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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의 힘 - 예술가 24인의 일상과 취향
유경희 지음 / 마음산책 / 2015년 3월
평점 :
‘산드로와 레오나르도의 세 마리 개구리 깃발’이라는 술집에 가 본적이 있으신가요?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산드로 보티첼리가 함께 개업한 술집 말입니다. 시대를 너무 앞서간 인기 없는 웰빙 안주로 빚 독촉을 견디다 못해 일찍 문을 닫고 만 아쉬운 술집입니다만,
가볼 수만 있다면, 커다란 접시 위에 안초비 한 마리와 당근 네 쪽이 담겨있는 소박하다 못해 허망한 안주를 접대 받더라도 꼭 한 번 가보고 싶네요.
이 책에서 살펴 볼 수 있는 예술가들의 기괴한 행적과 기묘한 취미는 웃음이 나기도 하지만, 비정상과 반인륜의 아슬아슬한 줄다리기를 보는 것 같기도 하다.
위장과 변장을 일삼으며 모델이 벗어놓은 스타킹 냄새를 좋아했던 로트레크, 매일 아침 30년 동안 쇤부르크 궁전 주변을 산책했지만 오스트리아 밖으로 떠나기를 극도로 싫어했던 여행혐오자 클림트, 파산과 고독 속에서도 끊임없이 골동품, 그림, 소품 등을 수집했던 렘브란트, 20년에 걸쳐 미지의 세계로 발길을 옮기며 어린 여자아이와 동거하며 방탕한 삶을 살다 아버지와 같이 길 위에서의 고독한 죽음을 맞이한 폴 고갱...
빈센트 반 고흐, 조지아 오키프, 프리다 칼로, 요하네스 베르메르, 에곤 실레, 피에르 보나르, 마르셀 뒤샹, 파블로 피카소, 에두아르 마네, 앙리 루소 ....
이들의 유별난 일상과 취향을 바라보면서, 나의 일상 생활을 찬찬히 응시해본다.
어른들 말 귀담아 들으면서 사회에 적응해보려고 십년을 죽은 듯이 열심히 살아봤더니 남은 것은 직장생활 스트레스, 전세 빚, 부모님 노후 걱정뿐이다. 허망하다.
전에는 손톱이 나갈 정도로 맞기도 하고 참으로 격렬하게 혼이 많이 났었는데, 요즘에는 부모님이 내게 야단을 안치신다. 욕도 안하신다. 내가 욕먹을 짓을 안 하는 것이다. 쓸쓸하고 속상하고 한심한 일이다. 부모님 눈에 멀쩡한 아이가 되어버리다니 말이다. 기성세대 눈에 멀쩡하게 눈에 드는 아이라니 정말이지 인생을 헛되이 산 것이 아닌가?
헛되이 살았더라도 내가 만족하고 행복하면 괜찮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나는 행복한가?’ 하고 자문해 본다. 대답은 ‘그렇지 않다.’이다. 부모님이 원하시는 것은 그분들의 평화와 안녕에 도움을 주는 내 행적이지 나의 행복은 아니니까 말이다. 그냥 철없이 살 걸 그랬다. 철들 수 없는 애가 철들어 보려했다가 병만 얻었다.
소박하게라도 밥벌이하고, 남에게 피해만 안주면 된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부모님이 바라보는 것을 같이 바라볼 색깔을 가질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물론 같이 바라볼 수 있다면. 모두가 행복할 것이다. 말할 것도 없이 정말 훌륭한 사람들이다.)
이제사 늦었지만 다시 부모님의 쌍욕을 구걸해보려고 한다. 이 책의 예술가들이 훌륭한 멘토가 되어 주었기에, 아마 보란 듯이 다시 욕먹고 얻어맞을 수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