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비트겐슈타인, 그 세기말의 풍경 - 합스부르크 빈의 마지막 날들과 비트겐슈타인의 탄생
앨런 재닉.스티븐 툴민 지음, 석기용 옮김 / 이제이북스 / 2005년 2월
절판


제아무리 확실한 진리라 할지라도 단지 어느 정도만 참일 뿐이다. 진짜 진리 real truth 라는 것은 형이상학적인 개념이다. 인간은 신이라는 개념과 마찬가지로 진리 truth 라는 개념도 손에 넣었다. 아무런 경험도 하지 않은 채로 말이다. 이런 의미에서라면 누구나 확실히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신이 곧 진리이다.-216쪽

우리는 과학을 통해 사실을 알고 싶어 한다. 삶의 문제에서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삶에서 중요한 것은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능력이다. 그것은 올바른 감정의 문제이다. -322쪽

논리철학논고의 저자가 품은 우선적인 관심은 삶의 계도의 영역으로 사변의 영역이 침범해 오는 것을 막아내자는 것이었다. 그는 이성의 침입으로부터 환상을 보호하고자 하였고, 자발적인 감정이 합리화에 의해 질식되는 것을 막으려 했다. 비트겐슈타인은 이성이 오직 선한 사람의 것일 때만 선을 위한 도구가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선한 사람의 선함은 그의 합리성이 작용한 결과가 아니라 그가 환상의 삶에 참여함으로서 비롯된 것이다. 선한 사람에게, 윤리는 삶의 방식이지 명제들의 체계가 아니다. 엥겔만이 얘기하는 것처럼, 윤리적인 명제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윤리적인 행위들만이 있을 뿐이다. 따라서 논리철학논고는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형태의 합리적인 윤리 체계에 대한, 다시 말해 인간 행위의 근거를 이성에 두려는 모든 윤리 이론에 대한 공격이었다. 물론 논리철학논고는 도덕성이 이성에 반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지는 않았다. 단지 도덕성의 토대가 다른 곳에 있다고 주장했을 뿐이다. 그러므로 칸트와 대조적으로, 쇼펜하우어와 비트겐슈타인 두 사람은 도덕성의 기반을 '정당한 이성' 이 아니라 '올바른 감정' 에서 찾았다. -325쪽

왜 많은 사람들은 글을 쓰는가? 글을 쓰지 않을 만한 인품을 갖추지 않았기 때문이다.-3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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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6-07-29 15: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삶의 문제에서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삶에서 중요한 것은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능력이다. 그것은 올바른 감정의 문제이다.

표지도 멋지군요. 일단 보관함에...

로드무비 2006-07-29 15: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이라고 할 것도 없지만...)을 쓰지 않을 만한 인품을
갖추었으면 좋았을 텐데요.;;

중퇴전문 2006-07-30 1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 쓰는게 얼마나 치사한지도 생각해가며 글을 쓰라는, 일종의 모순적 교훈이겠죠. 그런 문제의식의 필요성이 글뿐이겠습니까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