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의 밤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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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동안 밀쳐 두었던 책이었다. 작가 정유정의 작품을 읽어본 일이 없었다. 블로그 리뷰와 인터넷 기사를 통해 간혹 소식을 접했을 뿐이다. 작가도 작품도 서먹했다. 나와 <7년의 밤>은 서로 선 낯을 익히느라 '한동안'의 시간이 필요했던 모양이다. 아무튼 내가 그러거나 말거나 <7년의 밤>은 독자들을 불러 모았다. 올해 3월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이 책은 11월까지, 자그마치 20만부를 찍었다. 곧 영화로도 제작된다고 했다.

 

 영화로 제작된다고? '그럼 읽어야겠군'하고 <7년의 밤>을 책장에서 빼냈다. 영화가 되기 전에 읽어야 한다는 약간의 강박이 있었다. 공지영의 <도가니>, 김려령의 <완득이>도 영화로 제작되기 전에 독파했다. 영화는 원작만 못했다. 지면과 화면이라는 콘텐츠의 본질적 차이가 있고 사람에 따라 선호도가 다르겠지만 난 원작 읽는 즐거움을 영화에 뺏기고 싶지 않다. 책이 꽤 두꺼웠다. 자그마치 500페이지. 그래, 보물은 깊고 넓은 바다에 숨겨져 있는 법이다. 20만 독자(물론 그보다 많은 사람들이 읽었겠지만)를 믿고 책을 펼쳤다.

 

 세 페이지의 프롤로그. 알 수 없는 기호들이 빼곡한 수학 문제를 보는 기분이었다. 범인은 없고 범죄 현장만 남아 있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이야기를 구성하지 않고 가장 핵심적인 사건 현장을 전면에 부각시켜 놓았다. 바다 밑에 거대한 몸을 숨기고 날카로운 봉우리만 내 놓은 빙산같았다. 아수라장이 된 하룻밤을 떠받치고 있는 인물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궁금했다. 그 인물들이 살아온 삶과 만들어낸 사건의 진상을 알고 싶었다. 소설 속 등장인물 안승환처럼 '결말을 알고' 싶었다.  

 

 <7년의 밤>에는 두 가족이 등장한다. 한 가족은 전직 프로야구선수이자 현재 보안업체 팀장인 최현수, 그의 아내 강은주, 그의 아들 최서원이다. 또 한 가족은 메디털 센터를 운영하는 치과의사 오영제, 그의 아내 문하영, 그의 딸 오세령이다. 대비되는 두 가족 사이엔 보안업체 직원이자 작가지망생이며 수준급 다이버 안승환이 끼여 있다. 이들은 시골 오지 세령마을에서 일어난 사건, 그러니까 사람들이 '세령호의 재앙'이라 부르는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현실적으로 두 가족과 안승환이 같은 시간, 동일한 장소에 모여 하나의 사건에 연루될 가능성은 '지구와 명왕성이 랑데부'할 정도로 낮았다. 백에 하나, 만에 하나 그렇다해도 그건 우연이라고 설명할 수 밖에 없지 않을까? 그런데 작가는 그 모든 우연의 가능성을 필연으로 돌려놓았다. 인물 하나 하나의 현재를 설명하기 위해 제시되는 과거사가 섬짓할 정도로 치밀하고, 사건을 연결하는 복선과 암시가 거의 완벽에 가까워 우연이 파고들 틈을 차단하기 때문이다. 하나의 사건을 최현수, 오영제, 안승환, 최서원 등 등장인물 각각의 시각으로 재구성하여 독자에게 들이밀며 '자, 이래도 우연이야?'라고 말하는 듯하다. 읽을수록 작가의 필력에 설득당한다. 나중에는 독자 스스로 '당연'하다고 결론짓는다. 정유정에게 박수를! 

 

 작가는 사실과 진실 사이에 있는 '그러나'를 들여다 보기 위해서 작품을 썼다고 했다. 사이코라고 밖에 볼 수 없는 오영제, 비루한 삶마저도 벼랑 끝에 몰린 미련한 곰퉁이 최현수, 그 사이에서 결말을 확인하고 싶어하는 안승환, 은행통장을 종교로 믿는 생활전사 강은주, 모든 것을 잃고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최서원, 악마의 손에서 기적처럼 탈출했지만 지옥같은 과거에 눌려 사는 문하영. 그들의 '그러나'는 무엇이었을까? 완벽한 자기 세계의 구축(오영제), 자신의 분신같은 아들의 구원(최현수), 사건의 진실 그 자체의 규명(안승환), 중산층 가정으로의 도약(강은주), 자기를 붙들고 있는 세령호 사건으로부터의 자유(최서원,문하영) 뭐 그런 것들이었을까?

 


 운명은 때로 우리에게 감미로운 산들바람을 보내고 때론 따뜻한 태양 빛을 선사하며, 때로는 삶의 계곡에 '불행'이라는 질풍을 불어넣고 일상을 뒤흔든다. 우리는 최선의-적어도 그렇다고 판단한-선택으로 질풍을 피하거나 질풍에 맞서려 한다. '그러나' 눈앞에 보이는 최선을 두고 최악의 패를 잡는 이해 못 할 상황도 빈번하게 벌어진다.(일간지 사회면을 점령하고 있는 크고 작은 사건들이 그 증거일 것이다).

 

 사실과 진실 사이에는 바로 이 '그러나'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야기가 되지 않은, 혹은 이야기할 수 없는 '어떤 세계'. 불편하고 혼란스럽지만 우리가 한사코 들여다봐야 하는 세계이기도 하다. 왜 그래야 하냐고 묻는다면, 우리는 모두 '그러나'를 피해 갈 수 없는 존재기 때문이라고 대답하겠다.

 

 이 소설은 '그러나'에 관한 이야기다. 한순간의 실수로 인해 파멸의 질주를 멈출 수 없었던 한 사내의 이야기이자, 누구에게나 있는 자기만의 지옥에 관한 이야기이며, 물러설 곳 없는 벼랑 끝에서 자신의 생을 걸어 지켜낸 '무엇'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소설을 끝내던 날, 나는 책상에 엎드린 채 간절하게 바랐다. '그러나' 우리들이, 빅터 프랭클의 저 유명한 말처럼,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삶에 대해 '예스'라고 대답할 수 있기를......

 

 - 작가의 말 중에서


 그래, 보이는 사실 너머에는 진실이 있다. 왠지 의문이 생기고 뭔가 찜찜하다면 99.9% 내가 모르는 진실이 있다. 진실을 알고 싶다면 대가를 치러야 한다. 밝히려는 자가 있으면 감추려는 자가 있기 마련이니까. 나아가 가진 것 전부를 잃고 종국에는 목숨까지 내 놓아야 한다면 그것은 진실을 지배하려는 자가 있기 때문이다. <7년의 밤>에 등장하는 사이코 오영제처럼 모든 것을 자신의 손아귀에 쥐고서 말이다. 오영제가 아내 문하영과 딸 세령이를 어떻게 대했던가? 마치 마리오네트 인형처럼 자신의 통제 속에 가둬두지 않았던가? 날마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속에 삶을 부지했던 아내와 딸이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오영제는 그것을 가족의 행복이라고 믿었다는 사실이다.

 

 스스로 정한 규칙을 따라 질서정연하게 돌아가는 세계를 구축하고 세상의 그 어떤 것도 그것을 침범하거나 무너뜨릴 수 없다고 믿는 사람, 그래서 진실마저도 쥐락펴락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사람들. 두려움에 소름이 돋는다. 이런 사람들이 지배하는 공동체는 공포, 그 자체다. 진실을 외면해도, 진실을 향해 나아가도 결과는 절망적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 진실접근도가 현저히 떨어진 요즘 그래도 공은 우리 손에 놓여 있다. 진실이라는 포수는 끝없이 승부구를 던지라고 요구하고 있다. 경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마운드에서 내려오지 않는 한 승리의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혹, 패배할 지는 모르지만 패배자는 되지 않을 것이다. 나는 <7년의 밤>을 그렇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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