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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웨이 - My Way
영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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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관을 빠져나오며 나는 혼자 중얼거렸다.
"그래, 김준식(장동건 분) 너무 많이 달렸어. 적당히 달려야지. 경성에서 노르망디까지 징하게 달렸네. 스토리도 없이."
<마이웨이>는 한 장의 사진을 모티프로 하고 있다. 2차 세계대전 후 노르망디 해변에서 연합군의 신문을 받고 있는 조선인. 그는 독일군복을 입고 있다. 감독이라면 강한 호기심이 일었을 것이고 작품으로 만들어보고 싶다는 욕망을 누르기 힘들었을 터. 하지만 영화로 다시 태어난 그 독일 군복의 조선인은 수많은 전쟁장면만 찍어대다가 죽는다. 작품 만드느라 애쓴건 알겠는데 수고했다는 말을 못하는 심정이었다. 가족에 대한 사무친 그리움도, 연인에 대한 가슴시린 사랑도, 조국에 대한 투철한 애국심도 없다. 일단 감동은 둘째치고 영화를 이끌어 가는 주인공의 스토리가 극히 약하고 사건의 개연성이 너무 부족해서 작위적인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조선인 마라토너 김준식과 일본인 하세가와 타츠오(오다기리 조 분)는 격동의 시대를 살아가며 애증의 관계를 이어가고 결국 화해로 마무리된다. 전체 설정은 좋은데 그 격동의 시대를 모두 다루려 했다는 것이 문제다. 중국, 소련, 독일을 거쳐 프랑스 노르망디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이 무려 12,000km다. 오로지 전투신에만 올인한 이유가 뭘까? 스펙타클도 한두번이지 한 영화에서 무려 4번을 보니 지루하다.
또 전지적 작가 시점의 등장이 불편했다. 일본군 장교로 소련군과 전쟁하던 중 타츠오가 후퇴하는 자신의 부하들을 권총으로 사살하는 장면이 나온다. 나중에 타츠오는 포로가 되어 소련군으로 독일군과 전투에 투입된다. 이때 타츠오는 소련군 장교가 후퇴하는 아군 병사들을 사살하는 장면을 목격한다. 관객이 직접 타츠오의 과거를 오버랩시키며 뭔가를 느끼는 것이 자연스럽다. 하지만 감독은 그 장면을 굳이 교차편집해서 오버랩시키는 친절을 베푼다. 마지막 장면에서 타츠오는 준식의 이름을 달고 마라톤에 참가한다. 앞뒤의 정황으로 충분히 관객이 찾아낼 수 있는 마지막 감동마저 어린 시절 준식과 타츠오가 처음 만나 순수하게 달리기 시합을 하는 장면을 보여주면서 앗아가 버린다. 씁쓸하다.
아쉬움이 크다보니 또 눈에 거슬리는 부분하나 더 지적질하자면 저격수로 등장하는 판빙빙이 전투기를 격추시키는 장면이다. 여자 저격수가 딱총 하나들고 전투기 한 대를 잡는 장면은 람보를 연상시켰다. 람보는 그래도 기관총이었는데. 적당히 했어야 했다.
뭐 하여간 우여곡절 끝에 노르망디에서 재회한 준식과 타츠오가 나누는 대화 장면, 준식이 타츠오에게 대충 이런 말을 한다. "여기서 경성까지 얼마나 걸릴까? 우리 너무 멀리까지 왔지?" 나는 내가 대사를 받아치고 싶었다. "그래, 동건아 너무 멀리까지 왔어. 이건 아니잖아. <친구>에서처럼 부산 자갈치 시장바닥이나 적당히 뛰었어도 되잖아? 하여간 애썼다."

<마이웨이>를 보면서 작품을 이끌어 가는 건 인물보다 스토리라는 걸 더 절실히 느꼈다. 서사의 힘, 그게 있어야 한다. 같은 사진을 모티프로 한 소설들이 있다. 조정래의 <사람의 탈>, 이재익의 <아버지의 길>, <마이웨이>의 원작으로 알려진 김병인의 <디데이>가 그것이다. 네티즌들 사이에서 호평을 받고 있는 <아버지의 길>을 먼저 읽어봐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