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에도 과학이 있는가
박성래 지음 / 교보문고(교재) / 1998년 10월
품절


조사에 의하면 중국에 번역된 서양 책은 1773년까지 모두 352종이고, 이 가운데 천문학 종류가 71종, 수학 종류가 20종, 그리고 그 밖의 과학기술서가 91종이었다고 한다. 이렇게 많은 서양 과학기술서가 번역되었건만, 그 내용에 대해 우수성을 전폭적으로 인정하려는 중국 학자는 거의 없었다. (중략) 이와 같은 '서양 과학의 중국원류설' 은 청대의 중국인들이 서양 과학을 보는 시각을 잘 반영한다. 이런 태도가 지속되었기 때문에 아편전쟁 이전의 모든 서양 과학기술 서적 번역은 '서양 사람이 입으로 번역하면 중국 사람이 붓으로 받아 쓰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고 '중국과학문헌번역사고' 라는 책은 설명하고 있다. (중략) 1839년 시작된 아편전쟁이 중국의 분명한 패배로 끝나자 중국 지식인들은 경악하기 시작했고, 이제는 그냥 서양 문명을 얕잡아 보기만 할 수 없다는 인식을 분명히 하게 되었다. -200쪽

1716년에 제8대 장군 도쿠가와 요시무네가 스스로 천문역산에 흥미를 보이고, 막부의 관리들에게 화란말 배울 것을 명하자 화란 학문은 그 위세를 크게 떨치기 시작했다. (중략) 나가사키에 허락한 화란 상관을 통해 배워 들인 것이 18세기에 꽃을 피운 화란 학문, 즉 난학이다. 그리고 그 학문적 열매가 바로 1774년 스기타 겜바쿠 등 화란어를 배운 일본인이 번역한 화란 해부학 책 '해체신서' 였다. 화란에서 출간된 지 40년 뒤에 동양 사람에 의해 번역된 최초의 서양 과학서이다. 그 뒤를 이어 일본 난학자들은 다투어 서양 과학기술 책들을 번역, 번안해 냈다. 그들이 직접 연마한 외국어 실력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중략)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일본에는 1800년대 초에 이미 당시 서양에서 보급되기 시작한 물리학, 화학, 생물학 등 여러 분야의 과학지식과 일부 기술이 일본인 자신의 번역으로 소개되고 있었다.-201쪽

이등규개는 나고야 출신으로 일본 역사에서는 대표적 박물학자로 손꼽히고 있다. 1827년, 25살 때 이미 그는 시볼트를 직접 찾아가 그에게 교육을 받았다. 그는 시볼트에게서 얻은 스웨덴 학자가 쓴 일본 식물에 관한 책에 크게 감동을 받아, 그 후 일본의 식물을 연구하고 세계에 일본 식물을 소개하는 학자로 성장하게 된다. 또 하나의 제자는 고야장영이다. 1925년 시볼트의 제자가 되었던 그는 배운 것을 바탕으로 연구를 계속하여 1832년 '의원추요' 라는 책을 내었는데, 이는 일본 최초로 서양 근대 생리학을 소개한 책으로 남아 있다. 또 그는 이 외에도 탈레스에서 라이프니츠까지의 서양 자연철학을 소개한 책을 쓰거나 병서를 쓰기도 했다. -203쪽

요컨대 일본은 1800년대 중반에 즈음해서는 이미 서양 과학의 대부분을 일본의 것으로 소화해 두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가장 중요한 원인은 중국 사람들이 서양 과학을 그리 대단치 않게 여기고 서양말을 배울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일본에서는 18세기 중반에는 이미 많은 일본인들이 화란말을 익혀 화란 책을 일본어로 번역하기 시작했을 정도의 적극성을 보인 것 때문이었다. -204쪽

우리 나라에는 1883년까지 서양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중략) 1857년 최한기의 '지구전요' 에 처음으로 영어 알파벳이 겨우 나타날 뿐이었다. 물론 최한기가 영어를 알지 못 했고, 그런 상황은 1880년대 초까지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중략) 우리 나라에서는 1883년 여름 윤치호가 처음 영어를 배울 수 있었다. (중략)1882년 보빙사는 민영익을 단장으로 8명의 사절단과 3명의 통역으로 구성되었는데, 통역 3명은 각기 중국인, 일본인, 미국인이 한 사람씩이었다. 영어 구사가 가능했던 단 한 사람 윤치호는 방금 일본에서 귀국하여 미국공사관에 근무하고 있을 때였다.-204~205쪽

필자는 중국과 일본에서 1800년대 중반까지 나온 서양 과학서의 번역본 중 몇 가지를 소개했다. 그런데 그 많은 책이 나오는 동안 우리 나라에서는 단 한 권도 서양 과학서가 번역되어 나온 적이 없었다. 우리 나라에서 우리 나라 사람의 실력으로 서양 과학서를 처음 번역해 낸 것은 일제 시기도 아닌, 아마도 해방 후가 아닐까 생각된다.-20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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