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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망고 - 제4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ㅣ 창비청소년문학 36
추정경 지음 / 창비 / 2011년 5월
평점 :
여행이 일상적인 요즘, 사람들은 알려지지 않은 장소, 먹어보지 못한 음식을 찾아 헤멘다. 그래서 여행지과 맛집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 넘쳐나는 걸까? 하지만 그건 좁은 의미의 여행일 뿐이다. 우리는 책을 펼쳐드는 순간, 즉시 그 어딘가로 떠날 수 있다.
문학 작품은 생소한 시공간에서 낯선 이야기를 들려준다. 하여 하나의 작품은 하나의 여행지가 된다. 작품이 탄생할 때마다 문학은 경계석을 뒤로 물려가며 영역을 넓혀간다. 전혀 경험하지 못한 장소와 시대로 시작하여 다른 직업과 연령을 거쳐 평생 발을 들여놓을 수 없을 이성(異性)과 타인의 내면에 이르기까지.
여지껏 청소년문학은 가정과 학교의 울타리 안에서 가족, 친구, 이성, 입시, 집단따돌림같은 소재를 다루며 익숙한 영역에 머물러 왔다. 똑같은 트랙을 반복해서 도는 계주 선수들을 보는 느낌이랄까? 하지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들은 지루하고 식상한 계주를 중단하고 트랙 바깥으로 뛰쳐나갔다. 궤도를 이탈한 소행성처럼, 탁트인 초원을 질주하는 야생마처럼 경계가 없는 공간 속으로. 2007년 수상작, 김려령의 <완득이>는 다문화장애가정의 이야기를 경쾌한 문체로 풀어내 독자에게 웃음을 한가득 안겨주더니, 2008년 구병모의 <위저드 베이커리>는 판타지적 요소와 멀티엔딩을 도입해 독자를 놀래켰다. 한 술 더 떠 2009년 배미주의 <싱커>는 공상과학소설의 영역까지 넘나들었다. 이로써 우리는 청소년문학이 얼마나 독특한 소재와 다양한 장르를 오갈 수 있는지를 알게됐다.
창비 청소년 문학상 2010년 수상작은 추정경의 <내 이름은 망고>다. 심사위원들의 말을 들어보자.
무엇보다 이 소설의 장점은 청소년문학의 미답지를 개척한 점이다. 만날 학교와 집, 학원만 오가는 얘기가 범람한 요즘 청소년문학 판에서 이렇듯 세계로 시야가 확 트이는 이야기라니! - 심사위원의 말 중에서
이로 보건대 창비 청소년 문학상은 확실히 '청소년문학의 미답지 개척'이라는 트랜드를 만들어 이를 하나의 척도로 활용하는 듯하다. 서두가 길었다. 각설하고 본격적으로 <내 이름은 망고> 이야기를 해 보자.
<내 이름은 망고>는 캄보디아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열 일곱 수아의 여행가이드 이야기다. 그래서일까? 이 작품의 최대 장점은 여행지를 직접 다니는 듯한 생생함이다. 캄보디아의 현황을 소개하는 여행책자를 훓고 캄보디아史를 섭렵한다해도 비포장된 도로 위를 달리는 뚝뚝이의 덜컹거림이나 망고와 두리안 같은 열대과일의 향기를 느낄 순 없다. 독자는 여행자가 되기도 하고 여행가이드가 되기도 하면서 '쏙서바이', '클랑클랑, 틱틱'같은 현지어를 들으며 캄보디아의 구석구석을 돌아볼 기회를 가진다. 책을 읽는 동안 캠코더를 들고 두 주인공 수아와 쩜빠의 성장기을 필름에 담아내는 다큐멘터리의 카메라맨이 된다.
지금 뚝뚝이는 포장도로를 벗어나 흙길로만 내달리고 있다. 빼곡히 서 있는 야자수들과 그 아래로 타오르는 듯한 붉은 흙, 시원한 바람.(중략) 옆이 훤히 트인 뚝뚝이를 타고 달리다 보면, 버스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눈높이의 캄보디아가 보이기 시작한다. 맨발로 다니는 아이들도, 길가에 핀 이름 모를 꽃들도, 흙먼지를 뒤집어쓰고도 맑은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보는 이곳 사람들도 모두 뚝뚝이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내 이름은 망고> 103p
다문화에 대한 자연스런 공감을 이끌어 내는 건 이 작품의 두번째 장점이다. 작품 속엔 캄보디아의 역사와 문화, 사회적 현실과 개인의 삶이 잘 그려져 있다. 다른 문화에 대한 이해 부족은 서로 오해를 불러 일으키고 원하지 않는 무례함으로 상처를 준다. 이방인과 현지인이 '우리'가 되려면 서로의 현재와 과거에 대해 알아야 한다. 캄보디아의 현재를 못먹고 못살던 우리의 6, 70년대로 치환하기 전에 그들의 고달픈 현재에 우리의 아픈 과거를 겹쳐 놓을 줄 알아야 한다. 우리가 전통과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듯 그들의 그것도 다르지 않다. 그들의 현재를 통해 우리는 잃어버린 과거의 가치를 건져 올린다. 공감은 그렇게 이뤄진다. 학교가 주입한 크메르 왕조와 앙코르 와트 사원에 대한 얇팍한 지식은 소설 속에서 자연스럽게 흡수되는 지식에 비할 바가 아니다. 주입은 산화되고 흡수는 체화되기 때문이다. 고로, 우리는 생생함의 연장선상에서 캄보디아를 가슴 속에 새긴다.
삼 년 전, 아빠는 바이욘 사원에 얽힌 이야기를 바로 이 자리에서 내게 들려주었다. 쉰네 개의 탑과 이백 개가 넘는 얼굴상은 모두 이 세상 사람들의 얼굴이라고...... 세상 사람들의 얼굴이 모두 다르고 우리가 순간순간 가슴에 담는 감정이 다 다르듯, 이 석상들의 표정도 어느 것 하나 같은 것이 없다던 말. 그 말이 지금 내 입에서 반복되고 있다. <내 이름은 망고> 223p
장점 하나 더, <내 이름은 망고>는 청소년문학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다. 틀에 박힌 소재에선 벗어났지만 주인공인 수아와 쩜빠의 갈등, 화해, 우정, 성장, 꿈을 녹여내면서 이 작품은 여전히 청소년성장소설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꿈을 묻고 답하는 장면, 사소한 이유들로 행복해 하는 장면은 나를 가슴설레게 하는, 청소년문학만이 가질 수 있는 매력으로 여겨진다.
"쩜빠......넌 진짜 압사라 무용수가 꿈이야?"
"......"
하긴 뻔한 걸 물었으니 대답하기 입 아프겠지.
"그럼 그거 말고, 나중에 뭐로 태어나고 싶어?"
쩜빠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이번 말고, 다음 생애에 말이야. 다음에 뭐로 태어나고 싶냐고?"
<내 이름은 망고> 166p
내 캄보디아 친구 쩜빠는 이렇게 말했다. 앙코르 와트에 뒷동산 가듯 놀러 갈 수 있고, 신발 없이 흙길을 걸을 수도 있고, 밤이면 네온사인보다 더 환한 별빛들의 축제를 볼 수 있고, 일 달러면 시장에서 망고를 한 바구니나 사 먹을 수도 있고, 또다시 우기가 찾아오긴 하겠지만 그래도 지금은 건기가 시작되었으니까 행복하단다. <내 이름은 망고> 253p
열대우림기후인 캄보디아에는 우기가 되면 하루에 한 차례 '스콜'이 쏟아진다. 인생길 걷다보면 짜증, 한숨, 가시, 빚, 불면증, 악몽, 고통, 불공평, 최악, 좌절, 오해, 추락, 살얼음판, 우울증, 상처, 암담...우중충한 감정과 암울한 상황들이 갑작스레 스콜처럼 쏟아져 가던 길을 멈출 때도 있을 터다. 하지만 엄마의 일을 돕는 현지인 쿤라가 엄마 대신 여행가이드를 불안하게 시작하던 첫 날, 수아에게 건넨 말을 기억하면 좋겠다. '좋은 쪽, 생각해.' 그리고 익을수록 달고 부드러워지는 수아(스와이는 캄보디아어로 망고를 의미한다)의 이름도 잊지말기를.
이제 나의 해외여행목록에는 캄보디아도 적혀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