 끝을 내주세요하고 작가에게 작은 목소리로 요청하고 싶어지니 말이다.

(한편, 나중에 똑똑해져서 다시 읽어 보고는 이런 서평을 올려야지하고 생각함. ‘마지막 장을 덮을 때 까지 가슴이 두근거리고 손에서 책을 놓을 수가 없었어요.’ 뭐 이런식으로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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