써니 - Sunny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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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써니>는 주인공 임나미 가족의 무미건조한 아침 풍경을 그리며 시작된다. 남편과 딸이 집을 나간 후 햇살 쏟아지는 탁자에 앉아 바깥 세상을 보는 그녀. 무균실의 환자같이 보였다. 임나미는 입원중인 엄마의 병원에 갔다가 투병중인 여고시절의 친구 하춘화를 만난다. 2개월 선고받은 말기암 환자. 영화를 다 보고선 진짜 환자는 춘화가 아니라 나미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미의 병명은 이름하여 '꿈 상실증'. 꿈을 잃은 사람들은 증세가 악화되면 결국 내가 누군지도 모른채 살아가게 된다. 무서운 일이지만 그걸 스스로 깨닫지 못한다. 나미, 장미, 진희, 금옥, 복희같은 인물들은 이유야 어떻든 꿈없는, 아니 한때 꿈 많았던 소녀들의 대명사다. 치료받아야 하는 건 춘화가 아니라 나미이며 몸이 아픈 '당신'이 아니라 꿈을 잃은 '나'이다. 

 

임나미는 하루에도 수 천, 수 만명씩 오가는 백화점에 가서 남편이 준 돈으로 샤넬 가방을 산다. 혼자 가서 사도 신날까? (우리 아내는 "그걸 말이라고...신나죠." 했다. 내가 말을 잘못 꺼냈다.) 물론 신나기도 할거다. 하지만 좋은 물건을 소유하는 기쁨, 그 이상은 아니지 않을까? 백화점을 드나드는 사람들, 그곳에서 물건을 파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아도 내가 혼자라고 느끼는 이유는 그곳에 친구가 없기때문이다. 친구란 친밀함을 느끼는 관계다. 그 친밀함이란 친구의 기쁨과 슬픔을 내 것인 양 여기는 감정이고. 써니의 슬로건이 뭐였지?  "우리중 하나를 건드리면 모두를 건드리는 것." 그래, 그게 친밀함이다.가방과는 친밀함의 관계를 맺을 수 없잖아.(뭐 무인도라면 다를테지...톰행크스는 <캐스트어웨이>에서 배구공 윌슨과 말할 수 없이 친밀했으니까...) 

 

한때 'TV는 사랑을 싣고'같은 방송매체나 '아이러브스쿨'같은 인터넷 사이트가 친구찾기를 내세우며 유행한 적이 있었다. 춘화의 마지막 소원도 친구찿기였다. 그녀는 나미에게 여고 시절 써니 멤버들을 찾아달라고 부탁한다. 친구찾기의 궁극적 목적은 나를 찾는 데 있다. '나'라는 인간은 살면서 내가 관계 맺어 온 친구의 총화니까.  친구찾기가 의미를 가지려면 찾고 난 후의 관계가 훨씬 중요하다. 85년도 고등학교를 졸업한 써니 멤버들의 현재 상황을 보라. 그들이 20여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다시 친구가 되기란 쉽지 않다. 각양각색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기때문이다. 춘화는 다시 만난 친구들에게 그.냥. 살.지. 말라고 당부한다. 하고 싶은 거 하고 되고 싶은 거되라는 말도 덧붙인다. 친구들 앞으로 꿈을 이룰 수 있는 재정적 지원을 유산으로 남긴다. "나도 역사가 있는 내 인생의 주인공"임을 상기시키는  춘화는 써니의 '짱'다웠다.(여고생들의 우정과 의리가 이렇게 빛날 수 있다니...)

 

내가 약간 즐거운 흥분 상태에서 말하자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 "이 영화 자체가 꿈같은 이야기야. 그러니까 영화로 만들어진 거고. 현실에서 거의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니까 엄청 많은 관객들이 보고 대리만족 느끼는 거 아니겠어. 이건 백마탄 기사 이야기를 약간 변형했다고 보면 돼. 40대 중반의 여자한테 백마탄 기사가 나타날 가능성? 거의 없어. 20대 아름다운 여자라도 그 가능성이란 폐차장에 번개쳐서 태권브이 나올 확율인데 40대 아줌마는 말하면 입아파. 그러니 <써니>에선 하춘화가 '짠'하고 등장하잖아. 몰랐지? 하춘화가 백마탄 기사란걸. 나머지 친구들은 찌질하게 살아가는 부엌떼기들이고. 결혼도 안한 성공한 사업가 친구, 곧 죽을 병에 걸렸지만 여고시절 써니 멤버라는 이유만으로 소원 하나씩 다 들어주잖아. 얼마나 멋있냐. 로또야, 로또. 난 이런 친구 안 나타나나 몰라."(으윽, 확 깬다. 빈정 상하고...) 다 부정할 순 없는 말이지만 아름다운 우정과 의리를 매도하지 말라고 강변하고 싶다.(이 말은 못했다. 간이 작아서...쩝) 

 

80년대를 살아온 여학생들의 우정, 꿈, 현실을 세밀하게 포착하고 있는 <써니>. 난 개인적으로 남자들의 우정과 의리를 그린 <친구>보다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폭력과 살인으로 마무리되는 <친구>를 보면서 우정, 꿈과 같은 말들이 지닌 긍정의 의미를 되새기긴 힘들었다. <써니>는 달랐다. 너무 웃고 즐기다 보니 '<써니>의 앤딩씬이 댄스 연습장이었나'하고 착각할 정도였다. 환하게 웃는 춘화의 스케치 영정을 앞에 두고 'sunny'의 선율에 맞춰 그녀들이 추었던 춤은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았다가 극적으로 완치 판정을 받은 환자의 환희처럼 보였다. 진정한 친구는 살기(殺氣)가 아니라 활기(活氣)를 불어넣는다. 춘화처럼.

 

꿈을 잃은 그대들, 우리 다시 춤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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