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심은 사람
장 지오노 지음, 마이클 매커디 판화, 김경온 옮김 / 두레 / 2005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월요일 저녁, 왓슨이 홈즈의 사무실로 들어선다. 

 

왓슨 : 홈즈, 주말 잘 보냈나?  

 

홈즈 : 나야 뭐 늘 똑같네. 사건 조사로 바빴어. 자네는? 

 

왓슨 : 가족들과 유채꽃이 만발한 강변에 다녀왔다네.

 

홈즈 : 유채꽃이 아직 있더란 말이지?

 

왓슨 : 우리가 거의 마지막이었어. 강둑을 노랗게 껴안은 유채꽃이 정말 아름답더군.

 

홈즈 : 그렇다면... 자네 저기 내 서가에 있는 유리병 보이나? 가져가서 자네 아이들에게 주게. 홈즈 아저씨가 주는 작은 선물이라고 전하고.

 

왓슨 : 아, 유리병이 참 앙증맞군 그래. 홈즈, 이 안에 있는 건 무슨 씨앗인가? 좁쌀만 한데.

 

홈즈 : 마을 저수지 둑에 피었던 유채에서 받은 씨앗이네. 작년 6월쯤 이었을거야. 그 유리병 다섯 개에 들어 있는 씨앗이 몇 개쯤 될 것 같나?

 

왓슨 : 글쎄, 한 병에 적어도 백 개는 넘겠어.

 

홈즈 : 그게 말이야 유채 하나에서 나온 씨앗이야. 씨앗 하나를 심어 다시 받은 씨앗이 수백 개라는 거지.

 

왓슨 : 음, 근데 자네 무슨 말을 하고 싶은건가?

 

홈즈 : 하하, 왓슨. 사실 지난 주말에 사건 조사는 하지 않았네. 요즘 사건 의뢰가 통 없거든. 무료하게 앉아서 보낼 순 없어서... 심혈을 기울여 책을 좀 읽었네.

 

왓슨 : 그러니까 책 이야기를 하고 싶어 이렇게 뜸을 들인거구만. 그래, 무슨 책인가?

 

홈즈 : 장 지오노의 <나무를 심은 사람>이네.

 

왓슨 : <나무를 심은 사람>이라면 나도 몇 번이나 읽은 책이군. 자네도 처음 읽었을 리는 없을텐데.

 

홈즈 : 맞네. 아끼는 책이지. 여러번 봤고 말이야. 사건이 없었던 지난 주말, 다시 읽고 또 읽었네.


왓슨 : 그런 줄 알았으면 우리랑 같이 유채를 보러 갔으면 좋았을텐데. 그래 무슨 중요한 실마리라도 찾았나?

 

홈즈 : 왓슨, 오래된 미제 사건 하나를 해결했다네. 자네도 알다시피 내가 해결하지 못한 사건은 거의 없었잖나?

 

왓슨 : 그야 그렇지.

 

홈즈 : 자네도 여러번 읽었다고 했으니 <나무를 심은 사람>의 브리핑을 부탁하네.

 

왓슨 : 하, 나 이거 참. 좋아, 재미삼아 한 번 해 봄세.

 

홈즈 : 부탁하네.

 

왓슨 : 그럼 두 가지로 정리해보겠네. 책의 내용과 작가로 나누어서 말이야. 먼저, 책은 엘제아르 부피에라는 한 늙은 양치기가 프로방스 지방의 황무지에 30년이 넘는 세월동안 나무를 심고 가꾸어 울창한 숲을 이루었고 그랬더니 향긋한 바람이 불고 시내에 물이 흐르고 생명의 기운이 다시 살아나고 떠났던 사람들은 마을로 돌아와 희망과 행복의 삶을 회복한다는 내용이네.

 

홈즈 : 굿, 귀에 쏙 들어오네.

 

왓슨 : 우리가 이 책에서 주의를 집중하고 주목해서 봐야 하는 것은...

 

홈즈 : 오우, 기대되는군. 뭔가?

 

왓슨 : ‘단지 육체적 정신적 힘만을 갖춘’채 ‘황무지에서 이런 가나안 땅을 만들어낸’ 엘제아르 부피에라는 늙은 양치기의 ‘위대한 영혼 속의 끈질김과 고결한 인격 속의 열정’이라네.

 

홈즈 : 그렇지. 책의 맨 끝에 나오는 내용이구만. 엘제아르 부피에의 위대함은 인내와 열정에 더해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힘에서 나온다네. 씨앗을 땅에 심고 나무가 자라는 긴 세월 동안 그는 계속 씨앗과 묘목을 심었지. 좌절하거나 회의에 빠지 않았네.

 

왓슨 : 맞네. 클릭만 하면 결과가 튀어나오는 인터넷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한테서는 기대하기 어려운 미덕이야. 오늘 씨앗을 심고 내일 나무 그늘에서 쉬기를 바라는 사람은 더디게 가는 시간과 계절에 지쳐버리겠지. 할 수만 있다면 마법을 부려서라도 자연의 시간을 단축하려 할테고 말이야.

 

홈즈 : 왓슨, 사실 엘제아르 부피에는 마법을 부렸다네. 드러내지 않고 아무도 모르게 자신의 마음 속에 말이야. 월리엄 블레이크가 그의 시(詩) <순수의 전조>에서 ‘한 알의 모래에서 세상을 보고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보라 그대 손바닥 속 무한을 쥐고 순간 속에서 영원을 보라’라고 읊었듯이 말일세.

 

그래서 나는 삼십년 후면 1만 그루의 떡갈나무가 아주 멋진 것이 될 것이라는 말을 하고 만 것이다. 그는 아주 간단하게 대답했다. 만일 삼십년 후에도 하느님이 그에게 생명을 주신다면 그 동안에도 나무를 아주 많이 심을 것이기 때문에 이 1만 그루는 바다 속의 물방울 같을 것이라는 것이었다 - 34p

 

왓슨 : 이제 작가인 장 지오노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겠네. 지오노는 왜 이 책을 썼을까?

 

홈즈 : 계속 해보게. 


왓슨 : 지오노는 말일세, 정말 책을 읽은 누군가가 엘제아르 부피에처럼 황무지에 나무를 심어 주기를 바랐네. 그의 바람대로 이 책은 전세계적으로 환경운동단체의 교육자료로 채택됐어. 수많은 사람들이 읽고 행동했네. 또 세계적인 화가 프레데릭 바크는 <나무를 심은 사람>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었지. 이를 통해 캐나다에서는 나무심기 운동이 벌어져 무려 2억 5천만주의 나무가 심겼다고 하네.

 

 

홈즈 : 빙고, 대단한 성공이군 그래. 드러난 것만 보자면 말일세.

 

왓슨 : 대개 감동적인 실화를 바탕으로 소설을 쓰거나 영화로 찍거나 하는데 지오노는 역발상을 했던 것 아닐까? 실제로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먼저 써 놓고 이루어지기를 바랐던 거지. 물론 지오노는 이루어질 거라고 확신했겠지만 말이야. 노스트라다무스 같은 예언가처럼 말일세.

 

홈즈 : 예언가라...흥미롭군. 하여간 지오노의 황무지는 ‘산업화, 기계화 되면서 희망이 사라져 버린 사람들의 마음’이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리라 생각하네만.

 

왓슨 : 오호, 예리하군 그래.

 

홈즈 : 정리하면 지오노의 씨앗은 <나무를 심은 사람>이라는 책이고, 그의 황무지는 사람들의 마음이었네. 희망이 심겨진 마음은 행동을 불러 일으키지. 풍요로운 열매가 열리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지오노는 정말이지 ‘완벽한 상태의 도토리’를 골라 심은 거라네.

 

왓슨 : 동의하네, 홈즈. 내 브리핑은 여기까지네. 이 정도로 끝낼 건 아니겠지? 이제 미제 사건 이야길 좀 해보게.

 

홈즈 : 하하, 알겠네. 왓슨, 이제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하네.

 

왓슨 : 쉽게 이야기하게. 쉽게.

 

홈즈 : 지오노는 눈에 보이는 것을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말하고 있네. 그러니까 숲의 회복을 통해 결국 인간 내면에 상실한 그 어떤 것의 회복을 말하고 있지 않은가 말이야. 은유라네.

 

왓슨 : 허, 어렵군 그래.

 

홈즈 : 지오노의 <나무를 심은 사람>은 사실은 천국의 은유야.

 

왓슨 : 천국? 그건 또 무슨 말인가?

 

홈즈 : 천국, 극락, 무릉도원, 파라다이스, 유토피아...뭐라고 해도 좋네. 인간이 꿈꾸는 가장 완전한 이상향이라고 보면 되겠지.

 

왓슨 : 아, 그러니까 엘제아르 부피에가 만든 울창한 숲과 그로 인해 회복된 마을 공동체가 천국을 은유한다는 말인가?

 

홈즈 : 물론 그것도 천국의 일부라고 해야겠지. 내가 말하는 천국의 은유는 책 제목에 있네.

 

왓슨 : <나무를 심은 사람>이 제목 이잖나?

 

홈즈 : 그렇지.

 

왓슨 : 거 참, 그럼 나무가 천국인가? 사람이 천국인가? 하, 웃음이 나오는구만.

 

홈즈 : 둘 다야.

 

왓슨 : (어깨만 으쓱한다)

 

홈즈 : <나무를 심은 사람>을 읽고 있자니 문득 어린 시절 성경에서 읽은 천국 이야기가 생각나더군. 마태복음 13장이었지 아마. 저기 책장에 있는 성경을 꺼내 한 번 읽어주겠나?

 

왓슨 : 그러지, 여기 있구만.

 

“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베풀어 가라사대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마태복음 13:24) 또 비유를 베풀어 가라사대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나물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마태복음 13:31~32)”

 

홈즈 : 그렇지. 천국은 사람이고 겨자씨고 나무라고 되어 있지. 무슨 말인지 어려워서 이해되지 않았었는데... 마치 미제 사건을 푼 것처럼 깨닫게 됐지. 지오노도 지오노의 화신인 엘제아르 부피에도 천국 그 자체였던 거야. 그들이 뿌린 씨앗이 지금 어떻게 되었는지 보게. 거대한 나무가 되었지? 그러니까 ‘씨앗이 자란 나무’도 천국이고 ‘나무가 되기 전의 씨앗’도 천국인 거야. ‘씨앗을 손에 쥐고 나무와 숲과 새를 마음에 품고 있는 사람’도 천국이고. 좀 알아듣겠나?

 

왓슨 : 아하, 완전히 은유였군. 손에 잡히는 천국, 눈 앞에 보이고 만져지는 천국을 지나치다니 말이야. 반전 드라마처럼 정신이 번쩍 드는데. 아, 그래서 나한테 이 유채 씨앗이 담긴 병을 선물하는거구만.

 

홈즈 : 올 가을에 자네 앞 마당에 천국을 심게.

 

왓슨 : 그러지 내년 봄에 노란게 물든 천국의 진면목을 보여주겠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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