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내 생에 꼭 하루뿐일 특별한 날
전경린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1월
평점 :
판매중지


  남녀간의 불륜을 다룬 흔해빠진 이야기로 이렇게 깊은 문학적 성취를 얻은 작품이 어디 또 있을까. 당황스러웠다. 이야기의 흐름은 막장 드라마 보다도 더 창의성이 없는 방향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대한민국 대표 문학상이라 할 수 있는 이상문학상까지 수상한 작가인 전경린인데. 어쩌면 이렇게 상투적이다 못해 일차원적인 방향으로 예측 가능한 전개를 이어가는 건가. 하는 생각으로 고개를 저으며 책장을 넘겼다.

 

하지만, 그럼에도 밤이 지나 새벽의 희붐한 어스름의 순간까지 책장은 끝없이 넘어갔고, 나는 결국 사랑이라는 이름의 인간의 내밀하고 깊은 욕망에, 인간이라는 존재의 깊은 심연에, 그것들의 무상한 환멸 속으로 깊숙이 빠져들게 되었다.

 

교과서적인 만남과 사랑, 결혼, 출산과 해로. 작가는 이러한 모범적인 사랑 말고 야생적인 섬광이 가득한 비합리적인 사랑에 더욱 관심이 갔다고 한다. 제도 바깥으로 무한히 열려있는 금기에 말이다.

 

이 날것의 사랑에 대한 탐구에서 작가는 결국 인간이라는 존재의 이성을 넘어, 본능과 저 밑의 깊은 것에 마주하게 되었고, 이 여정을 함께하다보면 우리는 주인공 미흔을 통해 해구의 밑바닥을 공유할 수 있게 된다. 블랙홀과 같이 남은 의지마저 송두리째 삼키는, 인간 저 심연의 본능에 맞닿아있는 사랑이라는 이름의 광기. 이 글 속의 미흔과 규의 문제만이 아니라. 누구나 내면 아주 깊숙한 곳에 간직되어 있는 것이기에. 섬뜩했다. 무섭기도했다.

 

결국 우리 대부분은 무의식이라는 거대한 욕구의 바다 위에 떠있는 의식에, 이성에 기대어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안정된 삶 속에서. 조금만 궤도를 이탈하면, 내 의식 밑바닥에서 다른 내가 튀어나와 나와 타자를 잠식할지도 모른다. 달리는 열차의 레일포인트가 바뀌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언제나 이 열차의 목적지는 환멸이다. 무상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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