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사회』라는 책으로 알려진, 지금은 저자와 독자를 연결하는 플랫폼 <북크루>를 경영하고 있는 김민섭 작가가 말했다. '노동하지 않는 몸에는 힘 있는 언어가 쌓이지 않는다' 라고. 물론 전업 작가도 엄연히 집필 노동자이자 생활인이지만, 집필과 직결되지 않은 노동을 글쓰기와 병행하는 작가들의 언어에는 전업 작가들의 글과는 다른 또 다른 단단함이 있다.
<밀리의 서재>에서 읽었다.《뉴요커》기자 패트릭 브링리가 자신의 결혼식날에 형의 장례식을 치르면서 그때 받은 충격으로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경비원으로 입사하면서 겪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쓴 에세이집이다. 저자가 대학 시절에 미술사를 배운 적이 있어서인지 미술 작품에 대해 식견이 상당했다. 책은 미술관 경비원으로 살아가는 애환보다는 경비원 입장에서 바라본 미술 작품과 해당 작품에 얽힌 미술 이야기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는듯했다. 물론 경비원으로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어떤 생활을 했는지도 생생하게 나와있어서 흥미로웠다.
박물관·미술관에는 관람객으로도 방문하고, 인턴(은 박물관에서만)과 봉사활동에 참여하기도 했는데 어째선지 그곳 경비원의 삶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 같다. 작가가 잡지사 기자 출신이라 그런지 문장이 참 유려했다. 그림은 단 한 작품도 실려있지 않지만, 저자가 도슨트를 둔 채 미술작품을 감상하는 느낌이 들기도 해서 좋았다. 저자도 일하면서 나름의 고충이 있었을 것 같은데, 원래 미술을 좋아하기도 했고 생계 압박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해서 일하게 된 거라 그런지 그 점에 대해서는 별로 나오지 않은듯하다. 책을 읽으면서 간만에 미술관에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라고 해놓고 실제로는 가지 않았다. ㅋㅋ)
위의 책처럼 <밀리의 서재>에서 읽고 있다. 종이책은 없고 전자책만 있다. 같은 경비원이라도 다소 낭만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책『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와는 그 느낌이 완전히 다르다. 하긴 이름은 경비원이라도 미술관과 은행은 완전히 역할이 다른 기관이다. 또한 미술관 경비원과 은행 경비원의 역할이 같을 리도 없고, 유명 잡지의 잘나가는 기자 출신이었던 위 책의 저자와 달리 『저는 은행 경비원입니다』의 저자는 순전히 생계를 위해 선택한 직업이라 더 현실적인 느낌이 들었다.. 아직은 초반밖에 못 읽었다. 아래 두 권은 어제 도서관에서 빌렸는데 아직 안 읽었다.
평소에 택배를 잘 시키지 않는 편이다. 가끔 <알라딘>이나 <11번가>에서 온라인 주문을 하는 정도. 대부분 알라딘 책이고, 그나마 <11번가>에서도 크거나 무거운 물건을 시킨 적이 없다. 택배기사님이 힘드실까봐 일부러 그런 건 아니고 평소에 택배의 필요성을 별로 느끼지 않아서다. 『까대기』는 이종철 만화가의 실제 경험을 만화로 각색한 작품이다. 책 제목인 '까대기'는 막노동의 일종으로 무거운 물건을 나르는 일을 뜻한다.
저자는 생계를 위해 택배 상하차를 6년이나 했다고 한다. 택배 상하차는 고되기로 악명이 높다. 군대를 제외하고도 몸 쓰는 일을 한 번도 안 해본 건 아니지만, 택배 상하차는 감히 엄두가 안 나 한 번도 도전하지 않았다. 난 요즘 일주일에 한 번씩 쿠팡에서 알바를 하고 있는데, '허브' 분야로 신청하면 상하차 일을 할 수 있고 돈도 조금 더 준다지만 업무 강도 대비 그렇게 많은 편은 아니다. 20대 때도 겁나서 못해본 걸 지금 나이에 할 수는 없지. ㅠ 그런데 그걸 6년이라니. 동영상으로만 봐도 후덜덜하다.
쿠팡플레이 <MZ오피스>에서는 신입으로 들어온 MZ세대를 희화화했다. 해당 예능에서 표현하는 MZ신입은 MZ에 속하는 내가 봐도 확실히 개념 없어 보였다. 실제로 그런 사람도 있을 거다. 그런데 모두 그런 건 아니다. 2018년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컨베이너벨트에 끼여 사망한 고 김용균 씨(당시 24세)도, 2022년 SPC 계열사 제빵공장에서 소스배합기에 몸이 끼여 사망한 박모씨(당시 23세)도 MZ세대였다.
그외에 자동차 회사, 공항에서 일하는 내 친구들도 있고, 나는 쿠팡에 알바(나는 일주일에 한 번씩만 하지만)하러 갔을 때 나보다 어린 친구들도 많이 봤다. 그 중 대화까지 하게 된 한 친구는 주5일 풀타임으로 일한다고 했다. 나도 대형 물놀이시설에서 시설관리직으로 일한 적이 있다. 그러니 MZ세대가 편한 일만 하려고 한다는 건 편견이다.
『쇳밥일지』는 지금은 미디어 스타트업 회사에서 일하는 작가가 자신의 용접공 시절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여기서 '쇳밥'이라는 건 관용화된 표현이다.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기름밥'을 먹는다고 하고, 학문을 하는 사람들을 두고 '먹물'이라고 하는데, 용접은 쇠를 다루는 일이니 '쇳밥'을 먹는다고 부르는듯하다. 예전에 대형 물놀이시설에서 설비기사로 일하던 시절에 외부업체에서 온 분이 용접을 하는 걸 봤는데, 엄청 멋있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저자는 이제 용접공이 아니지만, 지금도 고된 노동 현장에서 일하는 많은 청년 노동자들이 있을 테다.
수십 년 동안 OECD 기준 산재사망률 부동의 1위라는 대한민국. 더 이상 일하다 죽지 않기를. 극한 노동을 하는 이들이 아무도 죽지 않고 더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나라가 되길 바란다.