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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영어 사전 - 개정판
안정효 지음 / 현암사 / 2006년 5월
평점 :
품절
어느 웹 게시판에서 토론 구경을 한 적 있는데, 미국에 살고 있다는 것이 주장의 유일한 근거인 어느 유저가 좀 수세에 몰렸다. 그러자 그 이가 난데없이 하는 말이.. 아프가니스탄이 아니라 미국에선 애프개니스탠이라고 부른단다, 이 촌스런 한국넘들아.
각설하고. 식민과 분단과 전쟁과 미군과 자기부정의 근대화와 압축 성장을 통과해온 한국인의 심리가 어떤 것인지를 상세하게도 보여주는 역작이다.
개인적으론 이렇게 권하고 싶다. 가령 한국어 사용자에겐 런닝머신이라 말하고, 영어 사용자에겐 트레드 밀이라고 하면 될 일이다. how many thank you i don't know,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콩글리쉬라면 저런게 콩글리쉬지 (콩글리쉬인들 뭐 어쨌는데? 라는 문제는 일단 패스), 런닝머신이라는 멀쩡한 한국어-조어를 콩글리쉬라고 우겨선 곤란하다. 모르겠다, 몇 세대가 지나서 이제 트레드 밀이 '달릴 수 있는 어떤 기계' 를 통칭하는 한국어권의 대세가 된다면 그땐 또 그렇게 쓰면 될 일이다.
또한 한국어 구사 중에 외국어 혹은 외래어가 나오면 당연히 한국어의 발음 시스템 안에서 말하는 것이 편할 뿐더러 정상적이기도 하다. 이중 혹은 다중 언어적 상황이라든지 (딕테 생각나네), 교포 1.5세라든지, 뭐 이런 조건 같으면 또 모를까. 방랑 야구인 최희섭을 히삽 초이로 부르지만, 그 발음을 이상하거나 부정확한 것이라 생각친 않는다. 영어 사용자들도 자신들의 언어 안에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PSV 시절의 위성 빠르크 라는 발음 역시 얼마나 유쾌한가. 위성 빠르크는 틀린 발음이니 한국어학당이라도 다녀야겠다는 강박 관념에 사로잡힌 네델란드인은 과연 몇이나 있었을까. 영국으로 넘어가니, 아예 찌 라고만 부른다는데.
컴플렉스는 긍정적인 동기가 되기도 하지만, 어떤 종류의 것은 인간을 불행하게 만든다. 미국판 장우동인 싸구려 페밀리 레스토랑에만 가면 반드시 셀카를 찍어 블로그에 올리는 것처럼. 영 단어만 나오면 긴장하며 정확히 발음하려 애쓰는 것처럼. 대학 도서관 책상마다 늘어져 있는 토익 수험서들처럼. 수술대에 올려지는 어린 입들처럼. 불필요한 고통을 스스로에게 가하며 살기엔, 인생은 한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