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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도난마 한국경제 - 장하준.정승일의 격정대화
장하준 외 지음, 이종태 엮음 / 부키 / 2005년 7월
평점 :
장하준의 책과 글은 그의 주장을 파악하는데 지장이 없을 정도로 이미 소개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대담집이 나온 것은/나와야 했던 것은 그간 한국에서의 소위 '박정희 논쟁' 이 주제를 일탈한 이전투구였음을 역으로 보여준다. 개인적으론 장하준, 정승일의 문제 의식에 공감하면서도 각론 모두에 동의한건 아니지만, 주장 자체를 오독한 비난들은 좀 곤란하다고 생각해 왔다. 상황을 총체적으로 조망해볼 의지와 능력이 되지 않는 자들이 오히려 목소리를 높이는 시대에, 저런 식으로까지 입장을 해명하고 논점을 제시하려는 성실성은 인정 받아도 될 듯 하다.
현재의 한국 사회에게 과거의 급속성장 모델이 던져주는 시사 중의 으뜸은, 사회적인 접근-사회적인 해결이란 큰 틀을 우리가 얼마만큼 지켜낼 수 있느냐의 문제일 것이다. 장하준이 지적하는대로 박정희 시대 경제 성장의 핵심 요인은 '민주와 자유를 희생한 효율' 이 아니라 (소위 박정희 옹호자와 반대자들의 일치된 오류) '자유주의의 무비판적인 수용을 경계하며 사회적 통제의 원칙을 고수한 태도' 일 것. '이미' 불평등한 경제 질서 하에서 상이한 조건에 놓여 있는 후발 산업화 사회가 이론적으로 선택할 수 있고 현실 사례로도 전범을 삼을 수 있는 것은 '시장과 통제의 혼합적 적용' 이 거의 유일하다. 오직 더 많은 (경제적) 자유가 더 많은 성취를 가능케 한다는 식의 자유주의/자유지상주의 입장에서의 반론은 역사적 경험들에선 거의 배반되게 마련이고, 미르달 상을 받았던 장하준의 논문이 그 주제를 꼼꼼하게 다루고 있다.
사회적 통제 라는 발상과 실천은 박정희 개인의 창작도 아니고 (당대의 흐름에 감화는 받았겠지만, 특히 박정희 본인이 2.26 사태를 인생의 전환점으로 토로한 것처럼), 6,70년대 남한의 전유물도 아니다. 굳이 동아시아 Nics를 공통적인 사례로 들지 않더라도, 멀리는 리스트 당시의 독일에서부터 제정 독일-유신 이후의 일본으로 이어지는 가운데 해방 전후의 한국에게 영향을 미쳐 왔고, 다른 한축으론 수정자본주의의 부분적인 계획과 사회주의권의 전면적인 계획의 영향도 있어 왔다. 관료제 옹호론 정도로 오해받는 경향이 있으나, 사실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관료제 자체에 대한 옹호가 아니다. 오히려 국가-관료제가 '사회화' 를 위한 그 당시의 유력한 도구였다면, 이젠 어떤 대안과 방식으로서 사회적 접근-사회적 해결이란 기본 정신을 지향해야 할 것인가 하는 것.
(다음 기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