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제2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김애란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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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문학동네 젊은작가상 대상 수상작 <물속 골리앗>(김애란)
<2011 제2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문학동네)에 수록
 


왓슨 : 홈즈, 한주 내내 비가 어지간히도 오는군. 주말도 꼼짝없이 갇혀버렸어.

 

홈즈 : 오늘(2011.6.26) 태풍 '메아리'도 상륙한다잖아. 북한에서 제출한 이름이라는데..

 

왓슨 : 이름이 심상찮군. 메아리라. 큰 피해없이 지나가야 할텐데.

 

홈즈 : 그러게 말이야. 농부들의 한숨 소리, 침수 지역의 절규가 메아리치지 않기를 바랄뿐이야.

 

왓슨 : 참, 홈즈, 지금 생각해보니 묘하지?

 

홈즈 : 뭐가?

 

왓슨 : 이번주 읽었던 책 말이야.

 

홈즈 : 어디 보자. 그래, 바로 이 책이지. < 2011 제2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왓슨, 근데 뭐가 묘한가? 난 책 값이 반값이라 그게 이상하더구만. 5,500원, 자장면 곱빼기 한 그릇 값이니까 말이야. 이상하다기 보단 깜짝 놀랬어.

 

왓슨 : 하, 자네도 참..싱거운 소리를 다하는 군. 젊은 작가들을 널리 알리기 위해 출간 후 1년간은 보급가인 5,500원으로 판매한다잖나. 그건 그렇고. 내가 묘하다는 건 우리가 딱 장마기간에 맞춰 이 작품집을 읽었다는 것이네. 정확히 말하자면 대상 수상작인 김애란의 <물속 골리앗>이 그렇다는 말이고.

 

홈즈 : 음, 하기야 <물속 골리앗>을 한 겨울에 읽었다면 그 독특한 감각적 묘사들을 싱거워졌겠지.

 

왓슨 : <물속 골리앗>이 시기를 딱 맞춰 우리에겐 온 이유가 있을거야.

 

홈즈 : 그래, 출판사에서 딱 장마기간을 겨냥해 출간한 것도 아니고. 이렇게 자네와 마주앉아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답이 나오지 않을까?

 

왓슨 : 그럴거야, 홈즈. 그럼 슬슬 <물속 골리앗>에 대한 감상을 이야기해 볼까?

 

홈즈 : 잠깐만, 따뜻한 커피 한 잔 생각나는군. 자네도 마실텐가? 

 

왓슨 : 좋아, 홈즈. 블랙으로 부탁하네. 레이저 빔처럼 쏟아지는 창 밖의 저 빗줄기를 보면서 자네 이야길 듣고 싶네.

 

홈즈 : 아무튼 책에 몰입할 수 있도록 날씨가 무대를 멋지게 꾸며주는군. <물속 골리앗>의 소년도 장마가 시작되는 며칠 동안은 '먼지 낀 유리 너머로 소리가 삭제된 채 보이는 풍경'이, '아주 먼 데서 형성된 기류'가 자신에게 얼마나 영향을 줄 지 몰랐을 걸세.

 

왓슨 : 그랬겠지. 장마와 가족의 상황이 불운하게 엮여가면서 소년은 육체적으로 심리적으로 완전히 고립됐으니까.

 

홈즈 : 배경묘사 뿐 아니라 상황의 전개나 소년의 심리도 작가 김애란의 펜 끝에서는 하나 하나 감각적으로 묘사되어 뚜렷해지더군. 마치 내가 장마 속 고립된 소년이 된 듯 했으니까. 소름이 오소소 돋았네. 내가 가진 다섯 가지 감각-시각, 청각, 후각, 촉각, 미각-을 이렇게 날 세워놓는 작가의 능력에 감탄할 수 밖에 없었지.

 

왓슨 : 나도 그랬네. 뿐만 아니라 두 가지 감각을 버무려 하나로 엮어내기도 하더군. 황톳물 위를 위태롭게 표류하던 소년이 1.5리터짜리 사이다 페트병의 뚜껑을 따고 한 모금 마시는 장면말일세. 그 한 순간의 미각을 시각으로, 과거로, 추억으로 전이시켜가는 게 일품이었네. 혀 끝에서 탄산음료가 톡 쏘는 맛과 용접봉 끝에서 번쩍거리는 불꽃을 대비해내더니 다시 소년이 밤하늘 강가에서 아버지께 수영을 배울때 만났던 유성우(流星雨)의 추억과 맛을 떠올리지 않던가? 

 


이번에는 사이다 병뚜꺼을 따 한 모금 마셔봤다....나는 좀 더 적극적으로 사이다를 들이켰다. 컴컴한 입안에서 작은 불꽃놀이가 일어나는 느낌과 함께 살짝 매캐한 눈물이 났다....그것은 아주 짧은 순간 몸속에서 환하게 타올랐다 이내 사그라졌다. 그러자 문득, 아버지의 보호안경 위로 비쳤을 용접 불꽃이 떠올랐다. 아버지가 평생 마주한 불빛, 불빛. 그리고 내게 다른 빛을 보여주려 한 아버지의 마음도....그리고 그렇게 아버지와 노닥거리고 실랑이를 벌이는 사이, 어느 순간 놀랍게도 나는 수영을 하고 있었다....아버지는 손목시계를 보며 이번에는 잠수를 해보라고 했다....그러고 어느 순간, 숨을 참지 못해 수면 밖으로 나왔을 때- 내 머리 위로 수천 개의 별똥별이 비처럼 쏟아지고 있었다....정말이지 그건 내가 지금까지 받아본 선물 중 가장 근사한 거였다. 나는 사이다를 들이켜며, 이내 사라지고 없는 불꽃 맛을 음미했다. 그러곤 나직하게 중얼댔다. 여기에서 어쩐지 그 유성우 같은 맛이 난다고.

 

- 2011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물속 골리앗> 45-46p


홈즈 : 홈즈, 난 빛을 압도하는 어둠이 인상적이던데.

 

왓슨 : 그래?

 

홈즈 : 그렇다네. 늘 빛은 어둠 위에 물린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물속 골리앗>을 읽고서는 '아닐수도 있겠다' 뭐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 빛이 몰아낼 수 없는 어둠이 있더라 이말이야. 어둠이 빛을 완전히 지배하는 거지. 결국 그건 두려움과 공포로 가득찬 소년의 상황을 은유하는 것이겠지?

 

왓슨 : 나도 생각나. '몇 개의 빛으로는 물릴 수 없는 유구하고 원시적인 어둠', '지척을 분간할 수 없는 어둠', '무시무시한 어둠', '칠흑같은 어둠'. 어둠의 위세가 이렇게 대단했었나 하고 느낄 만한 표현들이지. 또 촛불, 손전등, 용접 불꽃, 유성우같은 일시적이고 제한적인 빛은 참 하잘 것 없다는 생각도 들었고. 

 

홈즈 : 암흑은 소년을 두려움으로 몰아넣고 소년이 가진 희망의 당도를 떨어뜨리지. 싱겁게 만들어. 왓슨, 그런데 말이야. 소년은 무엇때문에 겁이 났을까? 그냥  먹장구름아래 장마가 계속되고 전기가 나가 불을 켤 수 없어서일까?

 

왓슨 : 아직 다 크지 않은 나약한 사춘기 소년이었으니 그것도 한 원인이 되지 않았을까?

 

홈즈 : 맞아. 하지만 그것이 극도의 공포에 이르게 한 근본적인 원인은 아니었네.

 

왓슨 : 그럼 뭔가? 자네 생각은.

 

홈즈 : 먼저 시시각각 변해가는 소년의 주변 상황에 따라가 보세.

 

왓슨 : 좋아. 소년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곧 장마가 시작됐지. 그러곤 길이 끊기고 휴교령이 내리고 마을 남자 하나가 급류에 실려 사라지고 전기가 나가고 가스가 끊기고 아파트가 황폐하게 물러 썩어가고 유기견이 죽고 수도가 끊기고 비는 계속 계속 보름넘게 내리고 장마는 한달이 지나도 계속되고 마을이 사라지고 엄마는 죽었네. 숨가쁘군.

 

홈즈 : 좋아, 왓슨. 소년은 접촉하고 살았던 모든 것들과의 통로를 잃어버렸네. 몇가지 추가하자면 소년이 살아온 동네는 재개발구역으로 지정되면서 마을 사람들이 떠나기 시작했고 결국 소년과 엄마만 남았지. 또 아버지는 체불임금시위를 하느라 타워크레인에 올랐다 실족사-사실인지는 모르지만-했네. 상중(喪中)이었네. 그때부터 장마는 시작됐고.  자, 소년의 심리상태는 어떻게 변하던가?

 

왓슨 : 처음엔 비가 오는 걸 보곤 아무리 봐도 지루하지 않은 풍경이라고 느꼈지. 또 가뭄과 폭염에 지쳐있던 터라 다행이라 생각하기도 했고, 또 용역회사 사람들이 당분간 오지 않을거라 생각도 했고,  이런 저런 몽상에 잠기기도 했지. 그러다 빗소리 말고 '사람이 만들어낸 어떤 소리들' 곁에 있고 싶어했네.

 

홈즈 : 그러다가 감각이 무뎌지기 시작하지?

 

왓슨 : 맞네. '오늘이 내일 같고 어제가 그제 같은 날들이 이어지자' 날짜감각이 사라져 버렸지. 그리고 자꾸만 집이 흔드리는 것같고 엄마의 얼굴이 왜곡돼 보이기도 해. 정신적으로 문제가 생긴거야. 엄마는 히스테리컬한 말과 행동을 보이다 생존을 위해 받아둔 물봉지를 터뜨리고 결국 자신도 죽네.

 

홈즈 : 왓슨, 시간이 흐르기 때문에 어제와 오늘의 구분이 생기는 건 아니네. 세월이 지났기 때문에 과거가 된 것이 아니라는 말이지. 우리를 둘러싼 것들이 움직이고 변하기 때문에 과거가 된다네. 변화가 없는데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 구분은 무의미하지 않겠나? 무의미한 것에 감각적일 필요가 없으니 그 감각은 사라져 버리지. 나 말고 변하는 것이 없고, 변하는 어떤 것을 확인할 수 없다면 어떤 생각이 들겠나?

 

왓슨 : 나는 혼자구나 그런 생각이 들겠지.

 

홈즈 : 바로 그걸세. 소년도 그렇게 생각했네. 장마 이후로 그 어떤 구조의 조짐도 없었으니까.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삭제된다면 존재의 의미는 없네. 공포는 거기서 시작되는 것이고.

 


그 위로 현대의 아름답고 치명적인 쓰레기들이 둥둥 떠다녔다. 나가야한다고 생각했다. 이대로 있을 수는 없다고. 어떻게든 여길 빠져나가야 한다고 다짐했다. 주위를 둘러봐도 구조대를 태운 배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순간 단 한 번도 인정하지 않았던, 하지만 점점 뚜렸해져가는 어떤 생각이 머리에 스쳤다.

- 사람들이 우리를 잊은 게 아닐까?

등줄기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 2011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물속 골리앗> 30p


왓슨 : 아, 그래서 소년이 나무문짝으로 배를 만들고 탈출을 시도하는 군. 비록 쓰레기처럼 둥둥 떠다닌다 해도 말이야.  

 

홈즈 : 물론이지. 혼자가 된다는 건 무섭고 서러운 일이야. 소년이 나무문짝배를 띄워 탈출을 시도하는 이유는 생존을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누군가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라네. 그래서 물 속에 잠긴 크레인 위에 누군가 앉아 있는 것같은 환상을 보며 유령이라도 만나보고 싶다고 생각하지.

 

왓슨 : 그러고 보니 소년은 탈출의 순간, 돌아가신 어머니의 시신을 함께 태우는구만.  '두려운 망자(亡子)'라고 생각하기 보다 '함께 있는 엄마'라고 생각한 모양이야. 나중엔 배까지 버려가며 떠내려가는 엄마의 시신을 붙잡으려고 한 것이고 말이야.

 

홈즈 : 맞아, 영화 '캐스트 어웨이'에서 주인공 톰 행크스가 무인도를 탈출할 때 함께한 자신의 분신으로 여겼던 게 있잖나? 바로 '배구공 윌슨' 말이야. 섬에서 자신의 유일한 말 벗이자 외로움을 달래 주었던 그 윌슨이 뗏목에서 떨어져 바다 한 가운데로 멀어지자 그렇게 엉엉 대성통곡 했던거랑 비슷하지. 왓슨, 소년의 마지막 독백은 '누군가 올 거야' 였네. '비가 그칠 거야'라든가 '물이 빠질 거야'라고 말하지 않았어. 사람에 기대를 걸고 있는 거지.

 

왓슨 : 이제 뭔가 제대로 맞춰지는 느낌이군. 그래, 극심한 재난 속에서 나약한 인간의 유일한 소망은 생존이지. 왜 그런지 아나, 홈즈? 사람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지. 내가 저 머나먼 땅 아프카니스탄에서 군의관으로 전쟁에 투입됐을 때 내 희망이 바로 저 소년의 것과 같았군 그래.

 

홈즈 : 소망...희망이라...왓슨, 자네 소년의 아버지가 훌륭한 용접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 아나?

 

왓슨 : 이십 수년간 건설 현장에서 일해온 것만 봐도 소년의 아버지가 꽤 괜찮은 용접 기사였다는 걸 쉽게 알 수 있잖나?

 

홈즈 : 음... 왓슨, 내 말은 말이야. 용접봉을 사용해 쇠와 쇠를 붙이는 용접말고 더 멋진 진짜 용접을 말하는 거야.

 

왓슨 : 이건 또 무슨 소린가? 진짜 용접?

 

홈즈 : 하하, 그래 진짜 용접. 소년의 아버지는 어린 아들과 자신을 용접했지. 영원히 떨어지지 않을 거야. 앞 부분에서 자네가 인상적이었다고 인용한 부분말이야. 그게 바로 용접 장면이었네.

 

왓슨 : 거 참 모를 소리만 하는군...

 

홈즈 : 그러니까 왓슨, 소년은 아버지에게 수영을 배울 때 아름다운 추억을 가지게 됐지. 그 추억은 표류의 순간에도 희망의 맛을 느끼게 해 주었고. 아버지라는 존재가 용접되어 있지 않았다면 위태위태하게 흔들리는 골리앗크레인 위의 소년은 엷은 희망도 가지지 못했을 걸세. 그러니 소년의 아버지가 탁월한 용접 기술을 가졌다 할 밖에.

 

왓슨 : 일리가 있군 그래. 그런데 홈즈, 소년이 누군가 올 거라는 희망을 중얼거리지만 누군가 와서 구조한다면 그 이후가 더 걱정되는군. 부모를 잃어버리고 아파트 마저 철거대상이 된 마당에 소년에게 실현된 생존은 축복이 아니라 차라리 고통이 아닐까?

 

홈즈 : 그렇지? 작가는 골리앗크레인 위에 두 명의 인물을 올리네. 소년의 아버지와 소년이지. 소년의 아버지는 체불임금 시위를 하느라 올랐네. 소년은 온통 물로 잠긴 세상에 땅에 고정되고 물 위로 솟아있는 유일한 구조물 붙잡았네. 둘 다 생존을 위해서네만 아버지는 죽었고 소년은 크레인 위에 아직도 있네. 왓슨, 작가의 말을 떠올리면 자네 질문에 답이 될지 모르겠네. 우리도 선(善)에 대한 상상력을 키워보면 어떻겠나?

 


요 며칠 나를 쥐고 흔든 건, 재난의 풍경이 아니라 폐허에서 드문드문 피어나는

인간 내면의 풍경이었다.

이상한 사람들......

때론 자기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고

다른 사람이 아파하면 자기도 아픔을 느끼는 이상한 사람들......

 

내가 소년을 거기 혼자 둔 이유.

나는 그게 소년이 행복해지는 것보다 훨씬 현실적인 결말일고 믿었다.

하지만 지금 내 앞에서 엄연히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보며,

재난 앞에서 웃으려고 애쓰고, 이웃의 손을 잡고, 다음 세대를 생각하는 사람들을 보며

'현실적'이라는 게 대체 뭔가. '나아진다는 것'은 또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됐다.

 

맞다.

진짜 공포는 상상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 혹은 부족한 것은

공포에 대한 상상력이 아니라 선(善)에 대한 상상력이 아닐까.

그리고 문학이 할 수 있는 좋은 일 중 하나는

타인의 얼굴에 표정과 온도를 입혀내는 일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러니 '희망'이란 순진한 사람들이 아니라 용기있는 사람들이 발명해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 2011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물속 골리앗>  작가노트 50-51p


왓슨 : 와~, 선(善)에 대한 상상력이라. 정말 맘에 드는데. 하하. 이 메시지를 주려고 이 작품이 우리에게 묘한 시기에 왔나 보이. 기분이 유쾌해지네, 홈즈.

 

홈즈 : 나도 그래, 왓슨. 다행히 비가 그치는군. 조심해서 돌아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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