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군 이야기 1 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 이야기 1
시오노 나나미 지음, 송태욱 옮김, 차용구 감수 / 문학동네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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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8시, 서울 야경이 한 눈에 보이는 레스토랑)
 
홈즈 : 어이 왓슨, 여기야, 정말 반갑네. 이게 얼마 만인가?
 
왓슨 : 하하, 그래 홈즈. 자네도 잘 지냈지? 여름 휴가는 어디로 다녀왔나?
 
홈즈 : 나야 뭐 에어컨 시원하게 나오는 사무실에서 책 읽으며 보냈지. 자자, 앉자구.
 
왓슨 : 자네 정말 전망좋은 자리를 잡았군 그래. 참 아름다운 서울이야.
 
홈즈 : 간만에 자네와 식사자린데 신경 좀 썼지. 며칠 전에 예약을 했어. 맘에 드는 모양이구만?
 
왓슨 : 맘에 들어. 좋아.
 
홈즈 : 자네가 좋다니 나도 기분이 좋아. 야경 좀 즐기라구. 내 식사 주문할테니.
 
왓슨 : 그런데 홈즈, 서울에 교회가 많긴 많구만. 저기 십자가들 좀 보게. 마치 서울을 손에 넣은 점령군의 깃발같네. 온통 붉은색이 물결치는 것이 말일세.
 
홈즈 : 새삼스럽긴. 자네도 지난 3월 한국을 방문한 홍콩의 세계적인 건축가 아론 탄 같은 말을 하는구만.
 
왓슨 : 아론 탄 같은 말을 한다구?
 
홈즈 : 그래, 아론 탄은 한국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뭐라고 했는지 아나?
 
왓슨 : 글쎄?
 
홈즈 : 자네가 방금 본 서울 야경이야. 십자가라고 했어. 
 
"한국에 오면 항상 인상적인 게 야경 속에 빛나는 십자가예요. 교회가 정말 많죠. 올 때마다 십자가는 더 늘어나는 거 같아요."   - 아론 탄
 
왓슨 : 칭찬은 아닌 것 같은데...
 
홈즈 : 그렇지. 아론 탄은 건축가니까. 뭔가 개성 없고 획일화된 이미지에 대해서 좋은 의도로 말하진 않았겠지.
 
왓슨 : 십자가를 하나의 풍경으로만 보니까 그런 것일테지.
 
홈즈 : 맞아, 우리가 십자가를 하나의 풍경으로 본다면 그건 십자가의 본질적 의미를 잃어버렸다고 밖에 말할 수 없어. 낯익은 십자가지만 의미는 아주 낯설게 된 거지.
 
왓슨 : 그래. 참, 자네 <로마인 이야기>로 유명한 시오노 나나미의  신작 <십자군 이야기1> 읽었나?
 
홈즈 : 오호, 자넨 읽었나보군? 십자가 얘길 하다 보니 <십자군 이야기1>가 떠오르는 모양이지?
 
왓슨 : 그렇다네. 난 지난 주 휴가를 보내면서 짬짬이 읽었지.
 
홈즈 : 친구가 이래서 좋다니까. 나도 읽었네. 하하, 맘이 통했군 그래.
 
왓슨 : 정말 잘 됐네. 멋진 친구와 저녁을 먹으며 책이야기까지 할 수 있다니. 지금 이 순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바로 날걸세. 하하.
 
홈즈 : 이제, 스테이크가 나오는 구만. 천천히 먹으면서 이야기해 보자구. 왓슨, 시오노 나나미 대단하지 않나? 
 
왓슨 : 대단하지. 일흔 다섯이 되도록 이런 대작들을 줄기차게 써 내는 걸 보면 말이야. 그 엄청난 지적 열정을 누가 따라갈 수 있겠나?
 
홈즈 : 물론 그것도 그렇지. 하지만 왓슨, <십자군 이야기1>의 첫 문장 좀 보게. 첫 문장을 선언하듯 던져두고 그에 대한 해설을 하듯 십자군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시오노 나나미가 대단해 보이더란 말이야.
 
전쟁은 인간이 여러 난제를 한꺼번에 해결하려 할 때 떠올리는 아이디어다. 11p
 
왓슨 : 홈즈, 나도 그랬어. 그럼 먼저 십자군 전쟁의 목적부터 이야기해 보는게 어떻겠나?
 
홈즈 : 십자군 전쟁의 목적이라... 책의 첫 문장과 어울리겠는데. 해보자구.
 
왓슨 : 십자군 전쟁의 대의명분은 성도(聖都), 예루살렘을 회복이었네. 당시 예루살렘을 지배하고 있던 이슬람교도들을 몰아내는 것, 신의 깃발아래 모인 십자군이 예루살렘에 십자군 국가를 건설하는 것이 십자군의 궁극적 목표였지.신앙심 깊었던 중세 그리스도교도들을 신분에 관계없이 하나로 묶어준 끈이기도 했고.
 
홈즈 : 왓슨, 난 말이야 성도(聖都) 회복이라는 십자군 궁극의 목표를 찬찬히 생각해봤네. 예수가 어린 나귀를 타고 평화의 왕으로 입성했던 곳, 최후의 만찬을 열었던 곳, 십자가에 못박혔던 곳, 부활해서 하늘로 승천했던 곳이 바로 성도 예루살렘이지. 예루살렘은 예나 지금이나 모든 그리스도교도들의 성지라네. 하지만 성지를 회복하면 거룩해질 수 있을까? 거룩함이란 대체 뭘까? 이런 의문들이 꼬리를 물고 생겨났네.
 
왓슨 : 어렵군.
 
홈즈 : 거룩함은 구별됨이네. 세속적이지 않고 신성한 것을 말하지. 그러니까 어떤 지역을 누가 지배하느냐, 즉, 예루살렘을 그리스도교도들이 점령하고 이교도들을 몰아내야만 거룩함이 확보된다고 할 순 없어. 그리스도교도들이 경전의 참된 의미를 삶 속에서 실현하는 곳이면 그곳이 거룩해지는 법이야. 당연히 세속화된 예루살렘이 성도(聖都)가 되는 것이 아니라 '거룩해진 삶 속의 현재 공간'이 성도(聖都)가 되는 것이란 말이지.
 
왓슨 : 상당히 일리있는 말이야. 하지만 이건 어떤가? 내가 자란 산 좋고 물 좋은 고향 마을에 공장이 들어서면서 환경이 심하게 오염되고 인심도 야박해졌다면 안타까운 마음이 들지 않겠나? 살아 있는 동안 조금이나마 내 고향을 다시 아름다운 마을로 되돌리고 싶지 않겠나 말이야. 십자군의 성도 회복을  그런 의미로 받아들여도 될 듯 싶은데. 
 
홈즈 : 왓슨, 자네 말이 틀린 건 아니네. 하지만 우린 <십자군 이야기1>에서 성도 회복이라는 궁극의 목적보다 앞서는 십자군 전쟁의 또다른 목적들을 발견하게 되네. 어떤 의미에서는 속셈이라고 보는 게 맞을 거야. 신분과 계층에 따라서 주판알을 튕기며 수지타산을 계산했다고 봐야지. 왓슨, 교황 우르바누스 2세는 왜 십자군을 일으켰을까? 자기 영지를 다스리던 제후들-툴루즈 백작 레몽, 렌 공작 고드프루아, 풀리아 공작 보에몬드 같은-은 왜 험난한 십자군 원정을 떠났을까? 베네치아 같은 이탈리아 해양도시국가들은 왜 십자군 전쟁에 끼게 됐을까? 사제의 허가를 받지도 않은 남자, 여자, 어린이를 포함한 중세 하층민들은 왜 은자 피에르를 따라 민중십자군의 대열에 들어섰을까? 
 
교황 우르바누스 2세는 황제를 눈 속에 세워둠으로써 로마 교황의 권위를 과시하는 것이 아니라, 전 유럽의 그리스도교도들을 이슬람과의 전쟁에 내보냄으로써 로마 교황의 권를 과시하는 데 성공했다. 황제 하인리히를 상대로 한 권력투쟁에서 20만에 승리한 것이다. 119p
 
비잔틴 군대와 싸운 전력이 있는 보에몬드가, 비잔틴제국 황제의 요청으로 시작된 십자군에 마흔 일곱이라는 나이로 참가하기로 한 이유는 무어일까. 답은 실로 간단하다. 자신만의 영지. 그것도 광대하고 풍요로운 영지를 원했다는 것. 52p
 
중세의 하층민에게는 일상 생활 그 자체가 이미 가혹한 것이었다. 그들에게 십자군 참가는 그 혹독한 나날에서의 해방을 의미하기도 했다. 33p
 
왓슨 : 음, 그러니까 십자군에 관계된 사람들의 주관적이고 구체적인 상황들은 전쟁이 아니고서는 해결하기 어려운 난제가 됐다는 말이지?  시오노 나나미의 말처럼 전쟁의 아이디어 속에서 동시 해결을 꿈꾸게 된 것이로구만.
 
홈즈 : 그런데 왓슨, 개별적이고 현실적인 이유들은 본래 십자군의 대의명분인 거룩성을 부각시키기는 커녕 오히려 바래게 하는 요소 아닌가?  십자군 1세대가 성도 예루살렘을 회복하고 왕국을 건설한다는 명분으로 원정내내 얼마나 많은 방화, 살육, 약탈을 저질렀나?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려고 참된 거룩함을 버렸던 십자군을 보면서 나는 오늘날 한국 사회의 교회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네.

 
왓슨 : 음...
 
홈즈 : 돈과 권력을 상대로 대회전(大會戰)을 선언해야할 교회, 희생과 봉사의 자리에 소금처럼 스며들어 왼손이 한 일을 오른손이 모르도록 게릴라전을 펼쳐야 할 교회가 지금 어떤가? 영지를 확장하기 위해 십자군 전쟁에 뛰어든 영주들처럼 교인 수를 불리고 교회당을 넓혀가는 상업적 성장주의에 취해있네. 그것도 "주예수가 바라시는 일을 한다"는 믿음 속에서 말이네. 우리 인구의 4분의 1이나 되는 기독교인들은 어떤가? 기복신앙에 푹 빠져 있지 않나?
 
왓슨 : 홈즈,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 않나?
 
홈즈 : 당연하지. 하지만 교회의 목회자들이 성경 말씀을 까맣게 잊어버렸네. '교회 오면, 예수 믿으면' 복받고 성공한다는 말 좀 그만하면 좋겠네. 십자군에 참가하는 자에게는 완전한 면죄가 주어진다고 했던 교황 우르바누스 2세의 말과 뭐가 다를게 있단 말인가? 이탈리아 해양도시국가 베네치아가 상업적 이익을 목적으로 십자군과 거래하던 장면 기억나나? 교회가 믿음과 영성을 장사하듯 팔아치워서는 안되네. 교회는 말이야 이윤을 창출하는 일류기업을 모델로 삼아서는 안되네. 또 긍정마인드와 성공학에서 배우려 해서도 안되고 말이야. 교회는 성경을 깊이 상고해야 하네. 경전을 두고 왜 자꾸 다른 데를 기웃거리나 말이야. 양적 성장에 교회의 모든 역량을 쏟아붓는 어리석은 짓을 이제 그만두었으면 하네. 목회자가 바른 말씀을 선포하고 교인들에게 말씀과 일치되는 삶을 강조함으로써 거룩함에 이르도록 이끌어야 하지 않을까?
 
왓슨 : 이의 없네. 백번 천번 옳은 말이네. 안타깝게도 한국 대형 교회는 대체로 초대교회 공동체의 모습과는 동떨어져 있네. 하지만 재정적으로, 정치적으로, 수적으로 너무 견고해서 무너뜨리기 힘든 성같지. 한국교회 역사상 지금보다 더 개혁이 요구되는 시대는 없었던 것같네.
 
홈즈 : 뛰어난 장수가 우수한 병사들을 이끌고 공성전을 감행하든지 내부적으로 위대한 개혁지도자가 나오든지 해야겠어. 하지만 <십자군 이야기1>에서 보듯 역사상 명장으로 알려진 모든 사람들은 하나같이 공성전을 싫어했다지.
 
주위가 견고한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는 대도시를 공략하기는 무척 어렵다. 집 안에서 버티는 상대를 계속 집 밖에서 공격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병력과 군량이 충분하다 해도 무더위와 혹한, 비와 눈과 바람을 고스란히 감수하면서 공격해야 한다. 더군다나 배후에서 적의 원군이 나타나지 않을까 주의를 기울이는 것도 게을리해서는 안된다. 또한 열악한 환경에서는 역병도 발생하기 쉽다. 적과의 전투에서 죽는 자보다 먹을 것이 부족하거나 위생상태가 나빠 죽는 자가 더 많은 것이 공격하는 측의 고민 중 하나였다. 더구나 공격하는 내내 병사들을 통합하고 그들의 사기가 떨어지지 않도록 노력해야 했다. 바로 그 때문에 역사상 명장으로 알려진 사람들은 하나같이 공성전을 싫어했다. 126p 
 
왓슨 : 공성전을 피하려면 내부에서 개혁 세력이 등장하는 수 밖에 없겠구만.
 
홈즈 : 그렇지. 세속화된 교회의 잘못을 회개하고, 성경과 삶이 일치되기를 기도하며, 교회의 머리가 목사가 아니라 예수라고 고백하는 '거룩한' 목회자와 성도들이 여전히 이 땅에 존재한다고 나는 믿네.  
 
왓슨 : 홈즈, <십자군 이야기1>에는 '홈'에서 싸우면서도 '어웨이'에서 싸우는, 십자군에 영토를 빼앗긴 이슬람교도들의 이야기가 나오질 않나.
 
홈즈 : 나오지.
 
왓슨 : 시오노 나나미는 이슬람측의 열세 이유를 그들을 하나로 묶어준 '궁극적 목표'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네. 십자군은 총지휘관은 없었지만 어쨌든 성도 회복이라는 궁극적 목적은 있었는데 말이야. 맞는 말이야. 이슬람교도들은 서로간에 영지쟁탈로 정신이 없었으니까. 마치 현재의 한국 교회들이 교인 쟁탈을 벌이듯이 말이야. 난 거기에 또 하나의 이유를 더하고 싶네.
 
홈즈 : 뭔가?
 
왓슨 : 그건 세금을 적게 걷고 몸의 안전만 보장하면 지배자가 누가되든 상관없다고 생각한 당시 일반 민중들의 생각이지. 다시 위기의 한국 교회 이야기로 돌아와 보자구. 이슬람교도들의 열세 이유에서 보듯 한국 교회의 개별 성도들도 현재의 교회 위기에 대해 책임없다고 할 수는 없네. 자신의 부귀영화, 가족의 무병장수에만 관심이 있고 교회 지도자들의 비성경적인 언행에 무심했다면 신의 정죄를 피할 수 있을까? 비록 개별 성도들이 교회의 지도자들은 호버크와 철제 갑옷을 입고 말을 탄 중무장 기병같다고 항변하더라도 말이야. 
  
홈즈 : 맞네. 교회와 기독교인들은 그들이 참전한 전쟁이 무슨 전쟁인지 분명히 알아야하네. 적은 누군지, 어떤 전쟁인지를 분명히 알아야 제대로된 무장을 하고 전투에 목숨을 걸 수 있지.
 
왓슨 : 그래 교회와 기독교인들의 전쟁은 무슨 전쟁인가?
 
홈즈 : 영적전쟁이지. 눈에 보이지 않아. 하지만 눈에 보이는 전쟁보다 훨씬 더 중요한 싸움이네. 한국 교회가 신의 전신갑주를 입은 성도들로 가득 채워진다면 제2의 종교개혁이 가능하지 않겠나?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 대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신약성경 에베소서 6장>
 
왓슨교회의 개혁이란 성경으로 돌아가는 것이네. 한국 기독교 초기, 타국의 사람들을 위해 몸과 마음을 다 바쳤던 서양의 선교사들이 묻혀있는 양화진에 가서 그들이 침묵으로 말하는 바를 경청했으면 좋겠어.
 
홈즈 : 그래, '신이 그것을 바라신다'고 선포하기 전에 '신이 그것을 바라실까?' 먼저 물어야 하지 않겠나?
 
왓슨 : 너무 센 말들을 막 쏟아놓았는데 자네 괜찮겠나?
 
홈즈 : 걱정말게. 제일 먼저 나 들으라고 한 소리니까. 나도 한국 교회의 위기를 초래한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해. 무척 마음 아프네.
 
왓슨 : 홈즈, 이제 스테이크를 좀 즐겨볼까? 
 
홈즈 : 하하, 그러지. 우선 식사기도부터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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