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오코 - Naoko-winning runners
영화
평점 :
상영종료



 

한 편의 영화가 끝나면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을 꼽아보곤 한다. 머리와 가슴에 동시에 각인된 그런 장면들은 시간이 지나도 영화 제목보다 먼저 떠 오른다. 가령 <벤허>의 전차 경주 장면, <브레이브 하트>에서 주인공 월레스가 형틀 위에서 "프리덤"을 외치는 장면이 그렇다.

 

머리 속에 후루야마 토모유키의 <나오코>를 단 한 장면만 저장할 수 있다면 나는유스케가 육상부 감독을 끌어안은 채 나오코에게 손을 내미는 바로 그 순간을 선택하겠다. 어찌나 그 순간이 눈부시던지, 이 영화 <나오코>는 바로 이 장면을 찍기 위해서 만들어진 영화라고 믿어버렸다. <나오코>는 그렇게 내 마음 속에 남게 됐다.

 

<나오코>에는 10대의 남, 여 주인공이 등장한다. 먼저 이키 유스케. 일본 남해의 나미키리지마 고교의 달리기 선수다. 일본의 바람(日本海の疾風)으로 불리며 언론의 주목을 받는 100m 유망주지만 정작 본인의 꿈은 '고교역전 마라톤' 출전이다. 아버지 영향이었을 터. 유스케의 아버지 역시 '일본의 바람'으로 불리며 학창시절 유명세를 탓지만 유스케가 초등학교 6학년때 사망한다. 천식 치료차 섬을 찾았던 한 여자아이가 뱃전에서 바다로 떨어지자 유스케의 아버지는 소녀만 구해내고 자신은 물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이 여자아이의 이름은 시노미야 나오코. 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고등학생이 된 나오코와 유스케는 동경의 한 육상경기대회에서 다시 만난다. 유스케는 선수로, 나오코는 진행보조요원으로.

 

둘의 시간은 오르막 구간에서부터 시작된다. 나오코는 유스케에게 씻을 수 없는 죄책감을 가지고 있다. 사고였다고 해명할 기회도, 잘못했다고 용서를 빌 시간도 없었다. 설령 그런 자리가 마련된다고 해도 유스케의 마음이 열리지 않는 한 나오코의 죄책감은 사라지지 않는다. 유스케는 더 이상 나오코를 보고 싶지 않다. 아버지의 죽음이후 상실감을 달래기 위해 달리기로 자신의 시간을 채웠다. 부서진 마음과 닫혀진 마음, 나오코와 유스케는 그렇게 고독한 시간을 견디며 홀로 달린다. 

 

나오코는 유스케의 나미키리지마고 육상부가 '큐슈역전마라톤'에 출전한다는 소식을 듣고 동경에서 토호쿠로 날아온다. 육상부원이 부족해 나미키리지마고의 요시자키는 나오코에게 유스케가 뛰는 구간의 급수를 부탁한다. 하지만 나오코가 들고 있던 생수병을 유스케는 받지 않고 지나쳐 간다. 유스케는 급수없이 선두 경쟁을 하다가 오버 페이스, 결국 탈수로 쓰러진다.

 

유스케의 아버지가 죽은 후 유스케를 아들처럼 보살펴온 나미키리지마고의 육상부 감독은 나오코로부터 모든 이야기를 듣고 유스케를 나무란다. 그는 나오코와 나오꼬의 부모에게 '아이들의 멈춰버린 시간을 다시 움직이게 하고 싶다'며 여름방학 훈련기간동안 나오코가 나미키리지마고의 육상부 매니저로 봉사해주기를 부탁한다. 

 

이후 나오코, 유스케, 육상부 감독, 육상부원들의 이야기가 차례 차례 펼쳐진다. 역전마라톤을 통해 정신적으로 성장해가는10대들의 모습을 잘 그려내고 있다. 전형적인 청소년 성장 소설, 아니 청소년 성장 영화라고 봐도 된다. 역동적인 달리기 장면과 정적인 인물들의 심리 묘사, 특히 대사가 거의 없는 나오코의 표정 연기 그녀의 심리 상태를 알아내는데 부족함이 없다. 일품이다. 

 

우리는 인생의 길 위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원치않는 갈등을 겪게 되고 삶의 가치들을 고민하게 된다. 특히 10대의 시간은 스펀지처럼 흡수력이 뛰어나 감정적으로 축축하고 습할 때가 많다. <나오코>는 시원하고 상쾌한 바람이 불고 따뜻한 볕이 드는 양지의 공간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좀 아프고 힘들긴 하지만 마음 속에 생긴 인생의 물음표는 경쾌하게 길 위를 달리다보면 느낌표로 바뀔 것이라는 메시지를 가지고서 말이다. 

 

<나오코>에는 여러 차례 '왜 달리는가?'를 묻는 장면이 나온다. 육상부 감독은 '우리는 뭘 위해 달리는 걸까하고 수없이 물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하고, 유스케의 뛰어난 달리기 실력에 열등감을 갖고 있던 육상부원들이 '나는 누구를 위해 뛰는가?'를 묻기도 한다. 유스케 역시 경기중에 '아버지, 왜 이렇게 뛰어야 하지요?'하고 자문한다. 그것은 등산을 하는 사람에게 '왜 산에 오르는가?'라고 묻는 것이며 궁극적으로 '왜 사는가?'에 대한 물음이다.

 

<나오코>의 답변은? 주인공들의 달리기를 참고해 보면 되지 않을까? 쫓고 쫓기는 달리기는 시작부터 한계를 지니고 있다. 오버페이스, 열등감, 강박증을 동반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혼자서 달리기는 고독의 공포에 시달리기 쉽다. 물론 스스로 질문하고 돌아볼 수 있는 좋은 면도 있지만. 멈춰서서 뒤돌아 달리는 역주행은 최악이지만 새로운 출발점이 되기도 한다. 제일 좋은 달리기는 함께 달리기다. 서로에게 용기를 불어넣고 믿음과 우정을 쌓아 더 멀리 더 빨리 뛸 수 있게 한다. 유스케와 나오코가 혼자 뛰는 장면과 함께 뛰는 장면을 비교해 보라. 함께 뛰는 모습이 보기도 훨씬 좋다.

 

그리고 코치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금상첨화다. 나오코와 유스케, 유스케와 육상부원들이 하나의 완전하고 아름다운 사슬이 되어 달릴 수 있었던 건 육상부 감독이 아이들에 대한 무한한 사랑과 신뢰 덕분이다. 같은 극을 가진 자석들처럼 서로를 튕겨 내기만 했던 이들이 마지막 순간 범위를 넓혀가는 호수의 동심원처럼 커다란 포옹을 만들어 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자니...퍽 감동적이었다. 함께 뛴 시간을 간직하고 있다는 건 삶에 대한 긍정의 에너지를 보유하고 있는 셈이다.

 

 



 

  

이들의 아름다운 달리기 속에 나의 '오래달리기' 추억이 오버랩된다. 
 


오래달리기

“3학년 1반 1번이 누구냐?” 체육 선생님께서 교실 문 앞에서 큰소리로 물으셨다. “접니다.” 내가 손을 들었다. “그래, 오늘 네가 너희 반 체력장 인솔 조장이다. 반별로 1번이 조장하기로 했으니 오늘만 수고해라.”

선생님께서는 급하게 2반으로 가셨다. 내가 가타부타 말할 새도 없었다. 그저 선생님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볼밖에. 고3 체력장이 열리던 날 아침이었다.

체력장 종목은 여섯 종목. 제자리 멀리뛰기, 턱걸이, 윗몸 일으키기, 공 던지기, 100미터 달리기, 오래달리기였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오전에 치러지는 다섯 종목만으로도 20점 만점을 다 따내고 오후엔 느긋하게 오래달리기에 임했다. 그 날 점심을 먹고나서 난 우리 반 아이들의 점수를 확인했다. 50여명 중에 서너명 말고는 다 만점을 따 놓은 상태였다. 운동신경이 둔한 그 서너명이 문제였다. 

그때 왜 그랬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난 교탁 앞으로 걸어나가 아이들을 향해 말했다. “오후에 오래달리기 할땐 다같이 줄을 맞춰서 뛰자. 아직 만점 못 받은 친구들이 있으니까 그렇게 같이 뛰면 다 만점 받을 수 있을 거 같다. 어때? 괜찮지 다들?” “그래, 그래. 그러자.” 너나 할 것없이 동의하는 분위기였다.

3학년 1반부터 순서대로, 그러니까 우리 반부터 오래달리기를 시작했다. 우린 약속한대로 출발선에 4열 종대로 길게 늘어섰다. 아직 만점을 얻지 못한 아이들을 중간에 배치했다. 선생님의 호루라기 소리가 출발을 알렸다. “삐익.” 난 마치 군부대의 소대장처럼 옆에 서서 구령을 외쳤다. “하나, 둘, 셋, 넷” 선생님들이 처음엔 의아한 듯 보셨지만 두바퀴를 그렇게 돌자 흐뭇한 미소를 지으셨다.

세바퀴째. 한 친구가 내게 다가와 뭔가 속삭이고는 속도를 내며 저만치 달려나갔다. 대열이 흐트러지고 아이들이 술렁거렸다. “야, 야, 다들 신경쓰지마. 쟤는 체육학과 지원할거래. 체력장 모든 종목 기록이 중요하다니까 놔 둬.” 네바퀴째. “그런 게 어딨냐. 다같이 하기로 했으면 해야지. 그럼 나도 그냥 빨리 뛸란다.” 누군가 그렇게 말하고 뛰쳐나가자 대열은 완전히 무너졌다. 당연히 ‘운동신경 둔한 그 서너명’은 맨 뒤로 쳐졌다. 

속에서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그렇다고 내가 한 말을 먹어버릴 순 없었다. 난 가장 운경신경이 둔한 녀석과 뒤로 쳐졌다. 우리 반 친구들 모두가 결승점을 통과하고선 반바퀴나 뒤쳐진 우리를 주목하고 있었다. 그날 난 정말로 ‘오래’ 달렸고 난생 처음 꼴찌를 했다. 결승선에서 생물선생님께서 내 손바닥에 검은색 사인펜으로 기록을 써 주시며 말씀하셨다. “하하, 난 네가 그렇게 굼벵인줄 몰랐다. 실망이야.” 웃으며 하신 그 말씀... 평소 친분으로 생각해보면 농담삼아 하신 말씀이셨지만 그날 내 속은 밴댕이보다 더 좁아져 있었다.

다들 꼴도 보기 싫어 혼자 교실로 들어와 버렸다. 잠시 후 친구들이 뒤따라 들어왔다. 체육학과 지원할 거라던 그 친구가 내 앞으로 걸어왔다. “미안하다. 그럴려고 했던 건 아닌데.” 또 다른 녀석들이 내 주위로 몰려들었다. “끝까지 책임지려고 꼴찌로 들어오는 거, 멋지더라. 화 풀어라.” 그리고 같이 꼴찌로 들어온 그 친구가 악수를 청했다. “고맙다. 평생 기억날 거야.” 

집으로 돌아오면서 나는 정말 기분이 좋았다. 돌이켜보면 내가 그 날 잃어버린 거라고는 꼴찌로 들어온 그 친구와 뛴 몇 분 정도의 시간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때로 돌아가 다시 ‘오래’달리기를 하라면 몇 번이고 뛸거다. 꼴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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