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그대만 - Always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영화 시작과 동시에 남루한 작업복 차림으로 생수를 배달하는 남자 주인공 철민(소지섭 분) 등장, 그는 야간에는 빌딩 주차관리를 한다. 3분후 여자 주인공 정화(한효주 분) 등장, 재고 빼고 할 것 없이 철민과 만난다. 관객의 인내를 테스트하지 않는다. 빠른 전개. 좋다.

 

그런데 어라, 여주인공 정화가 앞을 못본다. 얼씨구, 철민의 전직은 권투 선수네. 아이쿠, 철민은 고아에, 정화는 사고로 부모잃고 혼자 살고. 아하...치명적인 병이 있는 여자 주인공, 삶이 고달픈 전직 복서라~ 마르고 닳도록 우려먹은 가을의 최루성 러브 스토리. 걱정이 앞섰다. 이럴 때 쓰라고 이런 말이 있다. "안 봐도 비디오, 안 들어도 오디오"

 

그래도 혹시나, 끝까지 봐야지. 맙소사, 이젠 운명의 장난질까지 더해지다니. 영화같은 이야기가 영화 속에 펼쳐진다. 잘 나가던 복서에서 '빚 대신 받아주는 사람'으로, 그러다 사고치고 학교(?)까지 다녀와 비루한 생을 계속하는 철민. 철민이 친 사고와 정화네 가족의 사고가 바로 하나로 엮여있다는 비극적인 현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은 완성된다는 또 하나의 믿을 수 없는 사실.

 

뭘 믿고 송일곤 감독은 이런 뻔~한 이야기를 또 하나의 영화로 만들어낸 걸까? 곁에 있다면 묻고 싶다. "감독님, 이 영화가 관객동원에 성공할 것 같습니까?  가을마다 간직해야 할 눈물겨운 사랑 이야기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는 신념때문인가요? 소지섭과 한효주의 네임 밸류에 대한 확신이 있어서 인지요?" 라고 말이다. 그런데 말이다, 더 믿을 수 없는 사실은 11월 현재 <오직 그대만>의 관람관객수는 100만을 넘었다. 오 마이 갓!

 

그렇다면 어쩔 수 없다. 감독을 만나 물을 수 없다면 내 스스로 흥행의 이유와 영화의 의미를 찾는 수 밖에.

 

먼저, 관객이 돈을 내고 표를 사도록 하려면? 그래 배우의 네임 밸류, 무시할 수 없다. 또 얼리 어답터(early adopter)들의 입소문도 좋아야 하고. 하지만 실패하지 않을 만큼만 관객을 확보할 수 있는 소재가 있다면? 일단 영화를 시작할 수 있다.

 

'가을 사랑이야기'는 그런 것이다. 사랑을 기대하는 청춘들, 지금 사랑을 진행중인 연인들, 뜨거운 사랑의 경험이 있는 중년들, 가슴 아픈 사랑의 상처를 가진 남녀들, 다시 사랑하고 싶은 사람들, 그 누구에게라도 보편적으로 호소할 수 있는 바로 그런 소재. 성공을 장담할 순 없지만 실패의 확률을 확 줄일 수 있는 소재. 

 

<오직 그대만>은 '사랑과 관련된 관객'들을 불러 모았다. 그들은 마치 새로 나온 커피에 호기심을 가지고 맛 보기에 나선 커피매니아들처럼 영화가 뿜어내는 진한 사랑의 향기에 '괜찮네' 라는 평을 내놓기 시작했다. 나도 그렇게 영화를 보게 됐으니까.

 

왜 관객들은 '괜찮네' 라는 평을 내놓았을까?.(완전 주관적인 견해로)  이유는 두 가지다. 군더더기 없이 신속한 사건 전개와 주제 집중도. 따라서 관객은 영화에 몰입할 수 있고 영화의 메시지에 공감할 수 있었다고 본다. 관객이 집중한다는 건 그만큼 영화의 완성도가 높다는 뜻이다. 관객은 바보가 아니다. 뭘 보고 나온건지 생각나지 않는다면 만 원도 안되는 관람료가 아깝기 마련이니까. 하여간 <오직 그대만>은 인물의 과거와 현재를 잘 직조해서 관객이 지루할 틈을 주지 않았다.

 

주제도 제목처럼 오직 '사랑'에만 집중하고 있다. 만약에 영화가 정화와 철민의 '사랑'에 집중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정화를 범하려했던 직장 상사 마팀장(김정학 분)의 이야기를 좀 더 전개했다면? 직장내 성희롱, 불륜, 장애인 인권 문제로 접근해가지 않았을까? 또 철민이 격투기로 재기에 성공했다면, 그래서 링에서 자신을 칼로 찌른 민태식(윤종화 분)을 통쾌하게 복수했다면?(영화를 본 남자들은 그랬으면 하고 바랬을 것이다.) 그랬다면 어줍잖은 액션이나 헝그리 스포츠 영화로 흐르지 않았을까? 곁가지를 사족처럼 달지 않고 두 주인공의 사랑이야기에 집중한 송일곤 감독에게 박수를!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제일 중요한 영화의 의미를 찾아야 하니까.

 

<오직 그대만>은 '눈뜬' 동시에 '눈먼' 이야기다. 무슨 소린고? 자, 들어보시라. 정화는 불의의 사고로 시력을 잃어버렸다. 앞이 보이지 않는 장님이다. 철민은 세상에 대해 마음을 닫아버렸다. 미래가 보이지 않는 영혼, 그 또한 장님이다. 사랑은 둘을 눈 뜨게 한다. 세상도 보이고 미래도 보인다. 왜냐고? 동시에 그들은 사랑에 눈 멀어버렸기 때문이다. 이해가 되는가? 이해가 됐으면 눈뜬 동시에 눈먼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내 말에 동의할 것이다. 내가 찾은 이 영화의 첫번째 의미는 '사랑은 눈뜨게 하는 동시에 눈멀게 한다' 이다. 

 

<오직 그대만>은 '손' 이야기다. 또 이건 무슨 소리냐고? 자, 또 귀를 쫑긋 세워 들어보시라. 정화는 손으로 세상을 만진다. 만지는 행위는 그녀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이다. 그녀는 대학시절 조각을 전공한 예술가였으며 시력을 잃고는 점자로 책을 보고, 안마로 사람을 읽는다. 철민은 주먹으로 세상을 때린다. 때리는 행위는 그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이다. 복서일땐 상대에게 펀치를 날리고 빚 받아내는 일을 할 땐 채무자를 가혹하게 두들겼다. 만지는 행위는 창조의 행위지만 때리는 행위는 파괴의 행위다. 누가 이길까? 힌트를 주겠다. 정화는 철민의 얼굴을 점자를 읽듯 만질 수 있지만 철민은 정화의 얼굴에 손 끝 하나 댈 수 없다. 내가 찾은 이 영화의 두번째 의미는 '만지는 손이 때리는 손을 이긴다' 이다.

 

<오직 그대만>은 '공간' 이야기다. 진짜 이건 무슨 소린지 도무지 모르겠다고? 글쎄, 나도 그렇다. 그래도 할 말은 해야겠다. 한 번만 더 들어보시라. 정화는 낮에도 볕이 잘 들지 않는 연립주택에 거주한다. 독서실처럼 칸막이로 구분된 지정석에 앉아 하루 종일 전화상담을 한다. 철민의 세상은 사각의 링, 복역했던 학교(?), 주차관리요원용 콘테이너 박스다. 그들의 공간은 좁고 폐쇄적이다. 어둡고 퀴퀴하다. 사랑이 시작되자 그들의 공간이 넓어지기 시작한다. 철민은 정화의 집을 볕이 잘 들도록 수리해 준다. 정화는 철민을 '사각의 링' 위에서 내려오게 만든다. 마지막 재회의 장면을 보라. 탁트인 공간에서 뜨겁게 포옹하는 그들을 말이다. 내가 찾은 이 영화의 세번째 의미는 '사랑은 넓은 공간, 밝은 공간으로의 이동이다' 이다.  

 

후유, 이제야 맘이 좀 풀린다. 

 

<오직 그대만>을 봐야 할 이유를 묻는 그대에게 이 글을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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